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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Oct 12. 2016

그들이 원하는 건 ‘군인’ 같은 교사?

위계적 통제와 보상 중심의 교원평가제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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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만 교원들을 대상으로 진행되고 있는 교원평가제도는 교원업적평가와 교원능력개발평가로 이루어진다. 평가 결과에 따라 승진과 임금 차등 지급이 결정된다. 훈령 제정을 통해 강제성을 부여하고, 연수 프로그램을 강화함으로써 교육부의 통제와 관리 수준을 높였다.


승진과 성과급을 좌우하는 교원업적평가에서는 관리자 평가가 절대적이다. 승진 점수는 교장 평가 40퍼센트, 교감 평가 20퍼센트, 교사평가관리위원회가 만든 평가지에 따른 동료교원 평가가 40퍼센트로 이루어져 있다. 관리자 평가 비율 60퍼센트는 정성평가, 동료교원 평가 비율 40퍼센트는 정성 항목 80퍼센트, 정량 항목 20퍼센트로 되어 있다.


교원능력개발평가응 법률적 강제성을 강화시켰다. 평가의 전 과정을 주관하는 평가관리위원회는 교원이 아닌 위원 비율이 50퍼센트 이상이어야 한다. 교감이 당연직으로 참여한다. 평가관리위원회는 평가와 연수 거부, 방해, 해태, 교원에 대해 징계요청 등 일련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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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무능력 교사, 문제 교사를 퇴출하려면 평가가 필요하지 않은가. 평가 기준을 합리적으로 정해 공정한 절차에 따라 실시하면 되지 않을까.


징계와 감사 제도가 있다. 부적격한 교사가 문제라면 이들 제도로 걸러내면 된다. 교원평가제를 무능력하거나 문제 투성이 교사를 솎아내는 수단으로 보는 것은 명분과 실효성 등 모든 면에서 적절치 않다. 교육에서 평가가 진정 의미가 있다면 평가 대상자의 자기 성찰을 통한 성장과 변화를 추동했을 때다.


교장과 교감 평가가 ‘정성평가’ 100퍼센트로 진행되는 점을 상기하라. 관리자의 주관적이고 임의적인 평가를 보장하므로 교사들 사이에 주어진 책무 중심의 눈치보기식 업무 분위기가 조성된다.


관리자 평가의 주관성과 임의성은 매우 심각한 문제다. 인사관리 전문가 팀 베이커는 최근작 <평가제도를 버려라>에서 뿔 효과와 후광 효과의 편견을 지적했다. 우리는 한 사람에 대한 전반적인 의견을 바탕으로 그 사람의 행동을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우리의 의식 여하와 무관하게 작동한다.


뿔 효과는 좋아하지 않는 사람의 행동을 부정적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을 말한다. 부하직원이 3번 지각을 했다면 불성실과 게으름의 증거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관리자가 그 전부터 이미 그를 좋게 보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후광 효과는 정반대다. 관리자가 실제보다 부하직원의 행동을 더 좋게 평가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인식을 하든 못하든, 누군가의 행동에 대해 어느 정도는 주관적인 판단을 내린다. 어쩌다 한 번 일어난 일도 그 사람에 대한 전반적인 인상에 따라 해석된다. 심리학자들은 이 같은 현상을 인지 편향이라 부른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의 사회적 지위, 연령, 성별, 교육 수준, 지능, 그 외의 다른 요소들과 관계없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그리고 인정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자주 일어난다. - 팀 베이커(2016), <평가제도를 버려라>, 책담, 174쪽.     


이 점은, 1999년 과장급 이상을 대상으로 한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한국지엠(GM)이 2014년 4월 전격 폐지한 사실을 통해 방증할 수 있다. 지엠의 성과연봉제는 2003년 전체 사무직종으로 확대되었다. 사무직을 5등급으로 나누었고, 최하 등급에게 임금 동결이라는 ‘채찍’을, 최상위 등급에게 임금 20퍼센트 인상이라는 ‘당근’을 주었다.


노사관계와 조직문화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친분관계에 따라 등급이 매겨지는 일이 많아 평가제도의 객관성과 신뢰성이 추락했다. 상·하급자와 팀원들 간 불신이 팽배해졌다. 입사 동기간 연봉 차이가 1000~2000만 원씩 벌어지는 일이 생겨나 조직 내 위화감이 커졌다. 성과연봉제의 폐해가 심각했다. 한국지엠은 2014년 4월 제도를 전격 폐지하고 연공급 체계의 임금제를 새로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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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평가관리위원회에서 결정한 성과급 평가지표(정성 20퍼센트, 정량 80퍼센트)에 따라 성과급 등급이 결정된다. ‘평가사항’(근무실적 및 근무수행능력)과 ‘평가영역’(학습지도, 생활지도, 전문성개발, 담당업무)이 서로 중복된다. 교원업적평가상의 승진 점수가 ‘상대적으로’ 유리한 교사가 성과급 최고 등급인 S 등급을 받을 가능성이 거의 100퍼센트라는 이야기다. 승자독식 체제를 정당화하고 있는 것이다.


범박하게 정리하면 교사의 책무성과 관리자의 통제권을 강화하는 평가 시스템이다. 동료들 간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하는 협력 시스템과 거리가 멀다. 서로가 서로에게 경쟁 상대가 되므로 신뢰 관계가 갈수록 침식된다.


성과 중심의 교원평가제가 터 잡고 있는 사상적 배경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낮은 신뢰 관계, 위계적인 통제, 계약적 순응, 계선 구조를 위한 공식 보고와 기록 과정에 기반한 외적 책무성 기제다.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평가제도다.[마크 올슨 외(2015), <신자유주의 교육정책, 계보와 그 너머: 세계화・시민성・민주주의>, 학이시습, 304~308쪽 참조]


이와 같은 제도는 “왜라는 판단을 내리지 않는” 군인에게나 적합하다고 한다. 관리주의 문화와도 관련된다고 한다. 이 나라 교육당국은 ‘왜’를 말하지 않는, 관리되는 교사를 원하는 걸까.     


신자유주의적 책무성 정책과 관리적 통제는 (중략) 교육적 실제의 장을 정의해야 하는 가치와 원칙에 헌신하는 정도를 줄인다. 목적을 특정하고 성과를 점검하는 일을 포함한 여러 가지 관리적 기법은 교사들이 이타주의와 지적 독립, 상상력과 같은 근본적인 교육적 가치에 적대적으로 행동하도록 자극할 수 있다. - 마크 올슨 외(2015), <신자유주의 교육정책, 계보와 그 너머: 세계화・시민성・민주주의>, 학이시습, 3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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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를 평가해 (당근이든 채찍이든)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주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2012년 7월 미국 월간지 <베니티 페어>에 ‘마이크로소프트의 잃어버린 10년’이라는 기사가 실렸다.[<월요신문> 2016년 5월 26일자 ‘GM, GE, MS가 성과연봉제를 폐지한 이유’ 기사 참조]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전・현직 임직원들을 인터뷰하고 내부 자료를 검토 분석한 결과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고 한다.     


“스택랭킹이 회사를 망치고 직원들을 떠나가게 했다. 직원들의 경쟁의식을 높이려고 도입한 제도가 협업 분위기를 망쳐 놨다. 직원들은 구글 등 떠오르는 IT 강자들과 경쟁하는 대신 동료들과 경쟁했다. 한 부서에서 큰 성과를 내더라도 기계적 비율에 따라 평가를 해야 하다 보니 언제나 하위등급 직원이 나왔다. 스택랭킹이 관리자들의 내부 권력투쟁 도구로 활용되는 사례도 발생했다. 평가가 관리자에게 얼마나 잘 보이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폐단이 드러난 것이다.”     


보상은 좋은 결과를 약속하지 못한다. 인간의 행동 방식을 지속적으로 변화시키지 못한다. 이를 입증하는 증거가 수업이 많다고 한다. 미국 10여 개 기업의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외근을 할 때마다 안전벨트를 매면 소정의 보상을 지급하기로 했다. 6년 동안 100만 건이 넘는 안전벨트 착용 사례를 관찰했다. 보상에 기반한 안전벨트 장려운동은 비효율적이었을뿐더러 착용률을 더 떨어뜨리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작가지망생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도 보상의 한계를 보여준다. 집필 시작 전 작품이 성공을 거두면 누리게 될 금전적 보상이나 명성을 상상한 작가지망생들의 글은, 그런 상상을 하지 않은 사람의 작품에 비해 대체로 창의성이 떨어졌고 자신의 예전 작품에 비해서도 독창성이 감소했다고 한다.     


동기 부여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 에드워드 데시(Edward Deci)는 독립적으로 실시된 130종의 연구를 종합해 아주 단순한 결론을 내렸다. 사탕 과자에서 소액의 돈에 이르기까지 온갖 물질적 보상은 진정한 동기 부여를 망친다고 말이다. 도덕적 행동을 포함해 일부 행동방식을 고양하기 위해 보상을 활용하는 것은 오히려 행동 그 자체에 느끼는 매력과 즐거움을 떨어뜨린다. - 로랑 베그(2013), <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 부키, 1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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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교원평가제는 ‘왜’라는 질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왜’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는 교사가 교사라고 할 수 있을까. 그는 ‘군인’이다. 새로운 교원평가제는 ‘당근’과 ‘채찍’으로 교사들을 통제한다. ‘당근’과 ‘채찍’을 바라고 학생들을 만나는 교사가 있을까. 있다면 그는 교사가 아니라 말[馬]이다. 그러나, 사람이 말이 되어서는 안 된다.


* 제목 커버의 배경 이미지는 한국 지엠 홈페이지(http://www.gm-korea.co.kr/gmkorea/designcenter/designcenter_index.do) 갈무리 화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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