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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Oct 12. 2016

“선생님, 잘 모르겠어요.”

너희가 10대를 아느냐 (24)

1     


몇 년 전까지 인문계고등학교에서 근무했다. 방학 중에는 으레 보충수업을 했다. 일종의 준필수 강좌다. 나는 단순 문제풀이를 지양했다. 활동 위주로 수업을 진행했다. 학생들은 직접 제작한 학습 자료의 텍스트를 스스로, 또는 학습 짝과 함께 분석했다.


나는 교실을 돌며 개별 학생에게 논평해 주었다. 어느 겨울방학 보충수업 시간이었다. 종반부에 이르렀을 때였다. 시정이(가명) 논평 차례였다. 시정이 자리로 향하면서 ‘시정이 많이 했냐’며 논평을 시작하려는 순간이었다.


“선생님, 잘 모르겠어요.”


학생들에게서 으레 나오는 말이다. 쉬운 일은 없다. 나는 차분하게 응대했다.


“어렵지? 같이 볼까?”


시정이 활동지를 들고 훑어보았다. 문단 요지 몇 개만 정리되어 있었다. 내용 추리나 질문하기 항목이 비어 있었다. 본문을 더 참조해 보면 어떻겠느냐고 조언했다. 곁에 있던 시정이 짝꿍도 몸을 기울여 내 말을 들었다. 다음 차례 학생에게 가려는 사이 둘의 표정을 잠깐 보았다. ‘한번 해 보지 뭐’ 하는 결심이 스치는 듯했다.


“선생님, 잘 모르겠어요.”


한때 나는 학생들에게서 그 말을 들으며 득의만면의 미소를 짓곤 했다. ‘내 지식을 자랑하고 뽐낼 순간이 아닌가’. 학생들에게 ‘이것도 몰라?’와 같은 말을 아무렇지 않게 건넸다. 내 입에서는 현학적인 단어들이 능변(能辯)을 타고 나왔다.


놀랍게도, 그러나 당연하게도 그렇게 하고 나면 학생들이 다시 질문을 하지 않았다. 지레 겁을 먹어서였을 것이다. 그런 내 모습이 요변(妖變)에 가까운 것이었음을 그때 왜 몰랐을까. 나와 당신은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지금 나는 학생들에게 우리가 무엇을 모르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말한다.    

 

2     


모른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았을 때 진정성을 갖고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다. 그 해 어느 날이었다. 선정이(가명)에게 ‘빨간펜 논평’을 하려던 찰나였다. 선정이가 짝꿍 병숙이(가명)에게 나직히 던진 말 한 마디가 들렸다.


“난 이 시간이 제일 떨려.”


학생들에게 이 말을 듣는 것이 좋았다. ‘너무 긴장 돼’, ‘어떻게 해야 하지?’처럼 비슷한 감정선이 깔린 말 부류를 들을 때가 있다. 역시 기분이 좋아진다. 살아 있어서 생각을 하고 무언가를 느낀다는 것, 우리 스스로 어떤 일을 했거나 하려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들이다. 그때 우리는 앎과 배움의 세계로 향할 수 있다.


내 논평은 오글거리는 칭찬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활동지에 정리한 글(생각)을 보고 내용을 사실적으로 확인한다. 사실 확인을 위해 학생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진다. 어느 부분에서 이 내용을 가져왔느냐, 네 글의 이 부분은 그 부분의 어떤 내용과 관련되느냐. 잘한 점을 북돋아주고, 부족하거나 보완할 점을 지적해 준다.


학생이 쓴 글(생각)에 내용상 명백한 오류가 있는 경우가 있다. 중립적인 태도로 그 오류 사실을 말해 준다. 학생 스스로 내용을 보완할 수 있게 한다. 실마리를 던져 준다. 수수께끼를 풀듯 학생이 풀어나간다. 쉽지 않은 일이다. 선정이가 떨린다고 말한 그것이 이런 상황들과 관련될 것이다.


그러나 ‘가슴이 떨린다’고 말하는 그 순간 ‘떨림’은 이미 사라진 게 아닐까. 진정한 떨림, 혹은 긴장은 도리어 입을 얼어붙게 할 테니까 말이다. 실상 학생의 마음 속에는 말 그대로의 떨림이 아니라 ‘기대감’ 같은 것이 자리잡고 있을지 모른다. 그는 배움의 의지로 기쁨을 맛볼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을 것이다.     


3     


1818년 6월 29일, 네덜란드 지배를 받고 있던 벨기에 루벵 대학에 불문학 담당 외국인 강사로 조제프 자코토가 임명되었다.[아래 자코토에 관한 내용은 자크 랑시에르(2016), <무지한 스승>, 궁리, 9~41쪽 참조.] 프랑스에서 군인(화약국 교관, 육국장관 참모)과 교육자(교장 대리, 교수)로 명성을 얻어가던 중이었다. 벨기에에서의 삶은 정치적 망명에서 비롯되었다.


프랑스 출신 하급 외국인 강사가 들어가는 교실은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학생들은 프랑스어를 몰랐다. 자코토는 네덜란드어를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그래도 자코토는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텔레마코스의 모험>의 프랑스어-네덜란드어 대역판이 출간되어 있었다. 자코토는 통역을 통해 프랑스어 텍스트를 익히라고 요구했다. 학생들이 제1장의 절반까지 왔을 때 자코토는 학생들이 익힌 것을 쉼 없이 되풀이하여 외우게 했다. 그렇게 차근차근 진행한 뒤 읽은 내용 전부에 대해 학생들 각자 생각한 것을 프랑스어로 써보게 했다.     


그는 끔찍하리만치 부정확한 어구들, 어쩌면 절대 무능을 예상했다. 정말이지 아무 설명도 듣지 못한 이 모든 젊은이들이 어떻게 생판 언어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해결할 수 있었겠는가? 상관없다! 우연히 열린 이 길이 그들을 어느 곳으로 이끌었는지, 이 체념 어린 경험적 방법의 결과가 무엇이었는지 보았어야 한다. 혼자서 하게끔 내버려둔 이 학생들이 많은 프랑스인들이 해냈던 것과 같은 정도로 이 어려운 단계를 해치우는 모습을 봤으니 그가 오죽 놀라지 않았겠는가? 의지만 있다면 할 수 있다는 것일까? - 자크 랑시에르(2016), 위의 책, 12쪽.     


4     


그 전까지 자코토는 여느 평범하고 ‘성실한’ 교사와 똑같았다. 교사의 주요 임무는 자신의 지식을 학생들에게 전달하여 그들을 자신이 가진 학식을 향해 서서히 끌어올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스승의 본질적 행위는 ‘설명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지식에서 간단한 요소들을 끌어내는 것, 지식의 단순한 원리와 젊고 무지한 정신을 특징짓는 단순한 사실을 일치시키는 것이 스승의 일이었다. 가르친다는 것은 지식을 전달하는 동시에 잘 짜인 점진적 순서에 따라 가장 단순한 것에서 가장 복잡한 것으로 정신을 이끌면서 그 정신을 형성하는 것이었다.


루벵 대학에서 만난 ‘무지한 스승’과 ‘무지한 제자’들은 전혀 다른 그림을 그려냈다. 그때로부터 200여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끈질기게 유지되고 있는 전통적인 교육학은 지능을 열등한 것과 우월한 것으로 나누는 분할 전략을 바탕으로 한다. 그들은 이것을 깼다. 보수적인 교육 논리가 전제하는 ‘불평등’과 ‘차별’에 대한 생각들이 지적 능력을 실행하는 데 장애물이 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자코토-필자)는 우리가 모르는 것을 가르칠 수 있다고, 가난하고 무지한 가장도 스스로 해방되기만 하면 설명해주는 어떤 스승의 도움 없이도 자기 아이들을 교육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는 이 보편적 가르침의 수단을 일러주었다. 무언가를 배우라, 그리고 그것을 이 원리, 즉 모든 인간은 평등한 지능을 갖는다는 원리에 따라 나머지 모든 것과 연결하라. - 자크 랑시에르(2016), 위의 책, 40쪽.    

 

5     


자코토는 ‘바보 만들기’를 일갈했다. 그것은 ‘설명의 원리’에 따른 교육이다. 우월한 지능이 열등한 지능을 이끈다. 스승은 전달하고 학생은 받아들인다. 스승은 검증하고 학생은 그 대상이 된다.


랑시에르는 바보를 만드는 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지식을 학생 머릿속에 주입하는 늙어빠진 둔한 스승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표리부동한 진리를 실천하는 사악한 존재가 아니다. 유식하고 식견이 있으며 선의를 가졌을수록 더 유능하다. 이제 유식함과 식견과 선의와 유능함을 갖춘 교사와 함께 있는 ‘꼬마(무지한 자)’가 ‘바보’가 되는 역설의 상황이 펼쳐진다. 당분간 꼬마는 지적 해방의 기쁨을 맛보기 힘들 것이다.


우리는 ‘바보’를 만들고 있는가 ‘지적 해방’의 전사를 키우고 있는가. “선생님, 잘 모르겠어요”라는 학생들의 말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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