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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Dec 06. 2016

‘한국판 카스트제도’와 관료 통제의 이데올로기

공무원과 교원의 정치적 중립성과 정치적 자유에 대하여

1

    

민간부문 노동자들은 정치자금 기부를 제외한 거의 모든 유형의 정치활동 자유가 주어져 있다. 민간부문 노동자들이 향유하는 정치활동에는 선거운동도 포함된다. 1998년 노사정위원회 결정에 따른 결과라고 한다.


공공부문 노동자인 공무원은 다르다. 대다수 일반직 공무원은 정치적 자유와 노동기본권을 박탈당하고 있다.[아래 표 참조]     

[출처: 정영태(2010), <공무원의 정치적 자유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논거와 문제점>, ≪한국정치연구≫ 제19집 제1호.]

     

2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사법적 판단 잣대는 2004년 3월 25일자로 나온 헌법재판소(헌재)의 판결(2001헌마710, 2004. 3. 25.)에 담겨 있다. 정치 중립성이나 정치 활동에 관련된 주요 논지를 요약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가) 교육은 본질상 이상적이고 비권력적인 것임에 반해 정치는 현실적이고 권력적인 것이다. 따라서 양자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나) 교사들은, 미성숙하고 감수성과 모방성과 수용성이 왕성한 초・중・고교생에게 중대한 영향을 주므로 교육자로서 특별한 처신이 요구되는 바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 한다.
(다) 교사들의 정치 활동이 교육수혜자인 학생의 입장에서 볼 때 교육권(수업권, 학습권) 침해로 받여들여질 수 있다.
(라) 초・중등학교 교원은 학생을 교육하고 대학 교원은 학문을 연구한다는 직무상의 차이가 법률에 규정되어 있다. 따라서 전자에게 정당가입과 선거운동의 자유를 금지하면서 후자에게 허용하는 것은 합리적인 차별이다.     


(가)는 교사의 정치적 자유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의 핵심 전제다. 교육감 선거를 포함해 교육현장 자체가 정당정치와 밀접하게 관련되는 경우가 많다. 인문학이나 사회학 분야의 교육은 과목 성격상 내용을 둘러싼 다양한 해석과 관점이 개입할 수밖에 없으므로 정치적 관점의 자장권 아래 놓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교육과 정치를 분리하면서 교육이 현실 정치와 무관하다는 (가)의 논리는 성립하기 힘들다.


성숙한 대학생과 달리 초・중・고교생은 미숙하고 자아의 주체성이 미약하다는 통념적인 관점에 터 잡고 있는 논리가 (나)다. 일반적으로 10대 청소년들이 교사보다 또래 집단의 강력한 영향 아래 있다는 점, 과거에 비해 훨씬 개방적으로 변한 학교교육 현실을 고려할 때 교사의 정치적 관점과 행위가 언제든지 검증되고 비판받을 수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쉽게 수긍하기 힘들다.


문제가 되는 경우는 교사가 수업 중에 자신의 정치적 관점을 일방적으로 학생들에게 전달하거나 강요할 때다. 10대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정치적 상황과 사회 현실을 각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유권자라는 현실 정치의 주체이면서도 정치에 별다른 관심이 없고 투표는커녕 정치 자체에 혐오감을 갖고 있는 정치 냉소주의자 어른들보다 나아 보인다.


교사의 정치적 자유와 정치활동이 학생과 학부모의 교육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다)의 주장을 보자. 교사의 정치활동으로 인한 수업권이나 학습권 침해 여부는 경험적인 문제다. 교사가 수업 중에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학생들에게 강요하고 주입하기는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다) 식의 논리는 그런 현실을 무시한 채 교사들의 정치 행위 자체가 학생과 학부모의 교육권을 무조건적으로 침해한다고 본다는 점에서 지나치다. 실제 교육권이 침해되는 경우가 발생하더라도 복무규정과 학생・학부모의 항의 등을 통해 규제할 수 있다.


교사와 교수의 직무상 차이(단순 교육 기능 대 교육과 연구 기능 병행)에 관한 (라) 역시 뜯어볼 점들이 많다. 교수들이 다루는 연구주제나 방법은 그 선택 과정이 정치적이라는 점에서 연구 자체가 정치적 성격을 갖는다. ‘순수한’ 학문 연구가 존재하기 힘들다는 말이다. 교사들이 초・중・고교에서 실시하는 교육 또한 민주시민의 양성이라는 목표와 관련되므로 정치적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

     

3     


헌재는 공무원과 교원의 정치활동을 제한하는 법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에서 번번이 ‘합헌’ 결정을 내렸다. ‘공무원은 국민 전체의 봉사자이어야 한다’, ‘정치와 행정은 분리되어야 한다’, ‘공무원은 시민사회의 갈등을 중립적인 위치에서 조정‧중재하는 위치에 있다’ 등을 이유로 들며 정치적 자유와 정치활동을 제한했다. 정영태(2010)를 따라, 공무원과 교사들에게 정치 중립성을 강제하고 그들의 정치적 자유권을 제한하는 헌재 논리의 문제점을 짚어 보자.


공무원과 교원의 정치 자유를 제한함으로써 실현시키고자 하는 이익(국민 전체의 이익, 행정의 독자성, 공적 중재자 등)의 내용이 추상적이고 불명하다. 이들이 정치적 자유권을 행사할 때 발생할 수 있는 피해가 즉각적이거나 직접적이지 않음에도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은 명확성의 원칙과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난다.


다원주의적 민주주의 이론에 따르면 국민 전체의 이익, 또는 국익의 구체적인 내용은 다양한 이해집간 간의 경쟁과 타협에 의해 사후적으로 결정된다. 그러한 결과물이 나오기 전까지 국민 전체의 이익이나 국익의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으며, 어느 집단(의 이익)도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주장할 수 없다. 구체적인 내용이 분명치 않은 국민 전체의 이익이나 국익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에 위배된다.  


일반직 공무원과 교원은 장소와 시간을 불문하고 모든 정치적 자유와 활동이 전면적으로 제한된다. 근무 중인 때와 그렇지 않은 때, 근무지 안과 근무지 바깥, 법률에 정해진 방법과 그렇지 않은 방법을 구별하지 않고 정치적 자유권을 박탈당한다. 정영태는 이러한 상황을 ‘한국판 카스트제도’에 빗댔다.


공무원과 교원들에게 적용되는 정치 중립성 원칙은 기본 질서를 유지하는 보수적인 이데올로기로 작용할 수 있다. 공무원과 교사들은 국가 내부 사정을 일반인보다 잘 알고 있는 주체들이다. 이들이 정치 중립성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함으로써 정치개혁이나 교육개혁의 주체로 나서기를 꺼려하거나 개혁 의제를 외면하게 될 경우 국가나 사회 전체의 입장에서 손실이 클 것이다.


한상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그 위헌적 특성에도 불구하고 직업관료(공무원)와 전문직(교원)에 대해 일체의 정치활동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이들을 대통령-총리-장관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계층제 조직에 의한 관료적・행정적 통제구조 속으로 밀어넣음으로써 통치권력을 절대화하는 유효한 장치로 기능하게 된다고 보았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공무원의 정치활동 금지 조치는 권위주의 체제의 성립과 유지에 큰 역할을 한다. 한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여론집단이 되는 공무원과 교원들의 입과 귀를 막아 버림으로써 사회의 다양한 의견이나 이해관계들이 유효하게 정치화되는 길을 협애화할 뿐 아니라, 그러한 의견・이해관계들이 행정과정을 통해 국가영역으로 포섭되는 것 자체를 차단하기 때문이다. 권위주의 체제에서 항용 나타나기 마련인 소위 탈정치화 및 정치배제의 경향들이나 관료주의의 모습들(특히 관료주의적 권위주의 체제)은 바로 이 부분에서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난다. - 한상희(2011), <교사, 공무원의 정치적 기본권에 대한 헌법적 검토>, 2011년 8월 8일 참여연대 국회 공청회 자료, 35쪽.     


5     


공무원과 교원의 정치적 자유권 허용 주장은 일부 공무원‧교원단체나 ‘급진적인’ 공무원‧교사들의 일방적인 요구가 아니다. 국내외적으로 공무원과 교원의 정치 기본권 문제는 표현의 자유와 권리 차원에서 논의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에 따라 제약보다는 적극 보장을 권고하는 조치들이 잇따르고 있다.


국내에서는 2006년 1월 국가인권위원회 ‘2007~2011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 권고안’(아래 ‘권고안’)이 나왔다. 권고안에서는 시민적・정치적 권리 보호를 위한 국민 참정권 보장을 주요 목표로 내세우면서 교원・공무원의 정치적 자유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권고안은 <국가공무원법> 제65조 제1항과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 제9조 등이 공무원의 정치 활동을 포괄적으로 제한하고, 대학교수의 정치활동은 허용하지만 초・중등 교사의 정치 활동을 제한하는 점도 지적했다. 국가 정책 방향을 정치・경제・교육・문화 수준과 국제 기준을 고려해 국민의 의사를 최대한 반영할 수 있도록 참정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공무원의 정치 활동을 과도하게 금지하는 법을 정비하여 공무원과 교원의 정치 활동 범위를 확대하는 것을 핵심 추진과제로 권고했다.


국외에서 나온 권고안 중 대표적인 것은 2011년 3월 21일 유엔 인권이사회 총회에 프랑크 라 뤼 유엔 의사표현의자유 특별보고관(아래 ‘특별보고관’)이 제출한 <Mission to the Republic of Korea>다. 특별보고관은 요약문에서 대한민국이 지난 수십 년간 역동적인 민주국가로서 이룩한 성과를 높이 평가했다. 그런데 2008년 촛불 시위 이후, 정부의 입장과 일치하지 않는 견해를 밝힌 개인들을 국제적 기준에 일치하지 않는 국내 법규에 근거하여 사법 조치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점을 들어 개인의 의사와 표현의 자유에 관한 권리에 대한 제약이 늘어나고 있음을 우려했다.


특별보고관은 대한민국의 민주적 기반이 더욱 공고해 질 수 있도록, 주요 현안 각각에 대해 모든 개인이 다양한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권리를 법적으로나 실제적으로 전면 보장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특히 대한민국 정부가 교사들이 개인으로서 가지고 있는 표현의 자유에 관한 권리를, 그것이 교육정책과 같은 공익적 사안과 관련 공무 외에 행사되는 경우, 보장할 것을 강조했다.


6


국내외적으로 공무원과 교원의 정치 활동 범위 확대 요구가 거세지고 있으나 우리 현실은 쉽게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지난 12월 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이정미 정의당 의원이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교원노조법>) 개정안을 발의한 것이 거의 유일한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국제기준에 따라 노조가입 범위에 해고자를 포함하고, 노동 3권을 부여하는 내용이 들어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두 가지 사실을 언급하고자 한다. 첫째, <교원노조법>은 1999년 제정 이후 27년째 단 한 차례도 개정되지 않았다. 둘째, 고 김영한 청와대 정무수석 비망록에 따르면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헌재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선고 이틀 전에 미리 파악하고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후속 조처를 사전에 논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무원과 교원들에 대한 위헌적인 정치 중립 의무를 강제하고 있는 ‘원흉’ 인 헌재가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 문제에 휩싸이게 되었다.


* 제목 커버의 배경 이미지는 헌법재판소 누리집(https://www.ccourt.go.kr/cckhome/kor/main/index.do) 초기 화면 캡처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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