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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Feb 12. 2017

페다고그(pedagogue), ‘노예 교사’의 어원학

교육 소뎐 (1)

1     


‘교사’를 뜻하는 고풍스러운 영어 단어 ‘pedagogue(페다고그)’가 있다. ‘교육’, ‘교육학’, ‘교직’을 의미하는 ‘pedagogy(페다고지)’와 한 계열을 이루는 말이다.

어원적으로 페다고지는 그리스어 ‘paidagōgia(파이다고기아)’에서 파생되었다. “아이를 이끌다”라는 뜻의 ‘ágō(아고)’와 동의어인 ‘paidagōgos(파이다고고스)’에 기원을 두고 있다.


페다고그에는 ‘교육자’라는 고상한 뜻풀이 외에 ‘학자연하는 사람, 박식한 체하는 사람’이라는 뜻풀이가 있다. ‘교육학’이라는 기품 있는 전문어와 한 무리를 이루는 단어치고는 뜻풀이가 조금 생경하다. 아니면 아이들에게 지혜를 가르치는 교사들에게 원래 그런 헛똑똑이 기질이 있다는 걸까.     


2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 교육은 자유인들의 전유물이었다. 영어 단어 ‘학교(school)’의 어원인 그리스어 ‘schole(스콜레)’가 ‘여가’나 ‘한가함’을 뜻하는 말이었다는 사실은 시사적이다. 생업 전선에 동원될 필요가 없는 자유인들이 시간적 여유를 두고 시민으로서의 생활과 교양을 위한 지식을 도모하기 위해 학교에 갔다.


노예들에게는 그런 혜택이 주어지지 않았다. 다만 학교에 갈 수 있는 노예가 한 부류 있었다. 페다고그, 곧 교사였다. 그리스에서 교사는 아이들을 학교로 데리고 다니면서 가르쳤던 노예들이었다. 페다고그와 통시적으로 연결되는 파이다고고스는 어린이를 (학교로) 인도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있었다.     


3     


교사가 노예 신분이었다고 해서 지레 놀라지 말자. 아테네 노예들은 오늘날 우리가 떠올리는 노예의 일반적인 이미지와 다른 면이 있었다.


기원전 5세기 중엽 아테네의 성인 남성 시민은 3만5000명 정도, 성인 남성 노예는 2만~3만 명 정도였다고 한다. 이밖에 비아테네 출신으로 아테네에 거주하는 거류외인이 1만~1만5000명이 있었다.


인구 구성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던 노예들은 농업과 가사, 그 밖의 전문직업에서 자유로운 시민들과 나란히 일했다. 돈을 모아 스스로의 자유를 살 수 있었고, 다른 사람이 몸값을 치러주었거나 주인의 호의로 해방된 경우에 거류외인과 비슷한 대접을 받았다. 사회적 위상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아테네에서 노예와 거류외인은 특별할 정도로 버르장머리 없이 살고 있다. 그래도 시민이 그들을 때려줄 수는 없다. 노예는 (시민을 위해) 길을 비켜주려고도 하지 않는다. 다음과 같은 상황을 설정해 보면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만약에 자유민이 노예나 거류외인, 해방 노예를 때리는 것이 합법적이라고 한다면, 아테네 시민도 노예라는 잘못된 인상을 주게 되어 얻어맞는 일이 종종 일어날 것이다. 왜냐하면 보통 사람들의 의복이 노예나 거류외인보다 더 나은 것이 없고, 외양에 있어서도 그들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 윤진(2005), <아테네인, 스파르타인>, 살림, 29쪽.     


페르시아 전쟁 후 ‘노 과두주의자(Old Oligarch)’라 불리는 사람이 시민이나 노예가 겉으로 보기에 별 차이가 없다며 늘어놓은 불평이었다고 한다.     


3     


그 역사적인 태동기에 교사가 노예 신분이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존 테일러 개토는 <수상한 학교>에서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교사를 “특수한 종류의 노예”로 규정하면서, “이 시대 교사의 주인은 누구이며 사는 곳은 어디”인지 물었다. 이 시대 교사들은 노예인가 주인인가. 

아테네의 노예 교사들은부모와 아이들 앞에서  박식한 철인 노릇을 했을 것이다. 가짜 지혜로 무장한 채 사람들을 현혹하며 밥벌이를 했을 것이다. 오늘날 교사는 그 시대 노예 교사 파이다고고스와 얼마나 다를까.


* 제목 커버의 배경 사진은 아테네다. <다음(Daum> 백과사전에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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