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놀이처럼 하라는 말에 글 한 편을 뚝딱 썼다

[글쓰기] 그림책 『감정 호텔』 속 지배인이 되는 상상 해보기

by 제주껏

어린이 글쓰기 지도자 과정을 시작한 지 5일째, 매일 올라오는 주제에 대해 짧게 글을 남겼고 그렇게 금요일 밤 한 주를 마무리하고 있던 참이었다. 밤중에 카톡 알림이 울려 창을 열었더니 다음날인 토요일 글감이 ‘짠’하고 나타났다. 이런, 진짜로 매일 글쓰기였구나. 회사 생활의 틀도 그렇고 대부분의 교육과정에서 주말과 휴일은 쉬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 있기에, 여기서의 ‘매일’도 주 5일제를 준수한다고 멋대로 생각했던 것이다.


“여러분은 감정 호텔의 지배인입니다.
감정 손님이 찾아오는 이야기를 만들어주세요.”


마음 놓고 있다가 갑자기 마음이 분주해졌다. 하필 이전의 상대적으로 평이한 생활 주제의 글감과 달리 그림책을 기반으로 상상력을 발휘하는 글쓰기를 해야 한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감정 호텔은 뭐고, 내가 지배인이 되어서 감정 손님들을 맞이하는 얘기를 쓰라고?


글감의 이야기를 먼저 보고 생각을 정리해 보자며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감정 호텔(리디아 브란코비치 글‧그림, 장미란 옮김, (주)책읽는곰, 2024)』 책을 빌려 카페로 갔다. 평소라면 텍스트 위주로 내용 파악하는 정도로 읽었겠지만, 이번에는 한 글자 한 글자, 그와 함께 펼쳐지는 장면들을 놓치지 않고 음미하며 책장을 넘겼다.


이 책은 감정 호텔의 지배인이 호텔을 찾아오는 ‘감정 손님’들, 호텔에 머무는 감정들을 어떻게 보살피는지에 대한 내용이다. “어떤 손님도 돌려보내지 않고 아무리 까다로운 손님이라도 방을 내주”는 호텔. 한 사람의 내면이 얼마나 복잡한지를 생각하면 이 호텔은 방이 꽉꽉 차 있을 테고 지배인은 틀림없이 격무에 시달릴 것이다.


내가 지배인의 입장이 된다고 생각하니 독서의 관점도 완전히 달라졌다. 단순히 책을 감상할 때는 모든 등장인물을 관찰하는 위치였다면, 지금은 책 속의 한 인물로 완전히 풍덩 뛰어들어야 했다.

감정 호텔의 지배인이 되어 보자. 호텔에는 방이 몇 개지? 어떤 감정 손님들이 머물고 있지? 어떤 손님이 가장 인상적이었지? 내가 지배인으로서 어떤 점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지? 질문은 얼추 이어지는데 답이 이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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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또 하나의 카톡 알림 문자. “글쓰기는 놀이예요. 몇 줄만 적어도 좋아요.” 내 상황을 보고 계셨나? 이 말 한마디로 마음에 품은 큰 돌덩이 하나가 쑥 하고 시원하게 뽑혀 나갔다. 뭐든 쓰기로 했다. 고심 끝에 내가 잡은 주제는 ‘우리 호텔의 하루’. 그렇게 한 시간 만에 과제를 제출했다. 글의 완성도는 중요하지 않다. 주어진 주제에 대해 이야기 하나를 써냈다는 것만으로 뿌듯했다.


매일 글쓰기의 긴장에서 후련함까지의 과정, 피할 수 없다면 즐기자.



우리 호텔의 하루


안녕하세요. 수많은 감정 손님들이 머무는 저희 감정 호텔의 하루를 소개할게요. 새벽 5시 알람이 울리면 ‘귀찮은’ 손님이 가장 먼저 눈을 뜹니다. 이 손님은 일어나자마자 호텔 전체를 돌아다니며 이미 켜진 불들을 다 꺼놓아서 저를 힘들게 합니다. 저는 손님이 지나간 곳을 쫓아다니며 꺼진 불을 다시 켜놓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손님들도 계속 잠에서 깨지 못하거든요.

아침에 아이가 등원할 때까지는 ‘조바심’ 손님을 잘 모셔야 합니다. 지배인인 저를 도와 아침 청소와 아침밥 준비, 이부자리 정리, 씻고 짐을 챙기는 모든 일을 짧은 시간 안에 해내느라 늘 초조하고 바쁜 마음으로 종종거립니다. 이 일들이 다 끝나면 손님은 옆방의 ‘고요한’ 손님과 인사를 나누고 자기 방으로 들어갑니다.

‘고요한’ 손님은 1층 로비 카페에서 책을 보거나 글을 쓰는 걸 좋아해서 저는 항상 맛있는 커피와 읽을 만한 책들을 잘 준비해 놓습니다. 손님의 취향이 갑자기 바뀔 때면 호텔 옆 도서관에서 픽업 서비스도 해드린답니다. ‘고요한’ 손님과 친한 ‘불안’과 ‘두려움’ 손님이 종종 카페에 함께 있기도 합니다. 이 손님들은 주로 비가 오거나 흐린 날 카페를 찾죠. 저는 손님들이 충분히 대화를 나누기를 기다렸다가 ‘고요한’ 손님의 일에 방해되지 않게 적절한 때 다른 손님들을 방으로 안내합니다.


오후에는 ‘사랑’ 손님을 데리고 외출을 합니다.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바닷가나 숲 등 자연과 함께하다 보면 ‘사랑’ 손님 곁에는 빛과 웃음으로 가득 채워집니다. 그 에너지를 가지고 호텔로 돌아오면 호텔 안에도 그 기운이 고스란히 전해지지요.


저녁이 되면 여러 감정들이 수시로 콜을 하기 때문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해요. 이를 테면 아이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딴짓만 할 때는 ‘짜증’ 손님, 그날 해야 할 일 중 깜빡한 것이 생각났을 때 ‘당혹감’ 손님, 가족들과 하루 있었던 일을 얘기하며 서로 격려할 때 ‘충만감’ 손님, 드라마에 감정 이입했을 때 등장하는 ‘공포’ 손님과 ‘슬픔’ 손님...... 저녁은 우리 호텔에서 가장 많은 손님들이 활기차게 움직이는 시간입니다.

이런 손님들을 하나하나 정성스레 응대하고 난 뒤, 밤 10시가 되면 비로소 호텔의 불이 꺼집니다. 혹시 잠 못 드는 ‘불안’ 손님의 상태를 다시 확인하고 잠이 들 때까지 가만히 기다립니다. 모두가 잠들면 그때 저도 하루 업무를 마치고 쉴 수 있죠. 내일은 또 어떤 손님이 찾아와 저희 호텔을 즐길지 궁금해하며, 매일 머무는 손님들에게는 오늘보다 더 나은 호텔이 되기를 바라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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