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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Oct 14. 2016

고문자들은 태연했고, 미소를 지었다

공감이 사라진 자리를 채우는 것들에 대하여

1     


웃음은 주변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든다. 이 유쾌한 ‘전염’은 자연스러운 상식이다. 경기도 평택시에 살았던 42살의 ㄱ씨에게는 그런 상식이 없었다. 2013년 7월 12일, 길 가는 사람 몇명이 모여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강한 살의를 느꼈다. 이야기를 나누는 행인들을 향해 자동차 가속 페달을 밟았다. 1명이 죽고 4명이 크게 다쳤다. 경찰에 잡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웃는 사람을 보면 죽이고 싶었다.”


이 가공할 ‘착란’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그는 한때 정신 분열 증세와 우울증으로 치료를 받고 약을 먹은 적이 있었다. 정신 분열은 현실 감각에 이상을 가져올 수 있다고 한다. ‘엽기적인’ 행각은 정신병적 착란에 따른 것이었을까.


우울증 때문이라면 이와 다른 설명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우울증 환자의 범죄 행위에는 고의성이 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의 ‘웃음’(행복)이 불행 속에 있는 자신을 돌아보게 함으로써 살의를 불러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2


그는 정신병질자(사이코패스; psychopath)나 사회병질자(소시오패스; sociopath)와 같은 반사회성인격장애((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를 가진 사람이었을까. 범행 후 경찰에 끌려간 그는 조서를 직접 작성했고, 자신의 의사를 명확하게 표시했다고 한다. 평범한 보통 사람의 모습이었다.     


데이비드 호우 영국 이스트 앵글리아 대학교 명예교수가 쓴 <공감의 힘>에 따르면, 어느 나라든지 인구의 2퍼센트가 사이코패스와 같은 반사회성 인격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인구가 대략 5천만 명 정도다. 이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무려 100만 명에 해당하는 비율이다. 어마어마한 숫자다.     


“난 언제든지 살인을 할 수 있어. 다른 사람의 감정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어. 난 감정 따위에 휘둘리는 사람이 아니야! 나도 내가 아주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사람을 죽일 수 있고, 또 그렇게 할 거야.” - 데이비드 호우(2013), <공감의 힘>, 지식의숲, 143쪽.     


1970년대 미국의 연쇄살인범 개리 길모어의 말이라고 한다. ㄱ씨도 비슷했다. 그는 예의 7월 12일 이전에도 고의적인 교통사고를 세 번이나 냈다. 살인을 위한 것으로 보이는 행동을 꾸준히 해 온 것이다. 그런데 이런 잔혹한 성향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100만 명이나 있을 수 있다니 공포스럽지 않은가.


3


공감은 무엇일까. 호우 교수는 ‘공감(共感; sympathy, empathy)’을 타인의 감정과 동일한(sym) 감정(pathos)이 되는 것, 또는 타인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그 감정의 내면으로 들어가(em) 이해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동정(同情)과 흡사해 보이나 명확한 차이가 있다. 호우 교수는, 공감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그 감정을 이해하는 것이고, 동정은 단지 상대에게 내가 네가 있는 곳으로 가겠다고 말해 주는 것과 같다고 구별했다. 나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동정이라면, 공감은 상대로부터 유발되는 것이다. 그래서 동정이 지나치게 되면 상대방으로 향하는 감정의 몰입이 커져 객관성을 상실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4  


미국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의 권위에 대한 복종 실험이 있다. 호우 교수는 타인의 고통을 무시하고 권위에 복종하는 인간의 본성에 관한 이 실험을 인용하면서 공감이 사람들의 집단적 기대에 부응하고 명령에 순응할 것을 요구받을 때 무시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사람들을 권위로 억압하고 규율로 강제하는 조직은 구성원들의 공감 능력을 떨어뜨린다. 도덕적인 통제력을 상실한 구성원들은 조직 바깥에서 내보이는 훌륭한 인격적 태도나 품성을 잊은 채 조직 생활을 해 나간다. 그는 조직의 안과 밖에 있을 때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당신 주변에 몰인정스러운 이기주의자가 있는지 살펴 보라. 그가 평소 자신의 가족이나 친한 친구를 어떻게 대하는지 떠올려 보라. 조직 안에서 내보이는 차가운 모습과 달리 살가운 태도를 찾아보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밀실에서 극심한 고문을 자행하는 잔혹한 수사관들이 집에 가서 어린 자식과 놀아주는 장면을 그려 보자. 악질 고문 경찰 이근안에게 모진 고문을 당한 김근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사례가 우리에게 특별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해 준다.[박건웅(2014), <짐승의 시간>, 보리. 참조]


김 전 장관은 1985년 9월 4일 새벽 5시 30분 서울 남영동에 있는 치안본부 대공분실로 끌려갔다. 물고문, 전기고문, 전기봉고문 등 갖가지 고문이 차례로 이어졌다. 그가 대공분실에서 나온 것은 1985년 9월 26일 오후 3시경이었다. 야만적인 ‘짐승의 시간’ 22일간 이어졌다.


9월 10일, 김 전 장관은 매우 ‘특별한’ 경험을 했다. 그는 이날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 전기봉고문을 당했다. 고문자들의 우두머리격인 김수현이 위로를 했다.


“이봐, 근태! 고통이 심하고 고생이 되는 줄 안다. 빨리 고문대에서 내려 와라.”


그에게 “엄청나게 큰 사건”으로 다가온 한 마디 위로를 김 전 장관은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눈물이 핑 돌고 콧등이 시큰해졌습니다. 그것보다 더 많이 위로해 주었다면 김수현 가슴에 기대 엉엉 울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혀 버렸을 것입니다. 한 유태인 정신과 의사가 쓴 글이 생각났습니다. 나치 수용소에 감금되어 오랫동안 고생하다가 전쟁이 끝난 뒤 풀려나온 사람이었습니다. 원수이면서 악마였던 나치 친위대가 나중에는 사랑스런 대상으로, 존엄한 자로 자리잡게 되는 절망적인 자기 고백을 담은 내용이었습니다. 나는 이를 읽고 몸서리치며 믿지 않았는데 이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었습니다. 나는 고문자들에 대해 분노하고 저주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첫날부터 나는 분노할 수 있는 능력을 빼앗겨 버렸습니다. 삶과 죽음의 열쇠를 갖고 있던 그 고문자들에게 모든 힘을 다해 아양을 떨어야 했던 것입니다. - 박건웅(2014), <짐승의 시간>, 보리, 338~339쪽.     


김수현은 나름대로 절제하고 합리적으로 행동하려고 한 가톨릭 신자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곧 김수현의 그런 태도가 상부의 지시와 요구, 즉 정치적 필요에 의한 명령에 따른 것일 뿐이었다고 단언했다. 김 전 장관의 분석은 정치 군부가 국가 변란을 일으키고 폭력을 휘두른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생활’을 위해 그 힘을 따르기로 했다는 김수현의 말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다른 고문자들도 비슷했다. 김 전 장관의 눈에 그들은 모두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 자신의 서술처럼 저주받은 표시가 얼굴에 있는 것이 아니고 증오와 분노로 일그러졌거나 눈에 살기가 감돌거나 하지 않았다. 그들은 악마나 도깨비가 아니었다.


고문자들은 고문실에서 한 고문자의 아들이 체력장 시험 1급을 받은 사실을 놓고 덕담을 주고받았다. 또 다른 고문자는 학생운동 전과자인 사위를 걱정했다고 한다. 데모하다가 군대에 간 아들을 염려하는 고문자도 있었다. 김 전 의원이, 고문실에 꼭 있어야 할 것 같은 사람으로 묘사한 ‘장의사’를 제외한 나머지는 하나같이 ‘명동 같은 길거리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고문자들의 태연함, 고문을 가하면서 짓는 이상야릇한 미소에 질려 버렸습니다. 이 사람들은 어떻게 이러고도 견딜 수가 있을까요? 강철 같은 배짱과 강심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그러나 그것은 간단한 것이었습니다. 자기를 속이고 다른 사람도 속이도록 만들어진 제도 속에 갇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구속이나 고문의 방향을 결정짓고, 대상자를 골라 증오심을 키우고 확대시켜 나가면서, 이를 선전하고 지시하는 그룹은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도사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곳 남영동 사람들은 제시되고 결정된 방향으로 자기들의 직무를, 아니 작업을 추진해 나가면 그뿐입니다. 이들은 설정된 정치적 목표를 이루기 위해 누가 봐도 불온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얻어 내야 합니다. 그러기에 인간을 욕보이는 가혹한 고문이 ‘훌륭한 직업’으로 살아서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박건웅(2014), 위의 책, 447~449쪽.     


5     


지난 며칠 사이 ‘헬조선’의 현실을 보여주는 한 그래프 사진이 인터넷 여기저기서 보였다. 10월 5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회원국들의 사회적 안정성과 통합성을 종합적으로 비교분석한 ‘한눈에 보는 사회상(Society at a Glance)’ 2016년 판 보고서에 나온 내용이었다.


(출처: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65360.html)


출산율 꼴찌, 최악의 노인빈곤율, 압도적인 1위의 자살률 등 충격적인 사실들이 가슴을 움츠리게 했다. 극도의 이기주의, 도덕과 윤리의 타락, 사회 붕괴 같은, 근엄한 도덕 교과서에서나 만날 만한 말들이 실감나게 머리에 떠올랐다. 개인들이 느끼는 심리적・사회적 불안이나 긴장감이 여느 때보다 높다.


사람들 사이의 유대 관계가 갈수록 떨어진다. 사회생활을 해 나가는 데 중요한 공동체성이나 사회적 상호작용 능력과 같은 역량들을 학교는 물론이고 가정이나, 회사 등 그 어디에서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다. 배우려 하지 않는다. 대신 이들이 있어야 할 자리에 끝 모를 경쟁과 이기심이 들어앉아 있다.   

   

이기심을 부추기고 자기만을 돋보이게 한 이들에게만 보상을 해 주는 사회는 긴장 상태에 놓이게 된다. 그런 사회는 종종 극심한 불평등에 빠져들어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 사이의 차이를 심각하게 만든다. (중략) 공감하는 능력 또한 사회적 격차가 벌어지는 만큼 저하될 것이다. 불평등이 심한 사회는 공감 수준이 떨어지고 불안정한 사회로 치닫게 될 것이다. 개인주의가 활개치는 사회는 비록 잘 사는 것처럼 보이거나 다수의 부유층을 보호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사실은 매우 높은 범죄율과 사회적 긴장 상황이 유지되는 경향이 있다. - 데이비드 호우(2013), 위의 책, 300쪽.          


* 제목 커버의 배경 이미지는 고 김근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다. 인터넷 뉴스 <오마이뉴스>(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76567)에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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