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국민의례에 관한 대통령 훈령> 개정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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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21일, 청와대가 당시 황교안 법무부장관을 국무총리 내정자로 발표하였다. 그의 맹목적으로 보이는 기독교 편향성과 국가주의 신념을 우려하고 있던 나는 “황교안 총리 후보자는 ‘국가종교주의자’?”라는 제목의 글을 써 인터넷 언론 <오마이뉴스>에 올렸다. 아래는 그 중 일부다.
“황 후보자는 총리 지명 직후 일성 중 하나로 “비정상의 정상화”를 외쳤다. 무엇이 ‘정상’과 ‘비정상’일까. 누가 어떤 기준으로 그것들을 가르나. 황 후보자가 혹시 총리가 된다면 ‘공안통 검사’라는 혁혁한 이름을 가진 총리답게 전 국민의 머릿속 생각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누려고 하지 않을까. 독실한 기독교 신자답게 다른 종교를 가진 이들을 ‘비정상’으로 몰아세우지 않을까. 황 후보자가 통합진보당 해산 과정에서 보여준 ‘강단’을 떠올리면 허황된 과장이 아니다. 두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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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국민’학교를 졸업했다. 매주 ‘애국’조회를 한 경험이 있는 세대 중 하나다. 어린 우리는 월요일 아침마다 운동장에 질서정연하게 모여 섰다. 교실을 빠져나온 동무들 중에 재잘거리며 즐거워하는 이들이 있었다. 나는 그렇지 않았다. 부동의 자세로 제자리에 서서 묵념을 하고 애국가를 제창하는 그 일련의 시간들이 늘 낯설고 힘들었다. 따가운 햇살이라도 내리쬐는 날엔 묵직해진 머리에서 현기증이 일었다. 쓰러지거나 토하는 동무들이 종종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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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조회의 ‘추억’은 일제 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910년 일제는 조선을 병탄한 뒤 식민지교육의 기조를 “충량(忠良)한 국민의 양성”에 두었다. 각종 교육 관련 법령에 “충량(忠良)한 국민”(1938년 <소학교규정> 제1조), “충량유위(忠良有爲)한 황국신민”(1943년 <중등교육령>), “충량지순(忠良至醇)한 황국여성”(1920년 <고등여학교령>) 등을 새겨넣어 일본 제국의 신민(臣民) 되기를 강요했다.
일제는 아시아 침략전쟁인 대동아전쟁이 격화하면서 전세가 패퇴 일로를 걷게 되자 1937년 이른바 ‘황국신민 서사’를 만들어 학생과 일반인 모두에게 모든 행사에서 강제로 외우게 했다. 당시 ‘국어(國語)’인 일본어로 된 황국신민 서사는 어린이용과 성인용으로 나뉘어 있었다.
어린이용
1. 우리들은 대일본제국의 신민입니다.
2. 우리들은 마음을 합하여 천황폐하에게 충의를 다합니다.
3. 우리들은 인고단련하여 훌륭하고 강한 국민이 되겠습니다.
성인용
1. 우리는 황국신민이다. 충성으로써 군국에 보답하련다.
2. 우리 황국신민은 서로 신애협력(信愛協力)하여 단결을 굳게 하련다.
3. 우리 황국신민은 인고단련(忍苦鍛鍊) 힘을 길러 황도를 선양하련다.
조선인의 일본인화를 위한 교육운영의 방침을 정해 이를 정식 학과수업 외에 교내외 여러 행사에서 따르도록 집요하게 강제하였다. 당시 경성사범학교 내 조선초등교육연구회가 마련하고 일제 총독부 학무국 추천을 받아 만들어진 <황국신민 교육실천의 학교경영>에 있는 ‘훈육’ 장에 구체적인 내용들이 담겨 있다.
대표적으로 ‘식전의례의 태도 확립’, ‘국가의식의 앙양’ 따위가 있었다. 식전 예의의 단련, 국가 봉창, 국기게양 및 다루는 법, 황국신민서사 낭송, 각종 국민적 기념일 거행 및 강화 들이 세부 내용이었다.
일제는 훈육실천세목을 정해 매월 학교에서 치러야 하는 행사를 강요했다. 매월 1일은 국기게양식을 했다. 몇몇 달의 경우에는 이날 대표아동 신궁참배 행사가 치러졌다. 매월 6일은 애국일이었다.
학교와 교실을 맹목적인 국가주의와 애국주의 경험을 일상화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교실 정면에 사진틀에 넣은 일본 궁성 사진과 황국신민 서사를 끼워 넣은 액자를 걸었다. 학생들이 교실 출입 시 “엄숙한 기분으로” 경례를 하게 했다. 교단에 오를 때 황국신민 서사가 담긴 액자를 향해 인사를 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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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최순실-부역 관료들의 공고한 네트워크로 자행되었던 미증유의 국정농단 사태로 황교안 국무총리 겸 대통령 권한 대행 체제 아래 놓인 정부(행정자치부)가 <국민의례에 관한 대통령 훈령>을 개정했다고 한다. 공식 행사나 회의에서 순국선열, 호국영령 외 묵념을 금지시킨 것이 핵심이라고 한다.
“묵념은 바른 자세로 눈을 감고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한다”. “애국가는 선 자세로 힘차게 제창하되 곡조를 변경하여서는 안 된다”. 그간 없던 묵념 방식을 구체화해 강제하고, 애국가를 기념곡 수준으로 격상했다는 게 언론의 주요 논평이다.
황 총리가 총리 지명 직후 말한 “비정상의 정상화”가, 대통령 권한 대행이라는 과도기적 지위 상태에서 속속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아 두렵다. 그가, 그를 추종하는 무리들이 바라는 것은 ‘개인’이 거세된 ‘국민’, 추상적인 국가를 위해 복무하고 권력에 순종하는 ‘신민’이다. 세계 주요 국가의 반열에 든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2017년은 거의 한 세기 전 식민지 시절과 얼마나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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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역사는 현대사다. 이탈리아 역사가 베네데토 크로체(1866~1952)가 한 말이라고 한다.
* 제목 커버의 배경 사진은 황교안 국무총리 겸 대통령 권한 대항이다. '나무위키'(https://namu.wiki/w/%ED%99%A9%EA%B5%90%EC%95%88)에서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