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역사 교과서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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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국정 역사 교과서에 관한 이야기다. 이 교과서의 정체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이렇다. 박근혜의, 박근혜에 의한, 박근혜를 위한 교과서다.
국정 역사 교과서는 3종이다. 중학교 <역사 1>과 <역사 2>, 고등학교 <한국사>다. 얼마 전 현장 검토본을 공개했다. 인터넷에 공개한 국정 교과서 현장 검토본의 정식 ‘홍보용’ 이름을 아는가. ‘국민과 함께하는 올바른 역사교과서’다.
‘국민과 함께하는 올바른’ 교과서에 대한 시민 여론을 보자. 국민하고 함께하고 싶어하는 교육부의 바람과 크게 다르다. 현장검토본 공개 직후 실시한 한 여론조사에서 국정교과서 찬성이 17퍼센트, 반대가 67퍼센트로 나타났다. ‘국민과 함께하는 올바른’ 교과서가 아니라 ‘대다수 국민이 반대하는 틀린’ 교과서가 진실에 가까운 이름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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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교과서 세 권 분량이 모두 합쳐 643쪽이라고 한다. 집필진 31명이 대략 20쪽 정도씩의 분량을 썼다. 1인당 집필료가 최소 천수백만 원대에서 최대 3657만원이라고 한다. 집필자별로 평균 20쪽 쓰고 2481만원을 받았다. 1쪽당 170만원꼴이다. 통상적인 교과서 집필 원고료에 비해 턱없이 높다. 저자를 매수한 것이라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국정 교과서 사업에 총 44억 원의 국민 세금이 들어간다. 집필료로 7억6천만 원을 썼다. 그렇게 큰 돈을 만든 교과서 수준을 보자. 학교 현장에서 30여년째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김육훈 역사교육연구소 소장은 국정교과서 문제를 두 가지로 짚었다.
내용의 편향성이다. “‘박정희 추모 교과서’라고 이름 붙여도 될 정도”라면서 “박정희 독재가 불가피했다, 나아가 박정희 독재가 한국 사회에 공헌했다는 식의 독재 미화”로 서술했다고 비판했다.
‘친일’ ‘북한’ 관련 서술에 상당한 문제가 있다. 김 소장은 이렇게 말했다.
“해방 후 친일 청산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은폐하고 있다. 북한에 대한 서술은 시종일관 반북·반공만을 강조하고 있다. 북한이 우리 민족의 일부이고 평화통일의 상대이기도 한데, 학생들이 이 책으로 공부하고 난 다음 북한과 통일하고 싶은 생각이 들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전국역사교사모임 등 485개 단체가 속한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는 국정교과서가 독재자 박정희의 과오를 축소·왜곡하고 업적은 확대·과장한, 그야말로 ‘박정희를 위한 박근혜의 효도교과서’라고 했다. 말 그대로 아버지 박정희에게 헌정하는 교과서다.
박정희를 언급하는 분량이 압도적으로 많다. 고등학교 <한국사>의 경우 261쪽에서 269쪽까지 9쪽에 걸쳐 박정희의 이력과 업적을 다루었다. 한 쪽에 7번이나 등장하는 대목이 있다고 한다. ‘박정희’라는 이름 석 자가 책 전체에서 총 23회나 언급된다고 한다. 세종대왕, 이순신 등 교과서에 등장하는 모든 역사적 인물을 통틀어 가장 많은 수치라고 한다. 국정교과서가 ‘박정희 찬양’ 교과서라는 증거 아닌가.
박정희 정부의 새마을운동에 대해서도 아홉 줄에 걸쳐(고등 <한국사> 268쪽) 장점을 나열하다가 단점은 딱 한 줄이라고 한다. “유신 체제 유지에 이용되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는 식의 유체이탈식 문장이다. 어려운 용어와 낯선 개념들을 기계적으로 사용해 읽기도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삼류 무협지’ 수준의 편집이라는 혹평까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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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부가 구성됨으로써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대한민국이 수립되었다(1948. 8. 15.).”
국정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현장 검토본 250쪽에 있는 문장이다. 이번 국정 교과서와 관련하여 가장 거센 논란을 가져온 문장 중 하나다. 이 문장은 틀렸다. 대한민국은 헌법 전문에 1919년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은 나라로 기술되어 있다. 우리나라 건국의 법적 정통성이 1919년부터 시작되었다는 말이다.
이승만 정권이 출범한 1948년은 ‘건국 30주년’이 되는 해다. 1948년 정부 수립 장면을 찍은 사진 속 현수막 문구가 ‘대한민국 수립’이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다. 이승만 정권 공보처가 1948년 9월 1일 정부 출범 후 처음 발행한 ‘관보 1호’의 연도 표기도 ‘大韓民國三0年’으로 되어 있다. 저들이 국부로 숭배하고 싶은 이승만조차 대한민국 건국 시점을 1919년으로 보았다. 사진과 관보 등 역사적 자료는 1948년을 대한민국 ‘건국’이나 ‘수립’이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해로 기록하고 있다.
저들은 왜 1948년 건국절에 집착하는가. 매국노 친일파의 반민족적 죄상을 대한민국 역사에서 뺄 수밖에 없게 된다. 친일파들을 건국의 주역으로 추켜세울 수 있다. 이승만을 국부로 추앙하는 역사 왜곡 작업도 더 수월하게 추진할 수 있다. 우리 헌법 전문에 새겨 넣은 대한민국 법통의 역사를 부정하는 자기모순에 빠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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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 역사 교과서는 우리나라 역사뿐 아니라 세계사도 왜곡한 모양이다. 국정 중학교 <역사> 교과서에서 독일 나치 정권의 등장을 미화하고 부정적 서술을 최소화했다. “대공황을 전후하여 사회 혼란이 가중되자 사람들은 안정과 질서를 가져다줄 강력한 정권의 출현을 희망하였다”라고 썼다. 사회 혼란을 막을 수 있다면 나치 히틀러와 같은 전체주의 독재 체제가 출현해도 된다는 식의 논리다.
나치 히틀러가 학살한 유태인, 사회적 열등 인간, 전쟁 포로 숫자가 1200만 명이다. 전무후무한 반인륜적 학살의 역사다. 그런 나치와 히틀러를 ‘상황 논리’를 핑계로 용인할 수도 있다는 내용을 쓰는 역사 서술의 ‘영혼’은 어떤 모습일까.
세계사를 ‘국정’으로 가르치는 것 자체가 국제사회에서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교과서 발행 체제는 교과서를 누가 편찬하느냐에 따라 국정(Government -issued Textbook System), 검정(Textbook Authorization System), 인정(Textbook Adoption System), 자유발행(Textbook Autonomy System) 체제로 나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을 대상으로 중·고등 과정의 역사 교과서 발행 실태를 살펴보면, 국정제가 남아 있는 나라는 멕시코·그리스·아이슬란드·터키·칠레 등 5개국뿐이라고 한다.
국정과 정반대인 자유발행은 16개국이나 된다. 서유럽 등 국내총생산(GDP)이 높을수록 상대적으로 자유발행제가 많다고 한다. OECD 회원국들은 국정→검·인정→자유발행제로 넘어가는 추세이지, 한국처럼 검정제에서 국정제로 역주행하는 나라는 한 곳도 없다고 한다. 요컨대 국정 교과서는 사이비 가짜 보수들, 서양과 미국을 상전처럼 모시는 사대주의자들이 좋아하는 ‘글로벌 스탠더드’가 아니다.
오류·왜곡투성이인 국정 역사 교과서를 두고 역사학계와 현장 교사들은 ‘수정’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한다. 고쳐서 쓸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이다. 온갖 잡다한 오류로 뒤범벅이 된 교과서라는 말이겠다.
국립국어원이 지난달 국정 역사교과서 어문 규범을 감수했다고 한다. 어문 규범 오류 1435건나와 고치라고 했다. 그런데 예의 현장 검토본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오류가 전혀 수정되지 않았다고 한다. 며칠 전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는 국정 역사 교과서에 대해 “교과서라는 이름을 달기에도 민망한 원고 뭉치일 뿐”이라며 즉각 폐기하고 교육부 장관이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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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는 12월23일까지 현장검토본에 대한 국민 여론을 듣고 현장 적용 방법을 검토하겠다고 하고 있다. 국정·검정 교과서를 1년 동안 혼용하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지만 박근혜 정부 특유의 ‘물타기’와 ‘시간 벌기’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교육부는 12월1일 “국정교과서를 거부하는 교육감에게 시정 명령과 특정 감사 등 모든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며 엄포를 놓기도 했다.
엄포가 먹혀들까.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 중단 및 폐기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채택했다. 국정 교과서 정책이 “이미 사망 선고가 내려진 정책”이라고 규정했다.
대구, 경북, 울산을 제외한 전국 14개 교육청이 국정 교과서 불채택, 불매 운동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전국 중학교 3219개 교 중 대구, 경북, 울산 지역 18개 중학교만 국정교과서로 수업하겠다고 방침을 정해놓고 있다. 0.6퍼센트에 불과한 숫자다. 고등학교에서도 교사들이 국정 교과서를 쓰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교육자들이 국정교과서를 ‘탄핵’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 때문인가. 국회 탄핵안 가결로 직무가 정지된 범죄 피의자 박근혜의 대표 정책이기 때문이다. 책에 서린 우주의 기운이 박근혜의, 박근혜에 의한, 박근혜를 위한 교과서라는 사실을 뚜렷이 말해 준다. 국정 교과서를 완벽하게 탄핵해야 한다. 박정희-박근혜로 면면히 이어져 온 반민족과 반역사와 반민주의 굴레를 벗어나는 첫걸음이다.
* 본문 중의 인터뷰, 성명서, 수치 자료 등은 <시사인> 제482호(2016년 12월 13일) 기사 ‘“교과서라 부르기도 민망한 원고 뭉치”’를 주로 참조했다.
* 제목 커버의 배경 이미지는 과거 국정 국사 교과서 표지 사진이다. <세계일보>(http://v.media.daum.net/v/20151025185508286)에 실린 자료 사진을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