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은균 Feb 06. 2017

이상한 일

적바림 (5)

1     


아버지께서는 논두렁에서 꼴을 베고 계셨다.      


“저 지리산에 좀 다녀올게요.”     


나는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여느 때 같으면 낫을 들고 함께 논두렁에 있어야 할 아들이었다. 그런데 갑작스레 ‘지리산’이라니. 허리를 펴고 바라보시는 아버지의 얼굴이 살짝 굳어 있었다. 난데없는 지리산행에 대해 자초지종을 말씀드려봐야 별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그대로 동네를 내려와 버스를 탔다.     


군대 전역 후 대학교 2학년 2학기 복학을 앞두고 있던 1992년 늦여름이었다. 부푼 기대감을 안고 ‘사회’로 나온 게 그로부터 넉 달 전쯤이었다. 이런저런 계획을 세워 복학까지 남은 4개월여를 알차게 보내고 싶었다.   

  

순진한 바람이었다. 아무 일도 시작하지 못했다. ‘않았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 모르겠다. 지나친 욕심과 달리 의지와 노력과 능력이 크게 부족했다. 서울을 떠나 고향으로 내려와 집안 일을 도우며 지냈다. 문득 지리산 종주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정령치와 노고단에서 시작하는 주능선에서 1박 2일을 말없이 걸으며 보냈다. 알지 못할 힘들이 생겨났다. 이상한 일이었다.

 

2     


확신하건대 그것은 소설가 서정인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즈음 그가 쓴 단편 <철쭉제>를 읽었다. 지리산 자락 아래 남원 인월이 나오고 백무동계곡이 배경으로 그려져 있다. 인물들이 비루해 보인다. 작가의 주제의식이 차갑고 쓸쓸한 작품이다.     


어찌된 일일까. 묘하게도 그 작품을 읽을 때마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떠올릴 때마다 지리산 심산유곡의 어느 숲속을, 녹색 짙은 활엽수들이 총총히 서 있어 무성한 잎새들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이 눈부신 계곡 물가의 반석 위가 그려지곤 했다.


노고단이 고향 동네 앞산에서 멀리 보였다. 섬진강 줄기를 동무 삼아 달리는 전라선 열차를 타고 고향에 갈 때마다 지리산이 늘 곁에 있었다. 지리산에 오르려는 사람들이 사철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열차에 올랐다. 내겐 그들이 지리산이었다.     


‘지리산들’이 객차 시렁에 올려놓은 큼지막한 배낭들과, 그들이 차려 입은 형형색색의 등산복이 나와 함께 구례구역에서 내렸다. 그때마다 나는 무슨 지남철에 끌리듯 한사코 고향 마을로만 갔다. 그들은 섬진강 위로 놓인 다리를 건너 구례 읍내를 지나 노고단으로 향했다. 스무 살이 지난 뒤로 ‘간다, 간다’를 속으로 무수히 외쳤다. 마침내 <철쭉제>가 그것을 끊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3     


한 편의 글이나 작가가 특정 공간을 환기한다는 명제를 세워보자. 내게는 서정인이 그 뚜렷한 근거다. 그가 쓴 작품 속 인물들이 지리산과 섬진강 언저리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 전남 순천 출신에 전북대학교가 있는 전주에서 거의 한평생을 살았다.(전북대 영문과 교수로 30년 넘게 재직했다.) 그런 이력이 작가로 하여금 지리산과 그런 인연을 만들어내게 했을 것이다.     


서정인이 작품 안에 지리산과 맺어 놓은 인연이, 지리산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 같은 것을 품고 전전긍긍해 하던 나를 잡아당겼다. 예의 <철쭉제>가 착화점이었다.     


4     


폭발점은 <달궁>이었다. <달궁>은 서정인이 1985년 9월부터 여러 문예지와 종합지에 낸 소품들과 따로 연이어 지은 소품들을 묶은 장편소설이다. 여러 평자들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1980년대 리얼리즘의 층위를 한 단계 끌어올린 역작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실제 전체 구성과 형식, 표현과 문체에서 눈여겨볼 지점이 많았다.     


나는 엉뚱한 두 가지에 끌렸다. 서정인이 <달궁> 1권 머리말에서 묘사한 그대로, “경치 좋고 평화스러운 이 산골(달궁계곡-필자)의 울림소리 좋은 이름”이 좋았다. ‘달궁’의 받침소리 ‘ㄹ’와 ‘ㅇ’은 대표적인 유성음이다. 성대를 부드럽게 울리며 나오는 그 소리들은 내게 ‘달궁’을 아련하고 애틋한 이상의 공간처럼 느껴지게 했다. 마치 고려가요 <청산별곡>의 ‘청산’이 그런 것처럼. ‘청산’의 받침소리(ㅇ, ㄴ)도 모두 울림소리들이다.

    

<달궁>의 첫 번째 소품 ‘네 거리’ 도입부가 준 강렬한 인상이 두 번째 끌림이었다. ‘네 거리’는 <달궁>의 공식적인(?) 주인공인 ‘인실’의 죽음을 가져오는 장소다. ‘인실’은 “고생하기 위해서 태어”난, “고향이 버린 여자”였다. 서정인은 이렇게 묘사했다.     


그 여자가 한 고생에서 다음 고생으로 옮아가는 것을 보면 고생도 타고난 팔자인 것 같다. 잘사는 사람은 어디서나 잘살고 못사는 사람은 어디를 가도 못산다. 그 여자가 잘살고 싶어서 죽어라고 애를 쓰는데도 그렇다. 그 여자에게 근면과 성실 같은 개인적인 미덕이 없다면 못사는 것은 그 여자의 잘못일 것이다. - 서정인(1988), <달궁>(둘), 민음사, 272쪽, ‘작가 후기’에서.     


서정인은, “사람을 사람으로 대접해라. 어떤 사람을 그 사람을 오염시키지 말고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모든 기억을 가진 그 사람인 채 사람으로 대접해라. 그 사람의 과거의 기억을 훼손하려 하지 마라”(위의 책, 272쪽)라고 말하면서 ‘그 여자’를 “그 여자대로 보여주는 것이 벅차지만 정직이고 미덕”이라고 말했다.   

  

5     


그런 ‘인실’이 “빨간색의 팔 톤 짐차”에 치이는 공간인 ‘네 거리’ 정황이 도입부에서 이렇게 그려졌다.     


새벽안개가 부옇다. 이른 시간이라 신호등에 불이 없다. 승용차 한 대가 네거리를 건너 길가에 멎었다. - 서정인(1987), <달궁>(하나), 민음사, 11쪽. ‘네 거리’에서.     


이른 새벽 인적 하나 없는 시각에 ‘인실’은 그 쓸쓸한 생을 비참하게 마쳤다. 가난한 팔자의 ‘그 여자’는 한평생 제대로 “사람으로 대접”받지 못했을 것이다.      


최후의 장소인 ‘네 거리’가 혹시 멀리 지리산이 올려다 보이는 남원 산내면 인월의 어느 한적한 ‘네 거리’쯤이 아니었을까. ‘그 여자’가 가려고 했던 곳이 혹시 그 ‘네 거리’에서 삼십여 리 반선 계곡 길을 끼고 올라가면 당도하는, 자신의 태가 묻어 있는, ‘달의 궁전’이 있거나 ‘궁이 나온다[達宮]’는 ‘달궁’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그 여자’는 고향이 바로 코앞에 보이는 곳에서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6     


달궁에 다녀왔다. 그저 지나친 것까지 합하면 네 번째나 다섯 번째쯤 될 것이다. 가족들과는 첫 번째였다. 지난 여름 그곳을 지나 심원과 노고단으로 향했다. 아내가 좋아했고 아이들이 더 좋아했다. 한 번 더 가자고 했다. 모두 좋다고 했다. 겨울 계곡 여행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저녁 무렵 내리기 시작한 겨울비가 밤새 추적추적 내렸다. ‘인실’이 태어나 자랐을 동네는 가뭇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이국적인 집들이 지붕과 처마에 휘황한 간판을 매단 채 들어앉았다. 나는 마을 뒤쪽 무너진 담벼락과 한쪽으로 기울어진 헛간의 슬레이트 지붕을 바라보며 수많은 ‘인실’을 떠올렸다. 그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인실이가 특히 정직하거나 의롭거나 결벽한 것은 아니다. 그 여자가 그렇게 보였다면 그것은 그 여자의 주위가 너무 더렵혀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 여자가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오염이 심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여자는 단순히 그 여자 자신에게 충실했을 뿐이었다. 그 여자는 그 여자가 그 여자라고 주장했을 뿐이었다. 그것이 용기있고 대담하고 심지어는 무모하게 보였다면 그것은 전혀 그 여자 탓이 아니라 세상 탓이다. (중략) 그(작가 자신-필자)는 그 여자를 옹호하거나 변명할 생각이 없다. 그 여자는 그런 것 필요없다. - 서정인(1988), <달궁>(둘), 민음사, 272~273쪽, ‘작가 후기’에서.     

<달궁>을 만난 이후 지리산은 내게 저릿한 외로움과 삶에 대한 고고한 태도와 근거 없는 낙관과 자신감을 가져다 준다. 인용문에서도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작가가 작품 속 ‘인실’과 이 세상 수많은 ‘인실’들에 대해 품고 있는 공감과 연민의 시선 때문인 것 같다.

그러니 속악한 인생들의 남루한 삶이 그려진 <철쭉제>가 뜬금없이 빛나는 어느 여름날의 서정적인 계곡 풍경을 불러온 것과 비슷하게 ‘인실’의 비극적인 죽음이 이루어지는 ‘달궁’이 이토록 모순적이게도 밝고 명랑한 어감과, 긍정적인 감정과 의식과 태도를 불러오는 것은 참 이상한 일이다.     


시인 백석은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에서 이렇게 썼다.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타향 객지에서 외롭고 고단하게 지내는 화자 ‘나’에게 ‘갈매나무’는 단순한 나무 이상이다. 힘이고 의지며, 삶을 지탱하게 하는 희망일 것이다.


언젠가 홀로 책 한 보따리 싸들고 달궁 깊숙한 곳에 들어가 며칠 지내다 오고 싶다. 지난 이틀이 그랬던 것처럼 풍찬(風餐)하며 보내는 그 며칠 사이 내 머리는 더욱 맑고 견결해질 것이다. “굳고 정한 갈매나무”가 ‘남신의주 유동’에서 하루하루 비루한 나날을 꾸려가는 ‘나’를 그렇게 만든 것처럼 말이다. 나는 그것이 지리산이 주는 이상한 힘이라 믿는다.


* 제목 커버의 배경 사진은 지난밤 묵은 숙소에서 찍은 사진이다. 굵다란 이무기 같은 산자락들 몸피로 달궁계곡의 깊이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호래이 무러가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