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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Feb 09. 2017

따라쟁이 침팬지, 말을 익히다

동물의 언어 습득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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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이후의 독보적인 ‘언어 영웅’은 다음 장에 소개될 회색 앵무새 알렉스이다. 알렉스 이전에는 오랑우탄, 고릴라, 침팬지, 보노보(피그미침팬지) 등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생물학적으로 사람과 친척 관계에 있는 대형 유인원들이다. 이들이 사람들의 특별한 시선을 받은 까닭은 어디에 있었을까. 


이들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포유동물이면서 영장류에 속한다. 그런데 사람은 고도로 발달한 상징 체계로서의 언어를 만들어 쓰는 반면에 유인원은 그렇지 못하다. 만약 유인원이 말을 배울 수 있다면 그 과정은 사람이 처음 말을 배우는 모습과 흡사할 것이라는 가정을 세울 수 있다. 이를 통해 언어의 기원이나 진화 과정을 밝힐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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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장류를 대상으로 한 언어 습득 실험은 주로 20세기 초반부터 중반에 걸쳐 이루어졌다. 1930년대의 ‘구아(Gua)’와 1940년대의 ‘비키(Viki)’, 1960~1970년대의 ‘와쇼(Washoe)’, ‘사라(Sarah)’, ‘래너(Lana)’, ‘님 침스키(Nim Chimpsky)’가 주인공들이었다. 모두 침팬지였다. 이들의 놀라운 활약상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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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주인공은 구아다. 구아는 1927년 윈드롭 켈로그(Winthrop & Luella Kelloggs) 부부가 기른 암컷 침팬지였다. 이들은 구아가 아들인 도널드와 함께 지내도록 했다. 구아가 생후 8개월, 도널드가 10개월 때였다.

이들의 목표는 침패지가 얼마나 인간을 잘 흉내 내는지 알아보는 데 있었다. 구아는 도널드와 똑같은 환경에서 동일한 대우를 받으며 지냈다. 구아에게을 발성 연습을 시키지 않고 단어를 알아듣도록 하는 실험에 집중했다. 구아는 19개월이 될 때까지 100여 개의 어휘를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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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주인공은 헤이즈 부부(Keith & Kathy Hayes)가 가르친 비키다. 비키는 영장류 중 최초로 사람의 발성 연습을 시도한 주인공이었다. 비키는 케이드를 ‘papa’로, 케이시를 ‘mama’로 불렀다고 한다. 그밖에는 발음하지 못했는데, 여기에는 이유가 있었다고 한다. 입술이나 형의 구조, 후두와 인두의 위치 등이 다양한 소리를 내는 데 한계가 있었다. 훗날 침팬지 와쇼를 기른 가드너 부부(Allen & Beatrix Gardner)의 분석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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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드너 부부는 비키에 대한 관찰 연구에서 새로운 실험 아이디어를 얻었다. 이들은 발음 훈련이 아니라 침팬지의 두뇌 능력을 밝히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곧장 돌을 조금 지난 침팬지 와쇼를 입양하여 그에게 미국 수화(American Sign Language)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와쇼는 22개월이 지난 뒤 수화 34개를, 4살이 되던 해에 85개를 익힌다. 14살이던 1979년 와쇼가 습득한 수화의 수는 250개 정도에 달했다. 말을 처음 배우기 시작한 아이와 비슷한 수준으로 단어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뜻했다. 와쇼는 영장류 중에서 최초로 수화를 할 줄 아는 주인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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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초 미국 컬럼비아 대학의 심리학자 허버트 테라스는 행동주의 이론의 권위자인 스키너의 제자로 명성을 얻고 있었다. 1973년 말 테라스는 영장류의 언어 습득 문제를 연구하기 위해 생후 2주일 된 침팬지 님 침스키를 입양했다. 님 침스키라는 이름은 세계적인 언어학자 놈 촘스키의 이름에 빗댄 것이다.


와쇼에게 수화를 가르친 가드너 부부처럼 테라스는 님에게 4년여 동안 수화를 가르쳤다. 이 수화 훈련에 연인원 60명의 트레이너를 동원했다. 님은 3년 8개월 동안 125개의 수화를 습득했다. 가드너 부부가 가르친 침팬지 와쇼나 패터슨이 가르친 고릴라 코코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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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테라스는 <사이언스>에 논문 한 편을 발표했다. 님 침스키와 함께 진행한 실험 연구의 한계를 고백하는 내용이었다. 그는 님이 단어를 이해할 수 있었지만 구사하는 수화가 문법적인 체계에 맞지 않았다고 말했다. 트레이너들이 실험을 과장해서 보고함으로써 님의 언어 능력이 잘못 계산되었다고 고백했다. 실험 비디오를 자세히 관찰한 결과 님의 수화 중 88퍼센트는 트레이너를 단지 흉내 낸 것일 뿐이었다고 한다. 님이 자발적으로 수화를 한 비율은 12퍼센트에 불과했다고 한다.


테라스는 논문 말미에 와쇼와 코코에 대한 연구에 대해서도 평가했다. 와쇼와 코코가 조련사의 실마리에 반응을 보이기는 했어도 그것을 적극적인 사고나 의사소통 행위의 증거로 볼 수는 없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언어를 사용하는 듯한 침팬지나 고릴라의 행동은 훈련을 통한 모방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았다.


테라스의 논문은 큰 파장을 가져왔다. 논문 내용이 언론 매체를 통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면서 동물의 언어 습득에 대한 회의론이 급격하게 커지기 시작했다. 동물 언어 연구에 지원되던 연구 기금이 크게 줄어들었다. 가드너 부부도 사실상 연구를 중단하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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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에는 프리맥 부부(David & Ann Premack)가 침팬지 사라에게 언어 습득 훈련을 시켰다. 이들 부부는 특정 단어에 해당하는 서로 다른 모양의 플라스틱 판을 이용했다. 언어학 교과서에 널리 소개되어 있는 사라의 훈련 장면은 이런 식이다. 


프리맥 부부가 사라에게 ‘사라(Sarah)’, ‘넣어라(insert)’, ‘사과(apple)’, ‘접시(dish)’, ‘바나나(banana)’, ‘물통(pail)’에 해당하는 플라스틱 기호를 순서대로 제시한다. 사라가 사과와 접시와 바나나를 물통에 한꺼번에 집어넣지 않고 사과는 접시에, 바나나는 물통에 넣는다. 


프리맥 부부는 사라가 온전한 문장을 만들어 사용했다고 보고했다. 생략된 단어까지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Sarah insert apple dish, (and insert) banana pail.”이라는 문장에서 괄호를 친 ‘and insert’를 이해했다는 것이다.


* 제목 커버의 배경 사진은 침팬지다. 인터넷 <다음(Daum) 백과사전>에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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