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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Nov 18. 2016

그는 결코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다

비폭력 저항 운동의 힘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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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교사다. 2000년에 가입했으니 햇수로 17년째다. 전교조의 싸움을 상징하는(?) 연가 ‘투쟁’을 제법 했다. 해마다 한두 번씩은 상경했으니 얼추 30회는 넘겼으리라.     


연가는 법률이 교사들에게 보장하는 합법적인 휴가 중 하나다. 그러나 늘 ‘불법 딱지’가 붙었다. <국가공무원법>상의 집단행동 금지 조항으로 원천 봉쇄되기 일쑤였다. 그래도 어쨌든 꾸준히 참여하려고 노력했다. 교육당국이 내놓는 징계니 고발이니 하는 말들에 위축감을 느끼고 겁을 내긴 했지만 연가 자체는 폭력적인 방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2     


박근혜 대통령 퇴진 목소리가 크다. 지난 주말에는 100만 명이 모였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전국민적인 분노의 크기를 보여준다.     


한편에서 성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비폭력 촛불 시위만으로 파렴치한 정권을 끝장낼 수 있을까 하는. 김종필 전 총리는 5000만 국민이 전부 달려들어도 박근혜 대통령은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음이 조급해진 사람들이 외친다. 촛불은 힘이 없다. 더 자극적인 무언가를 해야 한다. 그들은 폭력 투쟁을 원하고 있을지 모른다.


미국 정치학자 에리카 체노웨스와 마리아 스테펀이 이들 선의의 ‘폭력주의자’들을 설득할 수 있는 중요한 논거를 제시했다. <왜 시민행동인가-비폭력 투쟁의 전략적 논리>라는 책에서였다.[아래, 이 책의 내용은 스르자 포포비치(2016), <독재자를 무너뜨리는 법>, 2016, 226~227쪽에서 가져옴.]     


체노웨스와 스테펀은 1900~2006년 사이에 일어난 분쟁 중 자료를 찾을 수 있는 총 323건을 살폈다고 한다. 성공한 경우와 실패한 경우를 나누고 각각의 이유를 분석했다. 비폭력 시위가 온전히, 혹은 부분적으로 성공을 거둔 경우가 폭력 시위보다 두 배 가까이 많았다. 26퍼센트 대 53퍼센트였다. 냉전이 끝난 1980년대 이후 전 세계적으로 군비 경쟁의 동력이 사라진 이후를 보면 비폭력 시위의 성공 비율이 훨씬 우세했다고 한다.  

   

폭력 시위와 비폭력 시위 간의 차이는 참여자 수에서도 나타났다. 무력을 사용한 저항 운동은 보통 5만 명 정도로 참여자가 국한되었다고 한다. 합법적인 연가조차 과격한 ‘투쟁’ 이미지가 덧붙여지면서 해마다 참여자가 급감했다. 쇠파이프와 돌멩이가 날아다니는 광장에 100만 명이 모이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하다.    

 

비폭력 투쟁의 효과는 장기적으로 이어졌다. 투쟁이 종료된 후 비폭력 저항 운동을 경험한 국가들이 5년 동안 민주주의 국가로 유지될 확률이 40퍼센트 이상이었다. 무력을 통한 정권 교체가 있었던 국가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할 확률은 5퍼센트 미만이었다.     


비폭력을 선택할 경우 10년 안에 다시 내란을 겪을 확률은 28퍼센트였다. 무력을 선택하면 43퍼센트로 증가한다. 포포비치는 이렇게 말했다. “숫자는 한결같고 이것이 의미하는 바도 반박의 여지가 없다. 안정적이고 지속적이며 통합적인 민주적 변화를 원한다면 무력이 아닌 비폭력이 답이다.”  

   

3     


폭력은 두려움을 수반한다. 포포비치는 우리가 두려움을 느끼게 되면 자신을 보호할 강력한 지도자를 찾게 된다고 보았다. 폭력적인 수단을 쓰고 기꺼이 희생을 감수하고자 하는 강경한 1퍼센트에 의지하려는 심리 기제가 작동한다. ‘그들이 하겠지’ 하는 회피 심리가 뒤따른다.


폭력과 비폭력은 힘을 가하는 방향과 ‘적’을 제압하는 방식이 상이하다. 폭력 투쟁을 하는 이들은 권력의 기둥을 ‘밀어서’ 쓰러뜨리려고 한다고 한다. 비폭력 저항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권력의 기둥을 ‘잡아당겨’ 우리 편으로 만들려고 애쓴다.      


비폭력 운동에서는, 교통경찰처럼 평범한 사람이든 칼럼니스트 같은 영향력 있는 사람이든, 사람들을 우리 대의에 동조하게끔 변화시키려 노력하며 그들이 우리와 함께 싸우도록 설득한다. 그룹 정체성을 구축하고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해 희망컨대 그 안에 충분히 많은 사람을 끌어들여, 보다 많은 시민들이 우리의 대의에 이끌리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폭력적으로 누군가를 겁주어 쫓아내지 않기 때문에, 친구와 이웃들은 독재자의 보호를 받고 싶어하는 본능적 욕구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결국 이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동굴 앞을 지키고 선 못난 괴물을 등지도록 만드는 유일한 길이다. - 스르자 포포비치(2016), 위의 책, 229~230쪽.    

 

4


박근혜 대통령은 ‘독재자의 딸’이다. 쿠데타 주역의 직계다. 우리 나이로 9살 때 부친의 쿠데타를 목격했다. 영구 독재를 획책한 유신헌법 아래서 영부인 노릇을 하며 권력 시스템을 작동시키는 방식을 학습했다. 그는 싸우는 방법을 알며, 이미 싸울 준비를 갖추었다. 언제든 사소한 폭력 시위를 빌미로 광장에 철의 장막을 칠 수 있다.    

 

어느 심리학자의 분석처럼, 박 대통령은 최고 권력자의 자리를 누리는 것을 존재의 의미로 여기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는 대통령이 되어서 청와대에 간 것이 아니다. 청와대는 그가 원래 살았던, 유년기의 기억과 성장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집’이다. 언제든 폭력으로 폭력을 제압할 수 있다고 여기는 한 그는 결코 스스로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폭력 시위는 육체적으로 강인한 활동가들에게만 유효하다. (중략) 결국 당신의 운동을 지지하려는 할머니, 교수, 시인 등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은 모두 소외된다.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당신 편의 모든 사람과 함께 임계점에 도달해야 하는데, 폭력 시위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 스르자 포포비치(2016), 위의 책, 105쪽.     


미국 <워싱턴 포스트>가 국가위험도를 분석하는 뉴욕의 유력 정치컨설팅 업체 ‘유라시아 그룹’의 13일자 보고서를 인용해 박 대통령의 퇴진 가능성을 70퍼센트로 예측했다고 한다. 이달 초 30퍼센트였던 퇴진 확률이 2주만에 두 배 이상 늘었단다. 이번 사건이 닉슨 대통령의 하야를 불러온 워터게이트보다 심각하다는 논평도 내놓았다고 한다. 다만 폭력을 조심하면서 ‘희망’을 가져볼 만하지 않은가.


* 제목 커버의 배경 사진은 지난 11월 12일 열린 박근혜 퇴진 민중총궐기 대회 광경을 찍은 것이다. 인터넷 뉴스 매체 <오마이뉴스>(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260682)에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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