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바림 (4)
1
현관에 들어섰다. 어둑했다. 아무도 없었다. 7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30분쯤 전 아내와 통화했다. 첫째, 둘째와 함께 장을 보고 있다고 했다. 곧 집으로 출발한다고 했으니 집에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아빠, 아무도 없어요.”
제 엄마와 언니와 오빠 신발이 없는 현관 바닥이 허전해 보였나 보다. 막둥이가 재빠르게 말했다.
나는 순간 살짝 짜증이 일었다. 밥솥에는 아이들 둘 정도만 먹을 수 있는 밥밖에 없었다. 아침에 먹다 남은 김치찌개는 바닥에 깔린 김치가닥 몇 개와 두부 조각 서너 개가 전부였다. 밖에 나가 식사를 하기에는 늦은 시각이었다. ‘아놔’ 소리가 절로 났다.
직접 저녁을 준비하는 수밖에 없었다. 투덜거리며 밥을 안쳤다. 국과 찌개를 고민하다 두부김치를 하기로 했다. 묵은김치를 꺼내 쫑쫑 썰어 냄비에 넣고 참기름 몇 방울과 함께 바특하게 끓였다. 사흘 전에 배달 받아 먹고 남은 두부 반 모와 어제 배달 받은 두부에서 잘라낸 반 모를 접시에 준비했다.
나는 막내가 매고 다니는 어린이집 가방에서 도시락을 꺼내 씻었다. 그사이 벌써 압력밥솥에서 쇡쇡 소리가 났다. 또 다른 불 위에 올려 놓은 냄비에서 물이 끓기 시작했다. 두부를 넣고 조금 있자 물이 버그르르 끓어올랐다. 경쾌하고 리듬감 있는 소리들이 좋았다. 일었던 짜증이 조금씩 가셨다.
2
아버지께서는 식사를 늘 같은 시각에 정확히 맞추어 드셨다. 새벽녘 들에 나가 꼴 한 짐을 하시거나 늦은 오후 밭고랑에서 일을 하시다가도 끼니 때가 되면 귀신처럼 집으로 오셨다. 조금 이르게 오시거나 늦어지는 법이 없었다.
그런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께서 무던히도 고생하셨다. 새벽에 지게를 지고 나가시는 아버지의 헛기침 소리를 어머니가 잘 못 헤아릴 때가 있었다. 그럴 때는 아침 준비를 다른 때보다 여유 있게 하셨다.
그러나 지게에 잠뿍 풀을 지고 오신 아버지는 달라진 집안 공기를 단박에 알아채셨다. 내리막 고샅을 거쳐 막 삽짝 안으로 들어서는 아버지의 발걸음소리와 단단한 마당을 치는 지겟작대기 소리와 지게에 단단히 매인 풀을 통째로 마당에 부릴 때 나는 소리가 여느 때와 달랐다. 그리고 여지없이 고성이 터져나왔다.
“호래이 무러가네. 이적 밥 안 허고 머허고 이써쓰까.”
아버지는 어머니가 밥을 미처 다 못 지으신 것을 어떻게 아셨을까. 그건 참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놀라운 일이었다. ‘호래이’까지 내놓으며 어머니를 타박할 만한 일이었을까. 그것 역시 지금까지 놀라우면서 안타까운 일로 남아 있다. 일호 차착도 허용치 않았던 아버지의 식사 습관은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아버지와 함께했다.
3
우리 부부는 둘 중 대체로 집에 먼저 들어가는 사람이 식사를 준비한다. 내가 일찍 들어갈 때가 훨씬 많아 손해(?) 보는 느낌을 갖는다. 내가 조금 일찍 들어가더라도 가만히 있다가 늦게 들어오는 아내에게 조르면 아내 몫이 될 때가 있긴 하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아주 드물다. 사분거리며 다정한 소리를 하거나 몸이 좋지 않다며 꾀병을 부리거나 해야 하는데, 그런 걸 별로 잘 하거나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내가 준비할 때가 훨씬 더 많다.
집에 먼저 들어가 밥을 짓고 국을 끓이면서 돌아가신 아버지의 불뚝성을 생각하곤 한다. 아버지가 ‘호래이’를 부르며 어머니를 달구치실 때마다 어머니는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어쩔 줄 몰라 하셨다. 그런 모습을 보며 나는 괜히 좀이 쑤시고 몸이 그닐거렸다.
‘호래이’ 소리를 더는 듣지 못하게 돼서일까.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 말씀을 종종 하신다. 그리우신 게다. 어느 날 문득 아내보다 늦게 집에 들어가 “호래이 무러가네” 운운해 볼까. 부질없는 짜증과 물밀 듯 밀려오는 회억에 잠긴 지난 저녁 한때가 꿈결 같다.
* 제목 커버의 배경 이미지는 네이버 블로그(http://blog.naver.com/jslim9004/120209422825)에서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