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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Oct 23. 2016

‘99퍼센트’는 왜 계급 배반 투표를 하는가

정치의 절실함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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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게이트’가 ‘박근혜 게이트’로 전화하고 있다. 국가 지도자가 보이지 않는다. 국정이 사라진 자리를 국민들의 탄식과 분노가 채우고 있다.

나라 돌아가는 꼴은 아이들도 잘 안다. 우연히라도 정치 이야기가 나올까 걱정된다. 성난 아이들이 토해내는 울분과 조롱의 목소리들 때문이다. 학생들 얼굴 보기가 부끄럽다.

‘선생님, 저희는 정유라처럼 살 수는 없는 거죠?’

언제고 학생들이 이렇게 물어볼 것 같다. 나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대신 다수의 사람들이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했었다는 사실을 말해줄 것이다.


왜 사회의 최하층에서 힘들고 가난하게 사는 많은 사람이 부유한 보수 정당(후보)에게 표를 던지는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코딱지만한 이익조차 손쉽게 빼앗아버리는 법안을 만들어 통과시키는 그 정당에게 말이다.


일상적인 경제 여건이 결코 좋지 않고, 상충하는 이해 관계로 인해 사회・경제적인 대립이 격화할 때마다 피해 계층이나 소외자층에 서는 우리나라 ‘99퍼센트’가 경제적으로 부자이며, 이념 좌표가 극우편향적이거나 보수적인 여당 후보에게 몰표를 던지는 모습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이 요령부득의 계급 배반 투표는 어떤 메커니즘에서 비롯되는가.     


중하류층과 극빈층을 이간질해서 내 지갑을 얇게 만드는 주범이 상류층(과 상류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초점을 흐리는 것이었다. 겨우 입에 풀칠을 하는 사람들이 입에 풀칠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과 티격태격하는 한, 이 두 집단은 부자들을 상대로,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인구를 소수의 최상류층과 절대 다수의 어려운 사람들로 양분하는 사회 ․ 경제 체제를 상대로 싸움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다. - 제임스 길리건(2012),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 교양인, 98~99쪽.     


1966년부터 2000년까지 하버드대 의대 교수를 지냈고, 현재 뉴욕대 정신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제임스 길리건은 이와 같은 전략, 곧 소수가 다수를 다스리기 위해 이간질을 통해 다수를 두 계층으로 나눈 후 이들끼리 서로 다투게 함으로써 통치를 용이하게 하는 전략을 ‘분할 정복’으로 불렀다.


분할 정복 전략(로마 황제들이 점령지를 다스리는 데 즐겨 쓴 방법이기도 했다.)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되는가. 살인률 증가가 인구의 못사는 99퍼센트를 서로 갈라놓아서 잘사는 1퍼센트에게 유리하게 작용되는 사례를 통해 알아보자.      


2     


길리건 교수는 우리가 범죄라고 규정하는 폭력의 대다수가 가난한 사람(저소득층)이 저지른다고 전제했다. 폭력 범죄가 일어나면 중류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저소득층에게 공포와 분노를 느낀다. 그 사이 나머지 사람들은 나라 전체의 재산과 소득을 대부분 가로채는 심각한 범죄가 대부분 상류층 책임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넘어간다.

 

폭력 범죄는 주로 사회・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가난한 사람이 저지른다. 하지만 대다수 가난한 사람은 폭력 범죄뿐 아니라 그 어떤 범죄도 저지르지 않고 평범한 삶을 산다. 그런데 폭력의 피해자는 대부분 가난한 사람이다.


여기에서 문제가 생긴다. 폭력 범죄가 늘어난다. 가난한 사람 계층이 두 부류로 나뉜다. 폭력을 휘두르지 않고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다수의 가난한 사람 부류와 폭력을 휘두르고 범죄를 저지르는 소수의 가난한 사람들(깡패나 마약 판매상) 부류다. 이들이 서로를 적대시한다. 그러는 사이 가진 자들이 자신들의 재산을 불리는 쪽으로 사회를 이끌어가도 대다수 가난한 사람들은 그것을 눈치채지 못한다.


길리건 교수는 수십 년간 살인이나 자살과 같은 폭력 문제를 연구했다. 그가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에 담아 놓은 문제 의식은 1990년부터 2007년까지 미국의 자살률과 살인율 통계에 대한 분석에 터 잡고 있다.


그는 1세기 동안의 자살률과 살인률이 동일한 곡선을 그리면서 증감을 거듭하는 현상에 의문을 가졌다.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진보 정당인 민주당 출신보다 보수 정당인 공화당 출신이 대통령이 될 때마다 미국이 자살과 살인이라는 치명적인 전염성 폭력으로 더 크게 고통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집권 정당과 자살률・살인률 사이에 명백한 인과 관계(단지 상관 관계가 아니다!)가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뻔한’ 이야기인가. 보수 대통령(정당)이 진보 대통령(정당)보다 자살과 살인이라는 전염성 폭력을 더 많이 유발한다는 사실이 어떤 사람에게는 공공연한 ‘진실’로 다가올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런 사실에만 주목해서 보면, 길리언 교수의 주장은 그다지 크지 않을 수 있다. 이를테면 보수적인 새누리당이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한다는 사실은 어지간한 사람은 다 알고 있지 않은가.     


3     


2012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은 세대간 대립 구도를 주요한 선거 프레임으로 활용했다. ‘일자리 배분’에 초점을 맞춘 ‘훌륭한 이간질’(분할 정복 전략)로 젊은 세대와 중장년층 이상 세대가 서로 치고받게 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젊은층이 투표해야 한다’며 세대간 대립 구도를 강조했다. 새누리당의 프레임와 언어를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나 자신도 20대 제자들에게 투표를 독려하면서 은연중에 세대간 대립 구도를 강화하는 데 일조했다.


새누리당이 ‘여성 대통령론’을 내세워 여성 유권자들을 유혹할 때, 민주당을 비롯한 범진보・범민주 진영은 특별한 대응책을 내놓지 못했다. 새누리당에게는 자당의 박근혜 후보가 ‘여성’이라는 개인적 정체성을 부각함으로써 선거 운동의 틀을 후보들 간 개인적인 대결로 몰아가고 싶은 바람이 있었다.


우왕좌왕한 범진보・범민주 진영은, 여성 대통령론을 통해 두 당의 실제 정책 차이가 무엇인지에 대해 유권자가 제대로 주목하지 못하게 하려고 했을 새누리당에 제대로 맞서지 못했다. 나같은 평범한 시민들조차 ‘준비된 여성 대통령론’이라는 말이 선거판에 불러올 파괴력을 심각하게 걱정했었는데 말이다.    

 

4     


민주당은 집권 의지와 역량과 실행 계획을 갖춰놓고 있는가. 최순실-정유라 발 비선실세 의혹으로 대혼란에 빠진 새누리당과 청와대를 보며 벌써부터 집권 후를 준비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한국 야당은 괴멸 수준의 몰락이 예상되던 지난 4월 총선에서 기사회생했다. 절실함과 전투성을 되찾았을까.


유창오 새시대전략연구소 소장은 <정치의 귀환>(2016, 폴리테이아)에서 인민주권과 평등에 기반을 둔 시민들의 권력의지가 조직화되지 않으면 야당과 민주 진보 세력에게 미래가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민주주의의 갈등적이고 투쟁적인 성격을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합의와 만장일치가 가능하다는 생각은 ‘반정치주의’만큼이나 민주주의에 치명적이며, 가능하지도 않다. 정치 전선의 부재는 정치적 성숙의 기호이기는커녕 민주주의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공허함의 징후다. 동시에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에 대한 공동체주의의 비판을 경청하면서도 공동체주의적 접근의 여러 측면을 경계해야 한다. - 유창오(2016), <정치의 귀환>, 폴리테이아,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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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오는 사회적 갈등을 대변하려는 용기가 없다면 야당에게 미래가 없다고 강조했다. 중도 프레임에 대한 진단과 분석을 통해 이 문제를 더 자세히 알아보자.


중도 프레임은, 보수‧중도‧진보로 나뉘는 유권자층 중 보수와 진보는 지지 정당이 정해져 있고 중도의 선택이 권력 향배를 좌우하는 만큼 중도를 가져가는 정당이 권력을 갖는다는 이론이다. 민주당이 한때 ‘적장의 남자’였던 김종인 비대위원장을 영입한 것도 본질적으로는 중도층 흡수 전략의 하나다.


그런데 막연히 자신의 주관적인 이념 성향을 선택하라고 하면 중도를 택하는 사람이 많은 반면, 특정 사안에 대해 입장을 물어보면 대체로 진보 아니면 보수의 답으로 양분되면서 중도 비율이 확연히 줄어든다고 한다.


때로 보수정당, 때로 진보 정당에 투표하기 때문에 중도파라고 불리지만, 사회적으로 쟁점이 되는 이슈에 대해 어정쩡하게 중간쯤 되는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는 말. 유창오는 유권자를 ‘보수‧중도‧진보’의 프레임으로 구분하는 것은 사실 허상의 프레임이라고 규정한다.     


중도 프레임은 정치와 선거에 대한 피상적 관찰의 결과일 뿐이다. 오히려 선거는 지난 대선 박근혜의 승리가 보여 주듯이 갈등의 중심에 서서 갈등이 초래하는 간절함을 적극적으로 대변하는 쪽이 이긴다. 그리고 그 간절함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얼마나 철저히 준비했고, 그것을 얼마나 지지자들과 폭넓게 공유했느냐가 선거의 결과를 결정한다. 정치는 객관적 여건의 과학만이 아니고, 오히려 주체성의 과학이다. 주체적 역량이 역사를 만들어 내는 것이 정치다. - 유창오(2016), 위의 책, 48~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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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귀환>은 새누리당의 ‘간절함’이 세 차례의 ‘분당 위기’를 통해 단련되었다고 분석했다. 1997년 12월 대선 때 이인제가 경선에 불복하면서 ‘국민신당’을 세웠다. 2000년 총선 당시 당내 중진인 조순, 김윤환 등이 주도하여 ‘민주국민당’을 창당했다. 2002년 지방선거에서는 박근혜가 이회창을 ‘제왕적 총재’라고 비판하면서 ‘한국미래연합’을 만들었다.


분당의 여파는 컸다. 이인제는 그해 대선에서 19퍼센트를 넘는 득표율을 보이면서 1.53퍼센트포인트 차이로 신승한 김대중의 대통령 당선에 ‘일등공신’이 되었다. 박근혜의 한국미래연합은 비례대표 광역의원 2명만 배출하는 초라한 성적표를 거뒀다. 박근혜는 2007년 경선 패배 후 탈당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면서 ‘여당 내 야당’ 구실을 함으로써 톡톡히 재미를 봤다.     


새누리당은 서러운 야당 생활 10년 동안 두 가지를 만들어 냈다. 새누리당이라는, 보수 세력의 중심이 되는 강고한 정당을 만들어 냈고, 이명박과 박근혜라는 두 명의 지도자를 만들어 냈다. 민주당도 야당 생활 10년을 향해 가고 있다. 그런데 과연 새누리당이 야당 생활 10년 동안 만들어 낸 두 가지를 만들어 내고 있는지 자문해 봐야 한다. 민주당은 민주 진보 세력을 확고히 대변하는 정당이 되고 있는가? - 유창오(2016), 위의 책, 234쪽.     

박근혜 대통령은 2015년 5월 5일 청와대 ‘어린이날 꿈 나들이’ 행사에서 “정말 간절하게 원하면 전 우주가 나서서 다 같이 도와준다”라고 말해 많은 사람의 이목을 끈 바 있다. 그가 평소 권력 유지를 위해 어떤 자세와 태도로 살아가는지를 이보다 더 분명히 말해주는 게 있을까 싶다. 범민주・범진보 진영은 그런 절실함과 간절함이 있는가.


* 제목 커버의 배경 이미지는 <경향신문>(http://news.khan.co.kr/kh_today/today_photo.html?artid=201610211630001&code=940100#csidx6b3252446aca7d6856c8e86f14e104c)에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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