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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Jan 09. 2017

우리들의 평범하고 성실한 ‘ㄱ씨, ㄴ씨, ㄷ씨’

불의에 부역하는 이들의 평범함과 두려움에 대하여

1     


아돌프 오토 아이히만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유대인 대학살을 수행한 주요 나치 전범 중 하나였다. 20대가 되면서 북오스트리아 전기 설비회사 판매부 영업사원이 되고, 22살부터 오스트리아 감압정유회사에서 5년여 간 일한 아이히만은 1932년 나치당에 가입해 친위대에 들어갔다.


성실과 열정으로 자신의 ‘업무’인 유대인 분리 정책을 충실하게 수행한 친위대원 아이히만은 1941년 독일제국 중앙보안본부 제Ⅳ-B-4부의 실무 책임자로 승진하였다. 제국 중앙보안본부 B-4부는 유대인 분파를 다루는 부서였는데, 나치의 악명 높은 비밀경찰인 게슈타포 휘하에 있었다.


1941년 7월 게슈타포 수장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가 아이히만을 불렀다. 하이드리히는 아이히만에게 “총통께서는 유대인의 신체적 절멸을 명령하셨다”라는 히틀러의 지시를 전하며 유대인 ‘최종 해결’, 곧 유대인 학살을 명령했다. 아이히만은 소령에서 중령으로 진급해 모든 일을 빈틈없이 꼼꼼하게 처리했다. ‘용서’와 ‘화해’에 관한 문제작 <해바라기>로 유명한 시몬 비젠탈은 아이히만을 “죽음의 장부를 다룬 경리였다”라고 비유했다.


아이히만은 ‘악마’가 아니었다. 독일의 쇠락한 중산층 집안 출신이었던 그는 강한 허세와 출세욕을 빼면 여느 독일인과 별달라 보이지 않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는 유년 시절에 부모에게 엄격한 기독교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아이히만은 성실하고 가정적인 남자였다. 유대인에 대한 광적인 증오가 없었다. 그는 특별히 유대인을 미워하라는 교육을 받지 않았다. 그가 20대 초반에 5년간 성실하게 일한 오스트리아 감압정유회사는 양어머니 사촌이 주선한, 유대인(!) 회사였다. 그는 스스로 “나와 가장 친한 친구 중 일부만이 반유대주의자들이다”라고 말했다.      


2     


‘ㄱ씨, ㄴ씨, ㄷ씨’는 모두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 공무원들이다. “권력과 탐욕에 눈먼 자들의 손에서 시작”된 블랙리스트를 받아들고, “자신의 일상적인 업무공간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최소 1~2년간 지속적으로” ‘피를 묻힌’ 일상의 아이히만들.    

 

상급자에게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받아든 사무관 ‘ㄱ씨’는 그때 어떤 심정이었을까. 예의 바르고 성실하며 겸손하다는 ‘ㄴ씨’는 ‘블랙리스트 관계자’라는 언론의 워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느지막이 시작한 피아노 연주를 자랑한 또 따른 ‘관계자 ㄷ씨’는 “평범한 사람들도 열정만 있으면 음악이든 뭐든 새로 시작해 삶의 성취와 즐거움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하곤 했다고 한다.     


그들 ‘ㄱ씨, ㄴ씨, ㄷ씨’는 자신들의 일 때문에 블랙리스트 속 또 다른 ‘ㄱ씨, ㄴ씨, ㄷ씨’의 삶에 균열과 불안을 가져다 주었다는 것을 깨닫고 있을까. 그들의 일은 ‘해야 하는’ 공무가 아니었다. 합법적으로 불법을 저질러야 하는 모순의 범죄였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들의 그 일을 해야 했을 때, 나는 평범한 그들의 내면 어느 한 자락에 분명 혼란과 두려움이 생겼으리라 믿는다. 가령 “자신의 책무와 무언가 불의하다고 느껴지지만 거역할 수 없는 힘 사이에서 방황하”던 젊은 20대 사무관 ‘ㄱ씨’는 카프카가 <성(城)>의 첫머리에서 묘사한 ‘K’의 상황과 흡사하지 않았을까.     

K가 도착했을 땐 늦은 저녁이었다. 마을은 눈 속에 깊이 묻혀 있었다. 성이 있는 언덕은 안개와 어둠에 잠겨 있어 아무것도 볼 수 없었으며, 어렴풋이나마 큰 성이 있음을 알려주는 불빛도 없었다. K는 오랫동안 큰길에서 마을로 이어지는 나무다리 위에 서서 허공으로 짐작되는 데를 쳐다보았다. - 카프카(1926; 2007), 《성》(카프카 전집 5), 솔, 9쪽.     


카프카는 어느 글에서 “존재한다는 것은 어디에 소속됨을 의미한다”라고 말했다. ‘ㄱ씨’에게 블랙리스트를 건네주던 상관은 혼란과 두려움에 빠진 ‘ㄱ씨’ 자신을 구원하는 ‘성’이었을 것이다. 상관과, 상관이 건넨 블랙리스트가 권위적인 명령과 규칙과 금기 자체여서 ‘ㄱ씨’를 우울하고 불안하게 했을지라도 말이다. 왜냐하면 그들 모두는 자신들을 감싸고 있는, ‘문체부’라는 또 다른 거대한 성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3     


관료주의는 관료주의의 합리성과 효율성을 신봉하는 이들의 믿음으로 유지된다. 블랙리스트가 그들을 불안과 두려움에 떨게 했을 때, 그들은 ‘문체부’라는 거대한 성의 절대성 뒤로 숨었다. 조직은 선하다. 국가 문화체육정책의 공공성을 담보하는 일이다. 시키는 일을 하는 책무성 강한 공무원들인 우리를 조직이 보호해 줄 것이다. 기타 등등 기타 등등.     


그들이 틀렸다. 그들은 각자의 영혼을 갉아먹는 그 두려움과 불안의 근원을 살펴야 하지 않았을까. 그들은 문체부라는 거대한 성 안에서 보호를 받는 ‘노예’가 아니라 스스로를 지키는 ‘주인’이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들은 ‘노예 공무원’이기 이전에 자유로운 시민이어야 하니까 말이다.     


자유로운 시민들은 두려움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는데, 그것이 주체적 결정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려움이나 불안에 사로잡힌 사람은 불편한 것을 꺼리고, 현실을 부인하며, 가능성을 놓쳐버린다. 불안은 우리를 미혹하는 사람, 지도자와 협잡꾼에게 종속시킨다. 또 불안은 다수의 폭정으로 이끄는데, 모두가 타인을 따르게 만들기 때문이다. 아무도 의견을 말하지 않기에 불안은 침묵하는 대중들을 가지고 놀 수 있게 하며, 만일 그것이 과열되면 사회 전체에 큰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루스벨트의 말(“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유일한 것은 바로 두려움 그 자체입니다.”)을 이해해야만 한다. 국가의 정치가 떠맡아야 할 최우선 과제는 바로 시민들의 두려움과 불안을 덜어주는 일이다. - 하인츠 부데(2015), 《불안의 사회학》, 동녘, 16쪽.         


* 제목 커버의 배경 사진은 아돌프 오토 아이히만의 유년 시절 사진이다. 교육방송(EBS) <지식채널e> 캡처 화면이다.

* ‘ㄱ씨, ㄴ씨, ㄷ씨’에 관한 내용과 인용문들은 김희연 <경향신문> 문화부장이 기명 칼럼란 '아침을 열며'에 쓴 ‘일상의 아이히만’에서 가져왔다. 이곳에 글을 링크(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1082120015&code=990507)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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