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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Jan 03. 2017

성적통지표를 나눠 주며 말했다

너희가 10대를 아느냐 (34)

1


얼마 전 종업식 때였다. 아이들에게 성적통지표를 나눠 주며 말했다. 성적과 점수는 우리 인간의 극히 한 부분만을 드러낼 뿐이다, 성적과 점수 따위로 우리 자신의 내면 전체가 모두 드러나지 않는다. 능력이며 잠재력은 더더욱.


스스로 무엇인가를 하려는 마음을 갖고 공부에 재미를 붙이는 것이 중요하다. 내적 동기다. 그것은 시험과 점수와 등수 따위로는 길러지지 않는다. 존 홀트는 경쟁으로 인해 내적 동기가 감소되는 경향이 교실에서 두드러진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배움에 대한 의지가 강했던 학생들에게 하찮고 경멸스러운 보상들-‘참 잘했어요’라는 도장, 100점이라는 표시를 한 채 벽에 붙어 있는 시험지, A라고 쓰여 있는 성적표, 우등생 명단,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학생들만 가입할 수 있는 클럽의 열쇠, 즉 간단히 말하면 다른 학생들보다 내가 좀 낫다는 저열한 만족감-을 장려하고 강요하는 것으로 아이들의 그 의지를 꺾어버린다. - 알피 콘(2009), <경쟁에 반대한다>, 산눈, 88쪽.


핀란드에서는 학생들이 종합학교에 다니는 12년 동안 등수를 내는 시험을 한 번도 치르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을 지탱하는 핵심 기둥 중의 하나가 석차와 등급을 놓고 경쟁하는 시험이 학생들의 실력을 키운다는 사고방식이다. 이 희한하기 짝이 없는 논리가 조금이라도 맞다면 경쟁 시험이 없는 핀란드 학생들의 실력이 형편없어야 한다. 그런데 주지하다시피 핀란드 학생들의 학업 실력은-적어도 피사(PISA)를 기준으로 할 때-늘 상위권이다.


시험과 성적, 나아가 평가에 대한 관점의 일대 전화가 있어야 한다.


2


일반적인 의미의 평가 시스템은 ‘교육’을 전제로 한 것이다. 교육이 무엇인가.


가르치는[교(敎)] 주체가 있고 가르침을 받아들여 자라는[육(育)] 대상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대체로 인위적이고 획일적인 공간[학교]에서 기계적으로 구획된 거의 의미가 없는 시간[수업] 동안 정해진 내용과 형식[교육과정]에 따라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활동이다. 교육과정을 뜻하는 커리큘럼(curriculum)이 어원적으로 ‘경주로’라는 사실이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학교 시설과 교사 인력 제공, 학교 운영(행정) 등의 투자[학교시설, 교사 인력 제공]가 있으니 결과가 산출되어야 한다. 시험을 통해 학생을 평가하고, 그것을 토대로 교사와 학교를 평가하는 시스템이 터 잡고 있는 바다.


‘교육’을 전제로 하는 한 학교에서 평가 시스템을 버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해묵은 평가 시스템을 혁파하려면 학교를 교육이 아니라 ‘배움’의 공간으로 바꾸어야 한다. 배움이 무엇인가.


배움은 인위적이지 않다. 가령 아기들은 모어(mother tongue)를 교육이 아니라 배움을 통해 터득한다. 그것은 교육을 통한 학습이 아니라 거듭 되풀이되는 습득 같은 것이다. 자연스러운 언어 환경이 갖추어져 있고, 발성과 조음기관에 문제가 없으며, 언어적 필요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두뇌만 있다면 만 6세 이전에 어떤 아기라도 자신의 모어를 자유자재로 쓸 수 있다.


학교가 어떻게 배움의 공간이 되는가. 많은 것이 필요하다. 국가교육과정이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을 옭아매는 시스템부터 바꾸어 보자. 학교와 교사와 학생들에게 교육과정편성권과 평가권을 부여해 보자. 첫해에는 고등학교 1학년 국어 교사가 선정한 <윤동주 시집>을 교과서로 쓰게 하고, 이듬해부터는 교사와 학생들이 함께 교과서를 선택하고 교과과정을 세워 보게 하자.


아이들은 천성적으로 잘 배우는 존재다. 가르침은 아이들이 필요할 때 최소한도로 그쳐야 한다. 배움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면 그럴 수밖에 없다. 교사가 교육과정을 맹목적으로 따르고, 교과서와 자신의 머리에 든 지식을 절대화하며, 학생들을 그것들로 채워 넣어 주어야 하는 미성숙하고 성장해야 하는 존재로 보지 말아야 한다.


자연스러운 배움의 경험이 아이들을 변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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