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의 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친화력? 아니면, 돈 일까, 그것도 아니면 연민일까. 필자는 믿음이라고 생각한다. 믿음 만큼 중요한 것은 없고, 그만큼 어려운 것도 없다. 믿는 사람이나, 믿음을 줘야 하는 사람이나 말이다.
그렇다면, 그 믿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생각해야 할까. 그저 믿기만 하면 그걸로 그만일까. '믿는다' 혹은 '믿어줘'라는 말로 대변할 수 있을까.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은 당연지사. 그 믿음을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 걸까 한번쯤 고민해 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개인적인 일로 최근에 가장 큰 믿음이 깨지는 경험을 했다. 수없이 생각해봤다. 나의 믿음을 깨버리는 일이 발생하면 어떻게 하지? 내가 누군가의 믿음을 깨버리면 어떻게 하지? 후자에 대한 필자의 생각은 두려움이었다. 내가 그간 쌓아온 이미지와 주변을 이루고 있는 많은 대인관계에 미칠 후폭풍이 무서웠다. 타인과의 관계를 신경쓰지 않은 듯 살고 있지만, 그건 무관심이 아니라 무서움에 기인한 행동이었다. 자그만한 관계에서도 조심스러웠다. 내 행동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보일까, 어떻게 미칠까 하는 마음에 움츠려 살아왔다. 어렵지 않았다. 나를 조금만 죽이면 가능한 행동들이다. 누군가의 눈에는 배려로 보일 수도 있고, 누군가의 눈에는 옹졸한 처사 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게 무엇인들 내가 편하기 위한 내 방어 본능이었다.
그렇기에, 누군가와의 믿음을 깨버리는 일은 행한다는 것은 좀 처럼 쉬운일이 아니다. 믿음의 선을 넘기 직전, 선을 넘었을 때의 일을 생각한다. 다행히도 내 이성은 선의 존재를 명확하게 구분지었다. 간혹 애매하게 선에 발을 걸쳤을 때에도, 완전히 넘어가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덕분에 타인의 믿음을 깨버리는 일은 아직까지는 존재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길 바란다.
그렇다면, 전자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믿음에 대한 주제를 정한 이유는 '타인이 저버린 내 믿음은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우리는 타인의 믿음을 저버리는 행위에 대해서는 '어쩔수 없었다' 라던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혹은 '너 때문이야'라는 얄팍한 이유를 들면서 문제의 원인을 '내'가 아닌 타인에게 혹은 상황에 쉽게 전가한다. 그렇기에 믿음을 저버리는 행위에 대해서는 그 이후의 상황에 대한 대처가 어렵지 않다. 하지만, 누군가 내 믿음을 깨버렸을 때에 느끼는 상실감이나 실망, 그 이외의 감정들에 대해서는 쉽게 대처하지 못한다. 우리는 자신의 믿음을 깨버린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행하고 있을까.
일단, 지금까지의 내 지론을 펼쳐 보자면, 믿음을 쉽게 주지도 말고 쉽게 받지도 말아야 한다. 말 그대로 상대방에게 내 마음을 주는 것이다. 그가 내 마음을 어떻게 다루게 되더라도 감당할 자신이 있을 경우에 믿음을 주는게 옳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내가 줘버린 믿음에 대해서 배신을 쉽게 생각하려 했다. '한 사람을 잃었다'로 정의 하려고 했지만, 막상 가장 큰 믿음에 배신을 다하니 쉽지 않았다.
믿음에 대한 배신을 처음 목격했을 때, 그 사실을 받아 들이는게 가장 어려웠다. 다리가 후들거린다는 것을 직접 체험도 했고, 숨이 막히는 듯 답답함을 느껴보기도 했다. 믿음에 대한 배신을 주제로 상대방과 깊은 대화를 나눠보고, 역시나, 타인이 주장하는 내 잘못을 받아들이기도 했다. 그렇게 대화가 일단락이 나고 나면 괜찮아 질 줄 알았던 감정은, 시도때도 없이 불쑥 튀어나왔다. 믿음을 저버린 행위를 용서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직접 겪어보니 알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배신 당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냐는 질문에 지금까지 쉽게 답을 내려 주었던 내 자신이 얼마나 우습게 느껴졌는지는 굳이 표현하지 않고 싶다.
이쯤에서 각설 하고, 전자에 대한 질문, '타인이 저버린 내 믿음은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것에 대한 경험자 중 하나인 나의 답을 내려보자고 한다. 믿음에 대한 배신을 대하는 방법은 유예기간을 두는 것이다. 당장의 감정을 처리하기 위해서 급하게 이런저런 이유를 붙이며 보수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긴 시간을 두고 천천히 감정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시간동안 우리가 해야할 몇가지 순서가 있다.
첫번째, 믿음을 저버린 사람과 나의 관계를 명확하게 해야 한다. 두 사람 사이 제 3자의 존재가 있는가 없는가. 3자의 존재가 있다면, 그 존재는 내 인생에 얼마나 깊이 관련 되었는가가 중요하다. 깊은 관련이 없다면 신경쓰지 않아도 되지만, 깊은 사이라면 그 관계까지도 고려해 봐야 한다. 믿음을 저버린 '그'혹은 '그녀'가 없어도 3자와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다면 첫번째 사항을 무시해도 좋지만, 그렇지 않다면 한번더 고민해 봐야 한다. 중요한 것은 그렇다고 3자를 위해서 모든 것을 참을 필요는 없다. 3자의 존재도 배신한 사람보다는 당신을 더 가엽게 여길 것이다.
두번째, 믿음을 저버린 사람에 대한 내 솔직한 감정은 어떠한가. 그가 없어도 내 남은 삶에 공백이 존재하지 않겠는가. 공백이 존재한다고 해도 감수 할 수 있을 정도인가. 만약 감수 할 수 있다고 하면 서서히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하지만 감수 할 수 없다라고 하면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어디까지 내가 상대방을 용서 할 수 있는지를 명확하게 해야 한다. 최소한 상대방이 어떠한 행동을 보여준다고 하면 받아 들일 수 있겠다 싶은 선을 명확하게 그어야 하고, 동시에 그 선에 대해서는 정말 많은 고심이 필요하다. 그리고 다시 믿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면 믿음을 주어야 한다.
첫번째와 두번째의 순서를 지나고 계속 믿어보기로 했다면 마지막 세번째 단계를 고민해 봐야한다.
세번째, 추후에 또 다시 믿음을 저버렸을 경우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간혹 우리는 반복되는 배신에 '나'라는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어 상대방을 이해해 버리고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러나 믿음을 저버리는 행위에는 그 어떤한 이유로도 '내'가 죄인이 될 수 없다. '내'가 영향을 미칠 수는 있지만, 결국 행동을 실행한건 '내'가 아니라 '상대방'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지해야 한다. 그리고 같은 일을 반복했을 때 어떻게 대할 지는 확실하게 정해두는 것이 좋다. 다시 용서를 택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 할 수는 있지만, 현명한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현재 일정 기간의 유예기간을 지내고 있다. 그리고 제 3자의 존재가 깊이 관여 되어 있음을 인지하였고, 아직은 내가 '상대방'이 없을 경우 생기는 큰 공백을 감수 할 자신이 없기에 용서를 선택했다. 하지만, 유예기간 동안 나는 그의 행동을 지켜볼 예정이다. 그리고 내가 생각한 '최소한 상대방에게 바라는 행동'을 그 유예기간 동안 어떻게 변하는지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며, 그 변화가 내가 주는 또 다른 믿음이다. 만약, 내가 정한 유예기간 동안 두번째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나는 용서가 아닌 길을 택할 예정이다.
두 사람 사이의 3자의 존재도 중요하긴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가장 중요하다. 그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결국 삶의 모든 관계는 '내'가 있기 때문에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하던 믿음에 대한 배신은 결코 쉽게 받아들이지 못 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내일을 살아야 하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아직 배신을 경험하지 못했다고 해도 한번쯤 믿음에 대한 자신만의 명확한 기준을 정립시켜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