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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껏 Mar 12. 2024

바로 지금 여기서, 자기 돌봄을 시작합니다

'경력잇는 여자들'의 <엄청난 가치> 프로젝트 오리엔테이션 참석 후기

 2월의 마지막 날, 아이를 하원시키고 서둘러 저녁밥상을 차렸다. 아이에게 숟가락을 들려주고 나서야 겨우 내 자리에 앉아 습관처럼 핸드폰을 열었다. 내 눈을 단숨에 사로잡은 게시물 하나. 


"<엄청난 가치>를 만들어갈 참여자를 모집합니다."(정확하지는 않지만 나에게 이런 뉘앙스로 읽혔다.)


 글을 열어 보니 마감시간은 바로 그날 자정까지였다. 5시간밖에 남지 않았네. 할 수 있을까, 재어볼 여유도 없이 신청서를 작성했다. 엄마들의 자기 돌봄과 지역사회 기여를 콘셉트로 하는 이 프로젝트는 제목이 주는 강렬함과 직관성 때문인지 무엇을 하게 될지 비교적 분명하게 감이 잡혔다. 그래서 고민이 필요하지 않았다. 며칠 뒤 진행된 인터뷰는 문답의 자리라기보다 '환대'의 자리였다. 나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고 박장대소로 공감해 주는 이들과 함께하고 싶었다. 


 3월 14일, 오리엔테이션에서 올 한 해 어떤 활동을 하게 될지 설명을 듣고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다른 엄마들과 인사를 나눴다. 다음은 이 날의 모임 후기를 문답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Q. 나는 왜 여기에 왔나? 

A. 한때 나 자신이 '엄청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기도 했다. 그러한 마음은 임신과 출산, 육아 영역에 들어오면서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그렇게 자신만만했던 나의 가치는 직장 안에서의 쓸모와 연관이 컸다. 그러니 엄마의 역할은 내 가치를 높이는 데 방해가 될 뿐이었다. 직장 생활도 집안 살림도 잘 해내야 한다는 압박이 클수록 둘 다 허덕이며 해낼수록 무력감은 커져 갔다. 때마침 몸에서도 이상 신호가 찾아왔다.  건강검진에서 모두 '정상' 범위라 건강만큼은 자신 있었는데, 나이 앞자리 숫자가 '4'로 바뀌자 몇몇 항목에 빨간불이 켜졌다.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생물학적 시간의 흐름이 신비로웠다. 



인간을 바꾸는 방법은 3가지뿐이다. 


시간을 달리 쓰는 것,

사는 곳을 바꾸는 것,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


이 3가지 방법이 아니면 인간은 바뀌지 않는다. 

'새로운 결심을 하는 것'은 가장 무의미한 행위다. 


- 오마이 겐이치




  무언가 변화가 필요했다. 일단 휴직계를 냈다. 그리고 가족과 함께 제주로 내려왔다. 그에 더해 <엄청난 가치> 프로젝트를 만났다. 이 모든 과정은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졌다. 


Q. <엄청난 가치>에서는 무엇을 하나? 

A. 3월에 시작해 11월까지 이어지는 장기간의 프로젝트다. 이 시간 동안 우리가 주력하는 것은 '자기 돌봄'이다. 엄마들을 보면 마음이 짠해진다. 내가 엄마가 되기 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다. 아이를 키워내면서도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없는 시간을 마른 수건 짜듯 쥐어짜는 모습을 자주 본다. 자신이 하나의 존재로 '살아 있음'을, 꽤 '가치로움'을 느낄 수 있다면 어떤 어려움도 감내하는 사람들 또한 많이 접했다.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 자신에게 혹독했던 엄마들이 '자기 돌봄'에 집중하는 시간이 바로 <엄청난 가치>의 핵심이다. 


'경력잇는 여자들' 강소희 이사님.

 자기 돌봄을 통해 자신을 잘 알고 나면 마을활동가 교육도 받는다. 내가 은근 기대하고 있는 부분이다. 여태까지 나는 나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해 왔다. 나는 강하니까 의지로 극복하고 노력하면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환상에 가까웠다. 삶이라는 거대한 공을 굴리기에 나 하나는 얼마나 나약하고 부족한지를 깨닫고 난 뒤부터 사람을 찾게 됐다. 내 필요를 채우기 전에 나부터 이웃에게 손을 내밀어야지. 그게 바로 마을 활동 아닐까? 이곳이 나의 인큐베이터로 딱이다.  


시간관리 다이어리와 수업교재.


  오리엔테이션에서 두 권의 파일북을 받았다. 하나는 앞으로의 수업자료를 모아놓는 파일이고, 다른 하나는 시간관리 다이어리. 이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경력잇는 여자들(경잇녀)' 이사님은 시간관리 코치이기도 한데 그동안의 활동 노하우를 담아 다이어리를 직접 제작하셨다고. 활동도 다양하다. 주 2회 오프라인 교육에 참석해야 하고 독서 인증, 글쓰기, 퍼스널 브랜딩, 프로필 사진 촬영까지. 이 모든 것을 다 해낼 수 있을까? 자꾸 주저함이 앞서지만 '경잇녀' 분들이 시키는 대로 잘 따라가 보려 한다. 


Q.  '경력잇는 여자들(경잇녀)'들은 어떤 단체? 

A. 모집글을 볼 때 단체 이름이 낯익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서울에서 구독하던 <제주> 잡지의 기사였다. 소위 말하는 '경력단절여성'이기를 거부하고 한데 뭉쳐 이런저런 일을 벌이고 거기서 스스로의 가치를 찾아내고 있었다. 그녀들에게 아이는 방해물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를 완성시켜 주는 '보물'로서 존중받았다. 


 그때 받은 신선한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종이 위 글자와 사진만으로도 그녀들의 긍정적인 에너지가 전해졌다. '내 고향 제주에 이렇게 멋진 여자들이 뭉쳐 즐겁게 지내는구나.', '역시 제주는 여자의 섬이구나.' 그녀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욕구가 솟아났다. 제주가 가면 꼭 한 번 찾아가 봐야지, 생각만 했었는데 이렇게 만났다. 이 정도면 운명이라 할 수 있을까? 


'경력잇는 여자들' 김영지 대표님과 둘째 아이. 


 대표님은 '경잇녀'가 우리에게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주겠다고 약속했다. 안전한 울타리. 말만 들어도 마음이 울컥해진다. 그동안 한 발만 삐끗해도 나락으로 떨어질 것만 같은 불안을 안고 살아왔나 보다. 그녀들이 울타리를 만들어 주었으니 난 그 안에서 마음껏 날뛰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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