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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Oct 24. 2016

‘사다리’와 ‘파다리’와 유창한 말더듬이

사람의 두뇌와 언어 능력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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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장애의 가장 대표적인 유형은 실어증(失語症, aphasis)이다. 실어증에 걸린 사람은 목이나 혀에 이상이 없는데도 상대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없거나 엉뚱한 말을 내뱉는다. 이처럼 조음 기관이 정상적으로 갖춰져 있지만 언어를 이해하거나 표현하는 언어 능력을 상실한 상태를 실어증이라고 한다.


실어증에 걸리는 원인은 여러 가지다. 뇌졸중과 그로 인한 후유증이 가장 크다. 뇌혈관이 막히는 뇌경색, 뇌혈관이 터지는 뇌출혈 등이 실어증을 유발하는 주요 요인들이다. 교통 사고로 인한 뇌 외상, 뇌종양이나 알츠하이머 병과 같은 퇴행성 질환도 실어증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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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어증은 언어적인 측면에서 여러 가지 특성을 갖는다. 말하기 장애부터 살펴보자. 이 장애에 걸린 사람은 ‘사다리’의 ‘사’ 음절을 내지 못해 ‘파다리’로 발음한다. “양말을 신어” 대신 “발을 신어”처럼 맥락에 맞지 않는 엉뚱한 말을 내뱉는다. 실어증학에서는 전자(‘사다리-파다리’)를 ‘음소 착어증(音素錯語證)’으로, 후자를 ‘의미 착어증(意味錯語證)’이라고 부른다.

 

음소 착어증은 단어의 일부 음소(소리)를 엉뚱하게 바꾸는 것이고, 의미 착어증은 단어 전체를 아예 다른 말로 바꿔 버리는 것이다. 어떤 것이든 착어증은 맥락에 맞는 적절한 어휘를 쓰지 못하는 언어 장애인 ‘실명증(失名證)’과 흡사하다.


착어증과 달리 “나는 집에 가서 밥을 먹어”와 같은 문장을 “나 집 가 밥 먹어”나 “나를 집이 가 밥에 먹어” 같은 문장으로 발화하는 말하기 장애가 있다. 전자는 과거에 전기 신호로 메시지를 전하는 통신 수단이었던 전보(電報) 문체를 닮아서 ‘전보체’ 문장으로 불린다.

 

전보체 문장은 엄밀히 말해 비문법적인 문장이 아니다. 그런데 자연스럽게 쓰이는 조사(‘는’, ‘에’, ‘을’ 등)를 과도하게 생략함으로써 일상적인 구어에서 쓰이기 힘든 어색한 문장이 되는 경우가 많다. 후자에서는 정상적인 문장의 ‘는’, ‘에’, ‘을’ 대신 ‘를’, ‘이’, ‘에’ 등을 써서 문법적으로 전혀 맞지 않는 문장이 되었다. 이들은 모두 문법 장애의 일종에 해당한다.


그밖에 말소리를 분명하게 내지 못하는 발음 장애, 청력에 이상이 없는데 말소리를 잘 못 듣거나, 들어도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청각 이해력 장애가 있다. 상대방의 말을 따라하지 못하는 따라 말하기 장애, 말을 하고 글을 쓸 수 있지만 읽지 못하는 실독증(失讀證), 팔에 이상이 없으면서 뇌 기능에 문제가 생겨 글을 쓰지 못하는 실서증(失書症)도 언어 장애의 보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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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브로카가 처음으로 발견한 브로카 실어증은 언어 장애의 가장 고전적인 예다. 브로카 실어증은 운동성 실어증이나 표현성 실어증으로 불린다. 대뇌의 운동 영역(뇌의 앞쪽에 있는 전두엽 부근에 넓게 위치함)에 이상이 있을 때 나타나는 실어증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뇌의 운동 영역은 우리가 말을 할 수 있도록 입이나 후두(喉頭)를 움직이는 명령을 내린다. 그래서 이 영역에 손상을 입으면 입이나 목구멍 등의 발성 기관에 이상이 없는데도 정상적으로 말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브로카 실어증 환자의 뚜렷한 특징은 말을 유창하게 하지 못하는 것이다. 말을 하는 데 필요한 뇌의 운동 중추가 이상이 생겨 자신의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데 이상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브로카 영역의 위치가 근육 운동을 담당하는 넓은 신경 부위에 인접해 있다는 점과도 관련된다. 브로카 실어증에 걸린 환자는 말을 하다가 중간에 자주 멈추고 발음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가 많다.


브로카 실어증에 걸린 사람들은 전보체 문장이나 보통의 문법 규칙을 지키지 않는 문장을 구사한다. “오늘은 날씨가 더워”를 “오늘 날씨 더워”나 “오늘이 날씨를 더워”처럼 쓴다. 반면 상대의 말을 듣거나 이해하는 능력에서는 그다지 큰 문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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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카 실어증과 더불어 널리 알려진 실어증이 베르니케 실어증(Wernicke's aphasia)이다. 베르니케 실어증은 브로카 실어증이 밝혀지고 10여 년이 지난 뒤 독일의 신경생리학자인 칼 베르니케(Carl Wernicke, 1848~1905)가 보고한 언어 장애 증세다. 브로카 영역의 맞은편, 구체적으로 좌뇌의 측두엽 부위에 손상이 생기면 나타난다.


베르니케 실어증은 브로카 실어증과 정반대되는 증상을 보인다. 베르니케 실어증의 원인 부위인 측두엽은 뇌의 감각 영역으로서, 우리가 귀로 들은 말을 이해하는 곳이다. 그런데 이 영역에 손상을 입으면 상대의 말을 거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맥락에 닿지 않는 말을 혼자서 장황하게 지껄이는 것과 비슷한 증세를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 베르니케 실어증은 ‘감각 실어증’이나 ‘이해 실어증’으로 불린다.


베르니케 실어증 환자의 말은 유창하지만 의미가 없다. 결과적으로 말을 심하게 더듬는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말이 유창하다는 것은 발음이나 억양 등에는 문제가 없다는 말이다. 베르니케 실어증을 갖고 있는 사람은 브로카 실어증 환자가 겪는 발음 장애를 전혀 보이지지 않는다. 구사하는 문장들에 적용된 문법 규칙 또한 별다른 문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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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들이 내뱉는 말이 담화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은 맥락에 전혀 맞지 않는 개인적인 신조어(新造語)나 대체된 다른 단어를 사용한다. 사물의 이름을 말하는 데 어려움 겪기도 한다. ‘탁자’를 ‘의자’로, ‘팔꿈치’를 ‘무릎’으로, ‘바다’를 ‘다바’로 발음한다. 원래 말하고자 하는 단어와 관련되지만 사뭇 엉뚱한 단어를 쓰거나 원래 단어의 발음을 왜곡한다.


‘탁자’나 ‘팔꿈치’를 ‘의자’나 ‘무릎’으로 바꿔 발음하는 것은 앞에 소개한 의미 착어증의 증세와 비슷하다. 그렇다면 베르니케 실어증은 착어증의 하나로 볼 수도 있다. 최초 발견자인 베르니케도 처음에 실어증이 아니라 착어증으로 보았다. 


실어증 중에는 ‘전체적 실어증(global aphasia)’으로 불리는 언어 장애가 있다. ‘전체적’이라는 명칭은, 이 실어증의 원인 부위가 실비안 열구 일대의 양대 언어 영역인 브로카 영역과 베르니케 영역에 동시에 걸쳐 있기 때문에 붙여졌다. 전체적 실어증은 부위가 매우 넓고 커 환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심각하다. 상황에 따라 오른쪽 몸에 마비가 오는 우측 반신마비에 걸릴 수 있고, 우측 반신의 감각을 잃게 되기도 한다.


언어적인 측면에서 전체적 실어증은 브로카 실어증과 베르니케 실어증의 주요 증세를 동시에 모두 보여 준다. 읽기나 쓰기 장애인 실독증과 실서증이 나타나기도 한다. 전체적 실어증은 명실공히 모든 언어 활동이나 기능에 장애가 있는 심각한 실어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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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 실어증에 걸린 환자는 독립적인 한두 단어나 구절을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자기 이름 말하기나 인사하기 등과 같은 일상적인 언어 활동은 하지 못한다. 듣기 능력도 떨어진다. 상대방의 몸짓이나 표정 등을 빌려 의미를 짐작하는 수준이다. 읽기와 쓰기에서는 낱말 한두 개 정도밖에 다루지 못한다. 


다른 실어증과 달리 언어 장애 증세가 호전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는 점도 전체적 실어증의 심각한 특징이다. 실어증은 뇌졸중이 원인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85퍼센트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전체적 실어증은 뇌졸중 중에서 증세가가 중증일 경우에 발생한다. 전체적 실어증 환자 중에 상실된 언어 능력을 회복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 까닭도 이와 같은 중증의 병세 때문일 것이다.


* 제목 커버의 배경 이미지는 베르니케 실어증을 발견한 독일 신경생리학자 칼 베르니케다. 인터넷 영어 <Wikipedia>(https://en.wikipedia.org/wiki/Carl_Wernicke)에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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