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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Oct 08. 2016

“관료에게는 주인이 따로 없다”

성과주의에 기반한 교원평가제의 폐해에 대하여

프롤로그    

 

교원평가 시즌이 시작되었다. 성과급 지급을 위한 등급 산정 작업을 함께 한다. 평가 결과에 따라 승진과 성과급 액수가 결정된다. 승진 경로에 눈길을 주고 있거나 한 푼 돈 마음이 흔들리는 교사들이라면 악착같이 달라붙지 않으면 안 된다.


일반 공무원 조직에는 이미 거센 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작년부터 각종 법령 개악 작업이 꾸준히 이어졌다. 성과급을 확대하고 퇴출제를 도입하기 위해서였다.


2015년 9월 25일 <지방공무원 수당 규정> 개정이 이루어졌다. 성과상여금 부당 수령 행위에 대한 제재 규정을 신설했다. 성과상여금 균등분배 시 환수 조치하고, 차기년도 지급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도록 했다. 징계도 내린다고 한다.


<공무원 성과 평가 규정>이 2015년 12월 30일 개정되었다. 연공과 보직을 고려한 평가 관행을 해소하고 직무성과를 중심으로 평가 체계를 확립하겠다는 내용이 핵심이었다. 성과 미흡자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여 공무원 중도 퇴출 시스템을 도입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2016년 1월 26일 <국가공무원법>이 일부 개정되어 지난 6월 22일 국회에 제출되었다. 공무원 보수와 임용과 승진을 ‘직무성과’ 중심으로 전환하 게 핵심이었다. 정부는 ‘공직가치’ 조항을 신설했다. 성과평가 미흡자의 일정 기간 직무성과와 역량을 심사해 직위해제를 심사하도록  했다. 노동계는 일반해고 요건을 법제화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단연 사람들의 눈길을 끈 것은 입법예고 단계에서 개념화한 ‘공직가치’였다. 최초에 애국심, 민주성, 청렴성, 도덕성, 책임성, 투명성, 공정성, 공익성, 다양성 등 9개 항목이었다. 국무회의를 통과한 개정안에서는 애국심, 책임성, 청렴성의 3항목으로 축소되었다. 민주성, 공정성, 공익성 등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와 직결되는 가치들을 배제했다. ‘애국주의자’ 황교안 국무총리의 의중이 강하게 반영됐다는 후문이 돌았다.


2016년이다. 왜곡된 애국주의와 유신 독재의 원흉 박정희가 죽은 지 37년여가 지났다.


1

    

나는 교육 공무원이다. 공무원을 국민의 공복이라고 한다. 헛소리다. 국민은 국가의 통치 대상일 뿐이다. 국가의 부름을 받은 존재가 공무원이다. 국가 없이 국민 없다. 공무원은 국가를 위해 산다.

애국심 등 국가에 대한 충성도를 공직가치의 핵심으로 놓는 데 내가 좋아하는 황교안 국무총리가 크게 애쓰신 것 같다. 역시 황 총리님이시다.


공무원과 교사의 애국심을 평가하는 손쉬운 방법을 알려드린다. <애국가>를 4절까지 불러 보게 하면 된다. 공무원과 교사들 중에 <애국가>를 1절밖에  부르지 못하면서 국가와 민족에 대해 나불대는 이들이 많다. 국가의 적들이다. 공직에서 내쫓아야 한다. 아이들이 반면교사로 삼을까 무섭다.


지난주 다면평가관리위원회 회의에서 정성평가와 정량평가 지표가 결정되었다. 정성평가는 ‘근무수행태도’와 ‘근무실적 및 근무수행능력’ 2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근무수행태도는 교육공무원으로서의 태도(10점)가 평가요소다. 근무실적 및 근무수행능력은 학습지도 40점, 생활지도 30점, 전문성 개발 5점, 담당업무 15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교육공무원으로서의 태도는 교육자로서의 품성과 직무 충실도로 평가한다. 걱정할 필요 없다. 교장, 교감님보다 일찍 출근해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교장과 교감님 퇴근하신 후에 교무실을 나섰다. 교장님 말씀에 무조건 ‘예’ 하고 대답해 왔다. 교감님과 협의할 때는 의견을 내기보다 경청하기에 힘썼다. 10점은 따  당상이라고 본다.


학습지도 40점은 수업교재 연구, 수업 분위기 조성, 질문 능력, 학생의 학습 참여 독려, 평가 결과의 수업 활용도 등으로 결정된다. 모둠활동이니 협력수업이니 난리들이다. 시끄럽기만 하고 실익이 없다. 교사 앞에서 자기 의견을 대놓고 거리낌 없이 말하는 아이들, 자기 권리만 찾는 아이들이 생겨나는 까닭이 런 것 때문 아니겠나.


우리 교장님이 가장 좋아하는 수업은 일제식 강의수업이다. 교무회의 시간에 가끔 모둠 협력형 수업을 권장하시기는 한다. 그런데 시끄러워지거나 산만해지지지 않도록 조심하라며 신신당부하신다. 하지 말라는 말씀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교장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아이들이 주도하는 모둠식 수업보다 교사가 일사불란하게 이끄는 일제식 수업이 훨씬 낫다. 교사의 권위를 세울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다. 교사의 말 한 마디 칠판에 쓴 글자 한 개까지 완벽하게 기억하고 복원해 줄 아는 아이가 크게 되는 법이다. 아이가 어른과 윗사람 말에 순응하고 시스템에 복종하는 것이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옆 자리 김 선생님을 보면 안타깝다. 아이들과 소통하고 관계를 맺는다며 수시로 활동 위주 수업을 하신다. 어린 아이들이 자기네들끼리 무얼 얼마나 할 수 있겠는가.

김 선생님은 아이들을 믿고 맡긴다. 김 선생님이 수업하는 교실 근처에 가면 머리가 어지럽다. 어수선하다. 공부하는 교실이 아니라 놀이터 같다. 교장님이 싫어하는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2     


생활지도 분야는 내가 가장 자신하는 평가요소다. 학생 개개인의 특성 파악 노력, 학생의 문제 해결을 위한 지원, 건전한 가치관과 도덕성 함양 지도 등 7개 평가 내용으로 짜여 있다.

교실을 침묵의 공간으로 만들면 된다. 감시와 통제와 규율 시스템을 작동시키면 된다. 관행에 따라 규정되는 교사 권력을 최대한 활용할 필요가 있다.

말 잘 듣고 아이들 휘어잡는 일에 나름의 정치력을 발휘하는 아이 둘을 반장과 부반장에 임명했다. 담임 직권으로 이들에게 강력한 권한을 부여했다. 벌금제와 교묘한 체벌로 문제적 행동을 하는 아이들을 관리․통제하게 했다. ‘문상(문화상품권) 당근’으로 협조적인 아이들에게 보상했다. 상명하복과 위계구조가 자리잡은 우리 반 교실은 아주 평화롭다. 잊힐 만하면 교장님께서 우리 반을 칭찬하신다.


전문성 개발 5점은 연구활동과 연수활동의 적극성에 따른다. 교육청에서 지원하는 교사 동아리를 2개 신청해 모두 선정되었다. 독서동아리와 수업연구동아리다.

책을 사서 함께 읽고 토론을 해야 한다. 머리를 맞대고 현장 실천 사례를 고민하고 적용해 보 활동을 하는 게 좋다. 금으로 지원되는 예산이니 허투루 써서는 안 된다.


물론, 그렇게 하지 않았다. 동아리에 이름을 올린 선생님들께 책을 돌리기만 했다. 지난 학기 말경 딱 한 번 함께 모여 간담회 형식의 식사 자리를 가졌다. 앞으로 모일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다. 방학 다가올 즈음에 책 몇 권씩 사서 돌리면 지원 예산을 털어버릴 수 있을 것 같다. 돈 쓰는 게 은근히 귀찮다.

교육청과 학교에서 필요한 것은 ‘알차게’ 꾸민 결과 보고서다. 무언가를 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실제 동아리 활동을 얼마나 충실하게 했는가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그런 걸 알고 싶어하거나 관심을 두는 이도 없다.

학교별로 동아리 ‘수’가 몇 개인지가 가장 중요하다. 전체 교사 대비 동아리 수에 따라 교사들의 연구활동 참여율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대외적으로 학교를 홍보할 때 중요한 근거 자료가 된다. 그럴 듯하지 않은가.


담당업무 15점은 거저 먹을 수 있다. 업무의 정확하고 합리적인 추진, 창의적인 개선과 조정 등이 평가내용이다.

작년에도 그랬지만, 평소 신조에 따라 교장님과 교감님의 지시와 명령에 그대로 따랐다. 단순 보고 사항이나 통계 공문은 공문 접수 즉시 처리했다. 보고 기한 때문에 신경을 쓰시는 두 분을 배려하기 위해서였다.


교장님은 이런 일 처리 방식이 효율적이고 창의적이라며 교무회의 시간에 ‘모범 사례’로 말씀하셨다. 조금 민망스러웠지만 나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수업 핑계를 대며 교무 업무 정상화니 잡무 경감이니 하는 말을 한다. 무책임한 소리들이다. 일하기 싫으면 학교 떠나야 한다. 능력 있고 열정 넘치는 청춘들이 차고 넘치는 세상 아닌가.


정량평가 지표의 평가영역은 학습지도(30점), 생활지도(30점), 전문성개발(10점), 담당업무(30점)로 되어 있다. 수업시수, 수업공개 횟수, 수업컨설팅 횟수, 학생과 학부모 상담 실적, 생활지도 곤란도, 학년 곤란도, 장학자료 개발, 업무 곤란도, 업무 추진 등으로 결정된다.


‘연구수업’이라는 이름으로 수업공개를 두 번 했다. 아이들이나 학부모들과 한두 마디 나눈 대화를 포장해 네이스에 일일이 기록했다. 상담 실적으로 쓰기 위해서였다. 장학자료 전시대회, 학생경연대회가 있을 때마다 참여해 여러 번 수상했다.


학년 초에는 박 선생, 이 선생과 다투기까지 해서 유리한 수업 시수와 업무를 쟁취해 냈다. 박 선생과 이 선생님을 제외한 나머지는 ‘교포(교장 포기) 교사’여서 무시해도 좋았지만 둘은 달랐다. 물밑에서 치열하게 신경전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교장님과 교감님을 개인적으로 두 번이나 찾아뵈었다. 평소 친분 관계를 소홀히 하지 않은 게 천만 다행이었다.

교장이 좋아하는 낚시와, 교감이 좋아하는 배드민턴 클럽 활동에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 될 것 같다. 교장이 교원평가 업무가 끝나면 남해안 쪽으로 낚시를 간다고 한다. 다음 주에는 지역 아마추어 배드민턴 대회가 열린다고 한다. 교장님, 교감님과의 만남이 끝까지 ‘행운’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에필로그     


교양인의 상식은 공무원이 섬겨야 할 주인을 시민이나 국민으로 규정한다. 교사가 학생을 섬겨야 한다고 말한다. 현실도 그럴까.

언젠가 시인 김남주가 다음과 같은 시를 썼다. 제목이 <어떤 관료>다.     


관료에게는 주인이 따로 없다!
봉급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다!
개에게 개밥을 주는 사람이 주인이듯      
일제 말기에 그는 면서기로 채용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근면했기 때문이다     
미군정 시기에 그는 군주사로 승진했다
남달리 매사에 정직했기 때문이다     
자유당 시절에 그는 도청과장이 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성실했기 때문이다     
공화당 시절에 그는 서기관이 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공정했기 때문이다     
민정당 시절에 그는 청백리상을 받았다
반평생을 국가에 충성하고 국민에게 봉사했기 때문이다     
나는 확신하는 바이다     
아프리칸가 어딘가에서 식인종이 쳐들어와서
우리나라를 지배한다 하더라도
한결같이 그는 관리 생활을 계속할 것이다     
국가에는 충성을 국민에게는 봉사를 일념으로 삼아
근면하게 정직하게!
성실하게 공정하게!     



* 본문 1~2의 ‘나’는 허구의 인물이다. 교원평가 시스템을 맹종하는 그의 모습을 통해 성과주의의 폐해를 떠올려 보았으면 좋겠다.     

* 제목 커버의 배경 이미지는 김남주 시인이다. <오마이뉴스>(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391350)에서 가져왔다. 원 출처는 ‘김남주해남기념사업회’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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