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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Feb 08. 2017

분수 덧셈식을 푸는 말 한스

동물의 언어 습득 (1)

1


수학 문제 하나를 풀어 보자. 5분의 2 더하기 2분의 1은 얼마일까. 분모를 서로 곱한 수를 분모로 삼고, 분모와 분자를 교차하여 곱한 수 두 개를 더해 분자로 하면 답이 나온다. 10분의 9가 답이다.


분수 덧셈은 우리나라에서 초등학교 5학년 수학 교육과정에 나온다고 한다. 분수 개념은 아이들이 산수를 시작한 뒤 맨 처음 부닥치는 ‘강력한 적군들’ 중의 하나이다. 그만큼 아이들이 어려워한다.


2


1904년, 그 어려운 분수식을 푸는 말이 나타났다. 주인이 위 분수식을 묻자 말은 앞발로(?) 대답했다고 한다. 분자의 9를 표현하기 위해 앞발로 땅을 아홉 번 찼다. 분모 10을 나타내기 위해 앞발로 열 번을 찼다.


말의 능력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숫자는 물론이고 어떤 수의 약수까지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한다. 시계나 음표를 보고, 사람들이 쓰는 말도 활용할 수 있었다. 단어와 문장의 내용을 이해하고, 알파벳 하나 하나를 이용하여 원하는 단어를 만든 후 답할 수도 있었다고 한다.


말을 이렇게 ‘똑똑하게’ 가르친 이는 젊은 시절 수학 교사로 일한 경력이 있었던 오스텐(Herr von Osten)이라는 사람이었다. 오스텐은 교육이 가져오는 놀라운 힘을 신봉한 사람이었다. 그는 그것이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에게도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오스텐은 러시아산 경주마 새끼 한 마리를 구했다. 그를 ‘제자’로 삼아 초등학교에서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것처럼 칠판이나 숫자 연습 도구 따위를 구해 수업을 했다.


오스텐이 가르친 러시아산 경주마 이름은 ‘한스(Hans)’였다. 사람들은 단어를 이해하고 숫자 계산을 할 줄 아는 한스의 능력에 놀라워하며 그의 이름 앞에 ‘영리한(clever)’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이렇게 해서 오늘날까지도 유명한 ‘영리한 한스(clever Hans)’라는 별명이 생겨났다.


3


한스는 정말로 영리했을까. 한스를 찬찬히 살펴본 사람들은 이상한 사실을 발견하였다. 한스가 보여준 언어 능력이나 산수 계산 능력은 그의 것이 아니었다. 답을 말하기(?) 위해 활용한 것은 자신에게 문제를 내는 사람들의 미묘한 표정 변화와 동작이었다. 한스는 그런 표정과 동작을 통해 정답의 실마리를 감지했다고 한다. 일종의 ‘컨닝’을 한 셈이다.


한스가 ‘boy’라는 단어를 만들어내기 위해 자신의 앞에 놓인 알파벳 카드를 선택하는 상황을 상상해 보자. 실험의 관찰자는 한스가 카드를 고르려고 할 때 무심결에 정답 카드(각각 ‘b’, ‘o’, ‘y’ 등이 인쇄된 카드)가 놓여 있는 쪽으로 시선을 주거나 얼굴과 몸을 돌리게 될 가능성이 크다. 한스는 그 순간을 예리하게 포착하여 카드를 골라낸다. 한스에게 군중의 표정을 보지 못하게 한 후 문제를 풀게 했다고 한다. ‘영리한’ 한스는 ‘어리석게도’ 멈추지 않고 계속 땅을 찼다.


4


‘눈치 100단’의 놀라운 감각은 한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영리한 한스’의 실체를 밝히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했던 이는 베를린 대학의 대학원생 풍스트(Oskar Pfungst)였다.


그는 인간에게도 이러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 밝혀냈다. 풍스트는 피실험자에게 문제를 알려주지 않은 채 이미 정답을 알고 있는 관찰자를 보면서 그 미지의 문제에 대한 답을 추측하게 하는 훈련을 시킨 후 실험을 했다. 놀랍게도 피실험자는 관찰자의 표정과 움직임에서 대략의 답을 알아챌 수 있었다고 한다.


주인 오스텐에게 짧은 명예의 시간을 안겨 준 한스는 주인의 한 친구가 운영하던 동물 학교에 팔려 갔다고 한다. 제2의 험난한 생애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스는 그 동물 학교에서 찰리프, 무스타파 등의 이름을 가진 동료 말들과 함께 ‘엘버펠트의 말’로 불리면서 제법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그곳의 엄격한 훈련 방식 때문에 많은 고초를 겪었다고 한다.


‘영리한 한스’의 이야기는 교육의 효과를 맹신한 오스텐의 과욕과 신기한 것을 향한 사람들의 호기심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해프닝’이었다. 그런데 한스가 사람의 미묘한 표정 변화에서 실마리를 잡아 계산 문제의 정답을 맞히는 모습은 많은 궁금증을 자아낸다. 동물이 어떤 문제를 머릿속으로 생각하면서 추상적인 연산 과정을 거칠 수 있을까. 사람이 쓰는 말을 배우거나 이해할 수 있을까.


* 제목 커버의 배경 사진은 한스(Hans)가 사람들 앞에서 재주를 부리는 사진이다. 인터넷 <위키백과>(https://ko.wikipedia.org/wiki/%EC%98%81%EB%A6%AC%ED%95%9C_%ED%95%9C%EC%8A%A4)에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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