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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Oct 21. 2016

꿀벌 무리의 여왕벌은 갇혀 있었다

꿀벌의 집단 결정에서 배우는 민주적 의사결정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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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는 2000억 마리가량의 꿀벌이 산다고 한다. 널리 알려져 있는 것처럼 꿀벌은 훌륭한 농사꾼이다. 식물의 가루받이를 돕는 데 절대적인 구실을 한다. 북미에서 양봉 농가의 꿀벌이 가루받이를 담당하는 과일과 채소 작물의 수가 50여 가지에 이른다고 한다.


꿀벌 집단에 관한 잘못된 ‘신화’가 있다. 꿀벌 무리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활동을 자비로운 독재자, 곧 여왕벌이 지배한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꿀벌의 민주주의>(2012, 에코 리브르)를 쓴 토머스 D. 실리 미국 코넬대학교 생물학과 교수에 따르면, 꿀벌 집단을 하나로 모으는 힘이 일벌을 지배하는 전지적인 여왕벌(또는 왕벌)에서 비롯된다는 믿음은 아리스토텔레스 시대부터 시작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사실이 아니다.


여왕벌은 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알을 낳는 임무를 맡고 있다. (중략) 꿀벌 집단에는 수많은 벌을 감독하는 전지적인 존재가 없다. 요컨대 벌집의 운영은 일벌에 의해 집단적으로 이루어진다. 일벌 하나하나가 스스로 해야 할 일을 찾아 나서고 꿀벌 사회에 공헌한다. 일벌은 같은 환경에서 모여 살며 다양한 신호를 통해 서로 의사를 전달한다. - 토머스 D. 실리(2012), <꿀벌의 민주주의>, 에코 리브르, 13~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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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의 뇌 무게는 1밀리그램 정도다. 몸 전체가 어른 엄지 손톱만한 크기다. 꿀벌 집단은 매우 조직적이다. 여왕벌, 일벌, 수벌 등의 3계급 체제로 구성되는 대제국에서 살아간다. 한 무리 벌떼는 약 1만 마리의 일벌과 한 마리의 여왕벌이 있다고 한다.


꿀벌 제국의 언어는 매우 치밀하고 체계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유명한 8자 춤이다. 8자 춤의 비밀을 밝힌 이는 197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동물비교행동학자 카를 폰 프리슈(Karl von Frisch, 1886~1982)였다. 그가 연구한 대상은 유럽 꿀벌(European honeybee)이었다.  프리슈 박사가 연구한 꿀벌 언어 시스템은 다음 순서에 따라 작동한다.


㉠ 탐색벌(선발대로 나가 꿀을 찾는 구실을 하는 일벌)이 선발대로 나가 꿀을 찾는다.
㉡ 꿀을 찾은 탐색벌이 돌아와 벌집의 벽쪽을 향한 후 다음 정보를 담은 8자 춤을 춘다.
  - 밀원(蜜源, 꿀이 있는 장소)을 춤의 궤적으로 표현한다.
  - 밀원까지의 거리를 춤의 횟수(속도)로 표현한다.
  - 꿀의 질을 춤의 활기찬 정도로 표현한다.
㉢ 일벌들이 탐색벌이 춘 8자 춤의 정보를 해석한 뒤 밀원으로 날아가 꿀을 딴다.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탐색벌은 꿀이 있는 곳이 태양 방향과 같은 곳이면 8자를 옆으로 눕혔을 때의 가운데 수직선을 기준으로 위를 향하는 궤적을 따라 춤을 춘다. 꿀이 있는 곳의 방향이 태양과 반대쪽이면 옆으로 누운 8자의 수직선 방향이 아래로 향하도록 춤을 춘다.


8자 춤의 횟수와 활기찬 정도는 밀원까지의 거리나 꿀의 질을 알려 준다. 조사 결과 탐색벌이 15초 안에 8자 춤을 열 번 돌면 100미터, 여섯 번을 돌면 500미터, 네 번을 돌면 1500미터 가량 떨어진 곳에 꿀이 있었다고 한다. 춤을 추는 속도와 밀원까지의 거리가 반비례 관계에 있는 것이다.


유럽 꿀벌은 최대 11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밀원의 거리를 정확하게 알려 준다고 한다. 춤의 활기찬 정도는 꿀의 질과 관련되는 단서였다. 프리슈 박사에 따르면 날갯짓이 힘찰수록 꿀의 질이 더 좋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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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 무리의 ‘집단지성’이 가장 빛을 발하는 시기는 늦봄과 초여름에 걸쳐 일어난다. 집단의 보금자리 공간(벌통이나 속이 빈 나무)에 구성원이 너무 많아져 일단의 무리를 내보내 새 집터를 찾는 과정이 이때 일어난다. 실리 교수가 묘사한 꿀벌 무리의 집터 찾기 과정을 보면 경이롭다.


새 집터를 찾기 위해 옛 여왕벌과 함께 보금자리를 떠나는 일벌은 전체 무리의 3분의 2에 해당한다고 한다. 나머지 3분의 1가량은 새 여왕벌과 함께 옛집에 남는다. 이사하는 벌들은 30미터 남짓 이동해 턱수염 모양의 덩어리를 이룬 채 몇 시간 혹은 며칠 동안 그대로 함께 붙어 다닌다고 한다.

 

그들은 일단 나뭇가지 같은 곳에 임시 거처를 마련한다. 곧이어 무리 가운데 수백 마리의 정찰대가 주변 약 70제곱킬로미터를 샅샅이 뒤져 10여 개의 집터 후보지를 찾아낸다. 그런 다음 가장 적합한 집터를 결정하기 위해 민주적인 방법으로 여러 가지 기준에 따라 각 후보지를 평가해 가장 좋은 곳을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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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 교수는 집단지성을 통해 새 보금자리를 완벽하게 선택하는 꿀벌들의 의사소통 방식에서 놀라운 지혜를 이끌어냈다. “공동 이익과 상호 존중에 기초한 개인들로 결정 집단을 구성하라”, “문제에 대한 다양한 해결책을 모색하라”, “논쟁을 통해 집단 지식을 종합하라”, “응집력, 정확도, 속도에 대한 정족수를 활용하라” 등이다.


나에게 가장 인상적인 교훈은 “집단적 사고에서 지도자의 영향을 최소화하라”였다. 분봉하는 꿀벌 집단의 정찰벌들이 새 집터 후보지를 놓고 논쟁을 시작할 때, 여왕벌은 그 주변의 작은 우리 안에 갇혀 있다. 꿀벌 집단은 능숙하게 새 집터를 선택한다. 지도자가 없어도(여왕벌은 분리되어 있었다.) 집단적 힘이 다양한 해결책을 찾아낸다. 여러 가지 가능성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최선이 아닌 방법을 걸러낸다.  

   

정찰벌이 지도자 없이도 이 모든 일을 잘해낸다는 것은 경탄할 만하다. 이들은 분명 가장 큰 함정에 빠지지 않고도 꿀벌들을 조정해 훌륭한 집단 결정에 다다른다. 여기서 가장 큰 함정이란 특정한 결론을 옹호하거나 집단이 선택지를 깊고 넓게 살펴보지 못하도록 군림하는 지도자를 말한다. (중략) 집터 정찰대는 민주적 집단에서 지도자의 역할은 주로 토론의 ‘결론’이 아니라 ‘과정’을 형성하는 것이라는 점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또한 민주적 집단의 구성원이 당면한 문제를 이해하고 결정을 이루어내는 데 적용할 규정에 동의한다면 지도자 없이도 잘 기능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 토머스 D. 실리(2012), 위의 책, 274~275쪽.


* 제목 커버의 배경 이미지는 토머스 D. 실리 교수다. 미국 코넬대학교 홈페이지(http://www.nbb.cornell.edu/seeley.shtml)에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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