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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Dec 14. 2016

그들이 강조한 것도 ‘도덕’과 ‘인격’이었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통해 본 학교교육의 문제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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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1984년 경북 영주고를 졸업했다. 그해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해 1988년에 졸업했다. 그 사이 대학 3학년 때인 1987년에 만 20세 나이로 제29회 사법시험에 최연소 합격했다. 이른바 ‘소년 등과’의 주인공이 되었다. 사법연수원 수료 후 만 23세 나이로 검사가 되었다. 40대 과장에게 ‘영감님’ 소리를 들으며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승승장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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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시절 우병우의 장래 희망은 검사였다. 한병태 전 영주고 교장은 우병우의 고 3 때 담임이었다. 어느 날 우병우에게 “왜 검사를 하려고 하느냐”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는 “정의로운 사회와 부정과 부패가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한 전 교장은 우병우가 당돌하리만큼 또박또박 말했으며, “참 독특한 학생으로 기억한다”라고 말했다.     


우병우는 머리가 비상했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은 재임 시 그가 자신이 맡은 사건을 며칠만에 완전히 파악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서울지검, 대검, 법무부 요직을 두루 거친 것도 그의 탁월한 업무 능력 때문이라는 평가가 많다.     


우병우는 검사 시절 별명이 ‘독종’이었다고 한다. 사건을 한 번 물면 절대 그냥 놓지 않는 데서 생긴 별명이라고 한다. 그는 부하 검사들을 혹독하게 훈련시킨 것으로도 유명하다. 또 다른 유명한 별명이 ‘기브스’다. 자존심이 강해 어지간해서는 목을 숙이지 않는 평소 태도를 빗댄 이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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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병우가 대학 시절 얻은 ‘기브스’라는 별명은 검사가 되면서 더욱 진가를 발휘한 것 같다. 그는 검사로 늦게 임용된 대학 선배에게 반발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싸가지 없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고 한다.     

 

우병우가 대구지검 특수부장으로 재직할 때 남긴 일화가 흥미롭다. 어느 날 카페에서 “요즘 민선 지자체장들이 선거로 뽑혀서 그런지 너무 뻣뻣하다”라고 크게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그런데 그 앞에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이 연신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고 한다. 그 지역의 어느 군수였다고 한다.     


우병우의 학창 시절 동기들은 “우 전 수석은 캐릭터 자체가 만나서 1시간 정도만 이야기하면 좋아할 수가 없는 사람”이라며 “사람을 보는 눈빛 자체가 건방지기 때문에 이야기를 해보면 좀 비위가 상한다”라고 평가했다. 인간적인 관계를 맺기에 부담스러운 사람이라는 말들이다.     


이런 일화도 있다. 어느 날 우병우가 식당 앞에서 예쁜 여학생을 발견했다. 그는 “내가 우병우인데, 지금 사법 시험에 합격해 조금 있으면 사법연수원에 들어간다. 네 팔자를 펴주겠다”라면서 대시했다고 한다. 그렇게 이야기했는데도 여학생이 거절하자 우병우는 굉장히 분개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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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히 건방졌다. 말투는 공손했지만 태도엔 오만함과 거만함이 가득 묻어있었다.”     


2009년 우병우가 주임검사로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10시간 넘게 강도 높게 조사할 당시 수사 분위기를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가 회고록에서 표현한 문장이라고 한다.

    

2008년 12월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노무현의 형 노건평이 뇌물 수수혐의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정‧관계에 뇌물을 공여한 혐의로 각각 구속되었다. 그 뒤 검찰 수사진이 전면 교체되었다. 2009년 1월, 이인규가 중앙수사부(중수부) 부장에 임명되었고, 홍만표가 수사기획관에, 우병우가 중앙수사1과장에 임명되었다.

     

전직 대통령 노무현에 대한 수사가 몇 개월에 걸쳐 이루어졌다. 주변인물, 일가족 등을 차례 차례 소환하였다. 중수부는 3월 중 노무현의 측근인 이광재 민주당 의원 등을 구속했고, 4월에는 노무현의 배우자 권양숙과 노무현을 소환해 조사하기에 이르렀다.      


우병우 중수1과장은 그 사건의 주임검사였다. 윗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노무현에 대한 구속 영장 청구를 주장하며 자신의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우병우는 노무현과 독대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노무현 씨, 당신은 더 이상 대통령도 사법고시 선배님도 아닌 그저 뇌물 수수 혐의자로서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다”     


전직 대통령의 뇌물 수수 혐의에 대해 성역 없는 수사를 천명한 강직한 검사의 기개로 볼 수 있을까. 그러나 검찰 수사는 무죄추정의 원칙과 피의사실 공표 금지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채 언론을 통해 공공연히 흘러나오고 시시각각 브리핑 되었다. 권양숙이 선물로 받은 고가의 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보도가 이어지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공공의 적’으로 몰렸다.     

 

괴로움을 토로하던 노 전 대통령이 급기야 2009년 5월 23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16년 2월 25일, 당시 중수부장 이인규는 권양숙이 시계를 받고 버린 건 사실이지만, 논두렁에 버렸다는 자극적인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었으며 국정원의 여론 공작이었다고 폭로했다. 주임검사였던 우병우가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책임이 있었다고 말하면 지나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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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병우보다 여섯 살 어린 남동생이 한 언론과 가진 인터뷰 기사를 보았다. 그는 형의 모습이 자신이 알던 것과 너무 달라 놀랐다고 말했다고 한다. “내가 모르는 형의 모습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며 “형은 어렸을 때 같이 야구도 하는 등 활달하고 친구도 많았는데 차갑고 인간관계의 폭이 좁다는 보도는 내가 알던 형과 다르다”고 말했다.    

 

나는 우병우 동생의 말 속에 일말의 진실이 담겨 있다고 본다. 부정과 부패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학창 시절 우병우의 모습도 전혀 거짓말이 아닐 것이라 믿는다. 그랬던 그를 ‘싸가지 없는’ ‘기브스’와 ‘독종’으로 만들고, 검찰의 ‘황태자’처럼 군림하면서 권력 농단 시스템의 한 자락을 붙잡고 국정을 혼란스럽게 만든 ‘공범’ 자리에 있게 한 것이 무엇이었을까.    

 

나는 그것이 그를 권력에 눈이 먼 ‘법률 기계’로 만드는 이 나라의 검찰 시스템과 전체 공직사회를 휘감고 있는 승진 지상주의 분위기, 때로 노골적으로 때로 은밀하게 머리 좋은 ‘천재’들을 추동하는 우리 사회의 출세 문화에 말미암았다고 보고 싶다. 나아가 그 모든 것은 오늘날 우리나라 학교를 지배하는 도덕‧윤리교육의 그릇된 가정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본다.   

  

오늘날 학교가 강조하는 인성교육의 핵심은 ‘착함’이다. 그 밑바탕에 권위에 대한 순종이 있다. 착한 아이는 학교와 교사의 권위에 순종한다. 그들은 덕스러운 공동체 구성원, 인격적으로 성숙한 존재로 칭찬을 받는다.

      

그러나 많은 도덕교육론자들이 적실히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파시즘과 나치즘 아래에서 크게 강조된 것이 덕과 인격이었다. 학생들에게 정직과 용기, 자기희생과 동료애와 충성심 등 누가 보아도 ‘아름다운’ 덕목들을 가르친 나치 치하의 독일이 어떤 최후를 맞았는지 떠올려 보자. 히틀러와 나치는 유대인과 사회적 열등 종족, 전쟁 포로 등 1200만 명을 학살한 뒤 처절하게 무너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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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착하고 정직한 학생이었을 ‘우병우’에게 공공성에 대한 관념이 자리잡을 기회가 있었을까. 거의 없었을 것이다.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입학한 우병우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앞날(의 출세)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큰 기대와, 그들의 전폭적인 응원과 지지였을 테니까. 친구들과 소소한 관계를 맺고 세상을 바라보는 일은 그에게 무의미한 일이었을 뿐이다.     


김 선생님(가명) 아들 갑수(가명)는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다. 갑수가 다니는 학교는 비수도권 지역에 있다. ‘자율’이라는 글자가 들어가는, 고교 위계 서열 ‘제3군’에 속해 있다. 얼마 전 김 선생님이 갑수 이야기를 꺼냈다.     

“방학이 되면 반 아이들 대여섯 명만 빼고 나머지 모두 서울로 올라간대.”
“왜요?”
“학원에서 선행하거나 입시 준비를 한다더군.”     


비수도권 지방에 있는 제3군 학교가 이렇다. 서울이나 수도권을 중심으로 포진한 ‘제1군, 제2군’ 학교 학생들은 지금 어떻게 방학을 맞이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을까. 우병우가 성장한 시대로부터 30년 한 세대가 지났으나 미래의 ‘우병우’들은 여전히 착하고 성실하게 공부하고 있지 않은가.

     

*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경력과 고교‧대학 시절 일화 등 내용 전반은 한국어 <위키백과>, <세모이 TV>의 ‘여대생에게 거절당한 우병우의 학창 시절 일화’ 동영상을 두루 참조해 서술한 것이다.

* 제목 커버의 배경 이미지는 지난 11월 6일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횡령과 직권남용 혐의에 대한 피고발인 조사를 받으러 나왔다가 가족회사의 자금 유용 여부를 묻는 기자를 노려보는 유명한 사진이다. <한겨레>(http://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774526.html)에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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