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뼘’씩 성장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독서 기록] 이희경 작가의 『한뼘 양생(북드라망, 2024)』

by 제주껏

양생(養生)

1. 병에 걸리지 아니하도록 건강관리를 잘하여 오래 살기를 꾀함.

2. 병의 조리를 잘하여 회복을 꾀함.

3. 콘크리트가 완전히 굳을 때까지 적당한 수분을 유지하고 충격을 받거나 얼지 아니하도록 보호하는 일.


동네책방에서 『한뼘 양생(이희경, 북드라망, 2024)』 책을 만났을 때, 나는 제일 먼저 사전에서 ‘양생’이라는 단어를 검색했다. 돌봄에 관한 내용을 다룬 책인가, 하는 막연한 짐작은 얼추 맞아 떨어졌지만 여전히 제목의 생경함은 가시지 않았다. ‘돌봄’ 관련 자료들이 넘쳐나는 요즘에 보기 드물게 신선했고, 동시에 왜 굳이 ‘양생’이라는 개념을 썼는지 궁금했다. 저자 역시 ‘양생’이라는 단어를 낯설어하는 사람들이 ‘시멘트 양생’을 떠올린다거나 ‘후학 양성(養成)’으로 잘못 떠올리는 사례들을 언급했다. 작은 충격에도 흠집이 나거나 허물어지지 않도록, 외부 충격에도 잘 버텨낼 수 있는 신체를 만들어간다는 점에서는 ‘시멘트 양생’과도 얼추 의미가 맞아떨어진다.


제목 아래 표기된 저자 이름 역시 나에게는 생소했다. 다시 폰을 들어 이름을 검색했다. 이희경 저자는 인문학 공동체 <문탁네트워크> 대표로 활동하면서, 현재 경향신문에서 책과 같은 제목 ‘한뼘 양생’이라는 코너에 정기적으로 글을 기고하고 있었다. 가장 최근 글은 반갑게도 북토크가 열린 동네책방 주변에서 열리는 전시에 대한 감상이라 더욱 반가웠다. (관련 글: 제주 선흘리 할망들 ‘레퓨지아’ /경향신문 2025. 1. 2. www.khan.co.kr/article/202501022122035) 제목과 저자에 대한 궁금증을 어느 정도 해결하고 나서야 나는 겨우 책 표지를 넘길 수 있었다.


책은 모두 다섯 묶음으로 구분된다. 1부 <몸과 일상>은 나이 들어가면서 변화하는 저자 자신의 몸을 경험하면서 느낀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나 자신이 매일 요가 수련을 하는 사람으로서 또다른 요가 수련 에피소드를 읽게 되어 반가웠고 다이어트, 폐경기 등 여성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그 중 공자 이야기 중 잠옷을 갖춰 입는 것에 대해 열띤 토론을 했던 일은, 고전 속에서 이리도 사소하면서도 재미있는 소재를 뽑아 편하게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구나 싶어 기분이 들뜨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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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생명과 돌봄>은 나를 둘러싼 이웃과 친구, 주변 환경에 대한 돌봄 성찰이 주를 이룬다. 저자 자신이 어머니를 간병한 경험을 포함해 주변 지인의 투병과 죽음 속에서 얻은 깨달음과 질문이 이어진다. 이와 함께 저자가 말하는 돌봄은 도룡뇽을 공동 돌봄했던 일과 식물 키우기, 사회적 이슈가 됐던 사순이에 대한 생각 등 비인간 생물로 확장된다. 나와 저자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차이는 ‘실천’ 있었다. 나는 여태 직장이라는 조직의 구성원으로 동시에 충직한 소비자로서 사는 데 익숙해져, 나와 주변의 돌봄을 자본과 권력에 일방적으로 의존하기로 해버린 것은 아닌지 되돌아본다. 결국 돌봄은 나의 완전한 자립과 상호의존이 조화를 이룰 때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3부 <공동체와 연대>에서는 저자의 사회연대 이력을 살펴볼 수 있는데, 그가 인문학 공동체의 정신에 걸맞게 실천하는 삶을 지향했음이 여실히 느껴졌다. 개인적으로는 ‘녹색평론이 돌아왔다’가 가장 반가웠다. 2021년 『녹색평론』이 휴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언젠가 구독해야지 차일피일 미뤄왔던 잡지를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는 걸까 후회만 가득했다. 그런 잡지가 재출간되었음을 알게 되어 이번에는 당장 2년치 정기구독을 신청했다. 저자는 “나쁜 사람한테 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일삼아 연대가 필요하다”고 말하는데, 그동안 내게 연대가 가장 뒤로 미뤄 놓았던 삶의 요소였다면 앞으로는 일삼아 우선수위를 두고 행해보려 한다.


‘나이듦과 죽음’이라는 주제의 4부는 해당 분야에 대한 본격 책 서평에 가까웠다. 『내가 늙어버린 여름(이자벨 드 쿠르티브롱, 양영란 옮김, 김영사, 2021)』을 필두로 『가족을 구성할 권리(김순남, 오월의봄, 2022)』, 『에이징 솔로(김희경, 동아시아, 2023)』, 『각자도사 사회(송병기, 어크로스, 2023)』, 『좋은 시체가 되고 싶어(케이틀린 도티, 임희근 옮김, 반비, 2020)』등 돌봄 주제의 다양한 책들을 건진 것이 가장 큰 소득이다.(2~3편의 영화 추천 목록은 덤이다.)


사실 언급된 책은 이것 말고도 훨씬 많다. 각 꼭지마다 한 개 이상의 책이 언급되는데, 이를 보며 저자가 얼마나 부지런히 공부에 몰두해 왔는지를 실감하기도 했다. 그 중 흥미가 가는 책들만 따로 추려봤는데, 그것만도 20권이 넘었다. 이는 가끔 글의 흐름을 끊기도 했지만 대체로 내용을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돌봄이라는 주제로 연결 독서를 하기에 최적화된 추천 목록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부록으로 따로 구분된 <간병 블루스>는 꼼꼼하게 읽기보다 휘리릭 훑기만 했다. 아직 맞딱드리지 않은 간병의 구체적 현실을 접하는 것이 마치 미래에 나에게 닥칠 일들을 미리 겪는 것 같은 무게감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아직 ‘아이 돌봄’의 한복판에서 분투하고 있는 나에게 간병 돌봄은 잠시 뒤로 미뤄두고 싶은 영역이기도 하다.


책을 덮을 때쯤 다시 생각에 잠겼다. 나는 한뼘이라도 ‘양생’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매일 요가 수련에서 선생님은 ‘하루 1mm’씩만 몸이 달라지더라도 그것은 대단한 변화라고 말씀했다. 1mm가 그러한데 매일 한뼘씩 양생한다면, 사실 어마어마하지 않은가. 한뼘 양생, 쉽게 넘길 개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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