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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Jan 07. 2017

교육부를 혁파하라

분권과 자치에 기반한 교육 시스템 정립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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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를 살리는 교육 시스템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민주주의를 설명하는 이론이 다양하지만 민주주의의 근본 원리나 가치에 관한 사항은 대체로 합의점이 나와 있는 듯하다. 이를 바탕으로 할 때, 나는 참여와 공유, 자율과 자치가 학교 민주주의 시스템의 핵심 가치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분권에 기반한 학교교육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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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이후 우리나라 교육의 역사적인 흐름은 국가주의를 특징으로 한다. 교육 부문을 관장하는 정부부처, 곧 교육부가 교육 시스템 운영의 전권을 쥐고 교육정책과 교육제도의 형성과 집행과 평가 등 모든 과정에서 강력한 주도권을 행사하였다. 국가가 교육정책을 결정하고 교육제도를 만들어 내놓으면 전국 모든 학교와 교사가 ‘붕어빵’ 교육활동을 펼쳤다. 


국가가 학교교육의 전권을 쥐었던 저간의 사정은 19세기 말 이래 격동했던 우리 현대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리나라는 구한말 서구 열강의 간섭과 36년 간 이어진 일제 강점 치하를 지나오면서 우리 고유의 자생적인 교육 시스템을 만들어 경험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국가주의에 경도된 서구 공교육 시스템과 군국주의적인 일제 식민지 교육이 근대 교육의 기준이 되었다. 그 잔재가 해방 이후 우리 교육에 지속적으로 크고 작은 영향을 미쳤다.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이 3년간 이어지면서 학교교육이 시스템이 완전히 무너졌다. 이후 우리나라 교육정책의 일대 과제는 붕괴한 학교교육 시스템을 재건하는 일이었다. 국가 주도 아래 초등학교 의무교육 완성과 중등교육 기회 확대를 교육정책의 주요 목표로 삼았다. 학생들의 취학문을 넓히고 학교 시설을 세워가는 일이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 1980년대까지 장장 30여년 간 이어졌다.


1980년대 이래 지금까지 근 40년여년 간 학교교육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각종 정책이 시행되었다. 학교와 교육의 책무성을 강화하기 위해 학교교육의 성과를 평가하는 각종 평가 기제가 도입되었다. 자율과 다양화를 키워드 삼아 교육 시스템을 혁신해 재구조화하려는 각종 제도가 학교 현장에 적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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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 공교육의 이념적 근간을 어디에 둘 것인가를 두고 평등주의와 수월성, 공공성과 시장(경제)주의 사이에 갈등과 대립이 일었다. 역대 정부, 특히 장기간의 군사독재가 종식된 후 1993년 출범한 문민정부 이래의 민간정부들은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좌표를 잡지 못할 때가 많았다.


교육행정의 중앙집권화를 통해 보장되는 효율성이라는 ‘현실’과 지방자치교육의 자주성과 자율성이라는 ‘이상’이 정책결정 과정에서 갈등 요인으로 부각되었다. 정부는 정치권, 학교, 교직단체, 시민사회단체들과 협력・길항 관계를 유지하면서 학교교육을 이끎으로써 그러한 현실을 극복하려고 했다. 그 과정을 거칠게 요약하면 중앙집중주의와 분권주의 사이의 다툼이었다고 할 수 있다.


1997년 IMF 사태 이후 등장해 2000년대 초반에 본격화한 시장의 교육 통제 시스템이 중앙집권주의와 결합하는 흐름이 형성되었다. 1995년 5.31 교육개혁안에서 태동한 교육 수요자 선택권과 시장주의에 따라 단위 학교의 자율성 보장을 명목으로 운영되는 교육 서비스 경쟁 시스템이 정부 주도 아래 정착되기 시작했다. 교육 서비스 다양화, 교육 성과와 실적 경쟁, 학교 정보 공개와 평가 등이 학교와 교사 간 경쟁 구도를 만들어 성과를 향상시키고 교육 책무성을 높인다는 논리가 널리 확산되었다. 국가가 자율성 부여를 명목으로 학부모 선택권을 통해 학교와 교사를 통제하는 교묘한 구조가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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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거시적인 흐름의 방향은 분권주의다. 이를 방증하는 몇 가지 배경 요인이 있다. 행정, 입법, 사법이 상호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교육 삼권분립 구도가 정립되었다. 국회의 입법권과 재정심사권, 국정감사권이 교육부(행정)를 견제한다. 교육부가 주요 교육정책과 교육제도를 실시하는 과정에서 국회와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스템이 작동한다. 교육활동과 교육사업 운영 과정에서 법원(사법) 심판을 요구하는 사례가 늘었다. 교육의 사법화라 부를 만한, 다른 수단에 의한 교육의 경향이다.


1991년 본격화하기 시작한 지방자치제가 중앙 통제 식 교육 시스템의 분권주의를 강화했다. 중앙정부의 권한이 지방교육자치단체인 교육청으로 이관되는 분권화・자치화가 점진적으로 이루어졌다. 2000년대 중반 도입된 교육감직선제는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의 분권화와 자치화 과정에서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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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갈 길이 멀다. 우리나라는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지금까지 각급 학교에서 실시하는 교육내용이 정부가 고시한 국가교육과정을 통해 통제되고 있다. 국가가 각 교과내용을 지배하기 위해 교과서 국정제를 오랜 기간 유지했다. 대다수 서구 국가에서 교과서 자유발행제가 지배적인 교과서 편찬 방식이 되어가고 있는 사이 우리나라는 정부 관료와 전문 연구자들의 강한 영향권 아래 놓일 수밖에 없는 검・인정제를 고수해 왔다. 최근 박근혜 정부에서 불거진 중・고교 역사 교과서 국정화 사태처럼 시대착오적인 과거 역행 역행 시도가 자연스럽게 펼쳐질 수 있었던 배경들이다.  


교육부는 학교를 통제하기 위해 교사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관리하는 데 큰 공력을 들인다. 현장 통제에 관한 한 교육부만큼 부지런하고 유능한 부서가 없을 것이라며 냉소를 던지는 교사가 한둘이 아니다. 나는 제목에 ‘복무기강 철저’를 단 공문을 일선 기관에 가장 많이 내보내는 정부 부처가 교육부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토록 기강을 강조하는 교육부가 정부기관 청렴도 순위에서 최근 2년(2015년, 2016년) 연속 꼴찌를 차지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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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은 전 거창고 교장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지구상에서 북한과 중국을 빼면 우리나라는 교육부가 행정부에서 가장 독립하지 않은 나라다”라고 일갈했다. 교육부가 행정 통수권자인 대통령 권력에 쉽게 좌우되는 구조적인 난점을 꼬집은 말이다. 최근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사태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교육 삼권분립 시스템 정립과 지방교육자치제의 본격화 등 거시적인 분권화 추세에도 불구하고 교육부의 고질적인 중앙통제 경향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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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더 온전한 분권과 자치를 막는 시스템상 공백이 크다. 교육부는 광역 단위로 있는 지역교육청을 지휘・감독하는 방식으로 전국 2만여 개 학교를 실질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 학교 행・재정, 교원인사, 평가와 감사 분야에 걸쳐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정부 교육정책을 비판하고, 정부가 추진하는 교육제도에 저항하는 시・도교육감과 학교・교사 들을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괴롭히고 길들일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톱 다운 방식의 상명하달에 익숙한 교육 관료들과 40만 교원들의 관료주의 문화가 이러한 경향을 지속시킨다.


교육부의 설치 및 조직과 직무 범위의 법률적 근거는 <정부조직법> 제28조 제1항에 규정되어 있다. 인적자원개발정책, 학교교육과 평생교육, 학술에 관한 사무가 교육부장관이 관장하는 사무다. 장관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본부 조직은 교육부 직제에 관한 대통령령에 따라 짜여 있는데, 산하기관을 뺀 본부 부서에만 총 575명(2016년 12월 현재)의 공무원이 재직하고 있다. 산하기관 재직 공무원 264명을 합하면 총정원이 800명을 훌쩍 넘는다.

 

그 비대한 조직이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강력한 위계 시스템 아래 굴러가고 있다. 정권 교체와 같은 정치적 변동이나 당대 이념 지형의 변화에 따른 정치사회적 격변기에 현실 정치 논리에 따라 쉽게 요동칠 수 있는 취약한 구조다. 문교부(1948~1990), 교육부(1990~2001), 교육인적자원부(2001~2008), 교육과학기술부(2008~2013), 교육부(2013~현재)로 이어진 부처명의 변천사, 현재의 과학기술과 문화체육, 공보 기능까지 담당하던 최초의 문교부 시스템이 그와 같은 부처명의 변천사에 따라 갈라지고 통합된 저간의 사정이 이로부터 비롯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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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실한 해법은 하나다. 해체에 버금가는 교육부 혁파다. 우리나라는 교육부가 막강한 행정 권력과 예산분배 권한으로 무장하고 교육 전반을 좌지우지하고 있으나 눈길을 밖으로 돌려 보면 교육부가 없는 나라가 의외로 많다. 이른바 교육 선도국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 네덜란드, 독일 같은 서구 국가들은 교육부장관이 있으나 우리나라와 같은 교육부가 없다.


교육부가 사라진 뒤의 시스템 공백을 염려할 수 있다. 새로운 교육 시스템의 컨트롤타워 구실을 하는 중립적인 국가교육위원회나 국가교육청 같은 조직체를 만들어 그것으로 혁파한 교육부를 대체하면 된다. 컨트롤타워라고 표현했지만 기존 통제와 관리 중심의 교육부가 아니라 행정과 예산 지원을 총괄하는 조직 정도로 보면 된다. 국가교육위원회나 국가교육청의 중립성과 자주성을 보장하기 위해 조직 구성의 법적 근거를 헌법에 명문화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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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과 책임, 공유로 이루어지는 실질적인 교육 분권과 자치가 교육부 혁파의 이유와 중립적이고 자주적인 국가교육위원회나 국가교육청의 구성 목표가 되어야 한다. 나아가 그것은 궁극적으로 학교 민주주의를 지향할 때 그 의미를 온전히 구현할 수 있다고 본다.


첫째, 국가교육과정과 교과서를 통한 교육내용 및 교과내용의 통제 시스템에서 벗어나 학교와 교사가 교육・교과과정편성권, 교과서편찬・선택권, 학생평가권을 행사하는 자율 시스템을 상상해 보자. 국가는 교사들이 그러한 자율 시스템 속에서 교육활동을 전략적으로 펼쳐 학생들이 배움과 공부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도록 후방 지원만 하면 된다.


둘째, 교육부가 감사권과 평가권으로 강제하는 강한 책무성 구조 대신 학교와 교사가 자율적인 시스템 아래서 학생 교육을 온전히 책임지는 유연한 책무성 구조, 또는 강한 책임성의 문화가 자리잡도록 하자. 학교와 교사의 자율 평가와 이에 대한 외부 전문기관(전문가)의 전문적인 피드백, 감사와 장학 위주의 행정 통제에서 벗어나 협의와 토론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교육컨설팅이 이와 같은 책임성 문화를 뒷받침할 수 있다.


셋째, 지역 내 학교 간・교사 간 네트워크가 교육 협치(協治, governence)의 기초를 이루면서 교육 공유 시스템이 자연스럽게 자리잡게 하자. 그 지역 고유의 실정과 색깔을 반영하거나 살리는 교육활동이 각 지역 단위별로 이루어짐으로써 중앙집권적인 획일주의 교육을 벗어나 지역의 사회문화적인 생태에 맞는 다양성한 교육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 제목 커버의 배경 사진은 세종시 교육부 청사 전경 사진이다. <News 1> 자료 사진(http://v.media.daum.net/v/20160608113021599)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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