[독서토론 리더과정 5~6강] 독서토론 진행자의 요건
이전 글에서 독서토론을 이끄는 ‘진행자’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다는 비유를 들었다. 토론을 할 때 진행자가 갖춰야 할 요건은 다음과 같다.
-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지 않는다.
- 참여자의 의견에 대해 판단하지 않는다. (그것이 칭찬이라 할지라도)
- 의견을 말할 사람을 지정하지 않는다.
- 침묵이 지속될 때 발언자를 지정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말하며 침묵을 깨지 않는다.
- 모든 논제를 균형 있게 다룰 수 있도록 시간을 적절히 안배한다.
즉, 토론 진행자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악기를 연주하지 않으면서 단원들을 이끌고, 운동 경기의 ‘심판’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원활한 진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행동만을 해야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러한 제약이 어렵게 느껴졌다. 내가 뽑은 논제는 다른 누구보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았던 주제인데 참여자들 얘기만 듣고 있으려니 목까지 차오르는 말을 몇 번이나 눌러 삼켰다. 그런데 이런 시간이 3번 이상 반복되다 보니 어느새 부쩍 말이 줄어든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됐다. 내가 진행자로서 직접 실습하는 시간뿐 아니라, 참여자로서 적극 말해야 하는 시간에서도 소위 토론 ‘진행병’이 발동했다.
나의 '진행병'은 다름 아닌 '침묵'이었다.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진행자의 역할에 너무 깊이 빠져 버려 다른 역할로의 전환이 되지 않는 것일까? 사람들의 의견을 들으면서 나의 생각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까를 고민해야 하는데, 나는 발언자의 말에 푹 빠져 고개만 끄덕거리다가 내 생각을 정리할 새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문제는 이것을 자각했지만 좀체 고쳐지지가 않았다.
이 증상은 리더과정이 끝날 때까지 이어졌다. 말이 많아진 것보다는 지금의 침묵이 더 낫다 생각하다가도, 이러다가 나만의 생각이 희미해지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됐다. 한참의 고민 끝에 한 가지 단서를 발견했다. 이제까지 나는 확고한 나만의 생각을 표현해 본 경험이 부족했다는 것.
20년 가까운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나는 나만의 말을 하는 방법을 잊어버렸다고 결론 내렸다. 그 말은 곧 나만의 생각도 없어졌다는 의미인데, 내 생각의 중심이 곧고 단단하지 않으니 타인의 생각이 받아들일 때 그것이 곧 내 생각인 듯 자리를 잡아버리는 모양새였다.
사고력도 결국은 훈련이다. 자는 토론 진행자 훈련을 하는 동시에 나만의 생각을 갖는 연습 또한 병행해야 함을 깨달았다. 확고한 내 생각을 갖춘 진행자의 ‘침묵’은 이런저런 생각들로 혼란스러워 입을 닫는 ‘침묵’과는 전혀 다르다.
진짜 ‘침묵’을 하기 위해 우선 나의 생각부터 단단히 다지는 훈련을 다시 시작해야겠다. 내 생각을 잘 표현할 수 있을 때 타인의 생각 또한 열린 자세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단단한 침묵으로 참여자의 발언을 이끄는 토론 진행 전문가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