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10대를 아느냐 (35)
1
나는 책을 펼쳐 들고 교실 중간에 섰다. 자리에 앉아 서로 장난치고 떠들던 학생들이 눈짓을 주고받았다. 나는 나직나직한 목소리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교실 분위기가 찬찬히 조용해졌다.
여전히 엎드려 자거나, 다른 일을 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마냥 그렇지 않았다. 내가 책을 읽어 나가자 어떤 학생은 중간에 일어나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보았다. 다른 학생은 하던 일을 멈춘 채 나와 한참 동안 눈길을 마주쳤다.
한껏 자차분해진 교실에는 여느 날의 수업과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여백의 시간과 침묵의 공간 사이사이에 절제와 배려가 가라앉아 있었다. 나는 학생들의 눈에서 소박한 깨달음, 다른 것에 대한 호기심, 평소에는 거의 떠올리지 않는 어떤 상상의 세계, 알 수 없는 열정 같은 것들을 보았다.
2
지난해 2학기 말 수업 몇 시간을 책읽기로 보냈다. 학기말에 생기는 약간의 ‘여유’를 그렇게 보낼 때가 많다. 조용한 교실이 낯설어진다. 그렇게 책을 읽고 있으면 설명하기 힘든 어떤 보이지 않는 영감과 불가해한 통찰의 느낌이 온몸을 감싸고 돈다.
책을 읽다 보면 어떤 ‘고조된’ 대목이 나온다. 그때 나는 목소리를 살짝 더 높이고, 어조를 뚜렷이 하기 위해 한 어절 한 어절 또박똑박 읽으며, 중간중간 학생들과 눈빛을 마주친다. 누군가 종이 위에서 사각거리며 내는 연필 소리, 책장 넘기는 소리가 오롯이 들려온다. 엎드려 자는 학생의 고요한 숨소리마저 들리는 듯하다.
3
그러나 책읽기는 호사스러운 수업이다. 참여와 활동, 소통과 협력이라는 멋진 말들이 지배하는 교실에서 단순하고 투박한 책읽기 수업은 불온해 보인다. 국가교육과정과 교과교육과정과 연간수업계획서와 교과서 진도가 나를 가로막는다.
4
나는 1976년부터 1987년까지 초・중・고교를 다녔다. 그 12년 사이에 자유로운 글쓰기와 책읽기를 경험한 기억이 거의 없다. 가령 국어 교과 시간에 오롯이 책‘만’ 읽거나 글‘만’ 써 본 수업이 거의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우연히’ 즐겨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
‘창의’와 ‘꿈’과 ‘끼’를 강조하는 교육부와 국가교육과정이 학교를 지배하는 시대가 되었다. 2010년대 중반의 학교와 교사는 저 먼 1970~1980년대의 황량한 교실에서 얼마나 벗어났는가.
학생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 글을 쓰지 않는다. 학교에서 삶의 지혜와 통찰을 가져오는 공부나 배움을 거의 경험하지 못한다. 교실에서 찬찬한 사유와 질문이 생겨나지 않으면서 그들은 ‘지배하는’ 시민이 아니라 ‘관리되는’ 국민으로 성장한다.
가끔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학생들은, 30여년 전 내가 그랬던 것처럼,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다.
5
백석 시집으로 중학교 1학년 아이들과 국어 공부를 하면서 문학의 본질과 시의 본령을 공부하고 싶다. 시 낭송과 짤막한 시평(詩評)만으로 학생들은 문학의 매력, 우리말 시의 아름다움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될 것이다. 다양한 이본이 있는 <춘향전> 판본 몇 가지를 골라 독해하며 국어의 변천사를 공부하면 어떨까. 문학사, 민속사, 문화사 공부는 덤이다.
다만 나는 국가교육과정과 교과교육과정과 교과서가 두렵다. ‘빌어먹을’ 하며 그들을 욕하면서도 소심하고 겁이 많아 국가교육과정과 교과교육과정과 교과서 저자들의 앞잡이가 되어 살아간다.
가만히 생각하니 분하고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