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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Mar 15. 2017

교사들이 아프다

너희가 10대를 아느냐 (44)

1     


중학교 교사인 김 선생님은 ‘교육적인 의미’(?)에서 이루어지는 체벌에 찬성하는 사람이었다. 좀 더 엄격한 학생 지도와 효율적인 교육 실행을 위해 체벌이 불가피하다는 관점을 갖고 있었다. 체벌에 대한 그런 유연한(?) 입장 때문에 평소 학생들에게 공공연하게 체벌을 가하였다. 공개적인 장소에서 감정을 최대한 배제한 채 체벌을 하는 원칙을 따랐다.


수년 전이었다. 전면적인 체벌 금지 조치가 취해지자 김 선생님은 매우 분개해 하였다. 얼마 뒤 체벌 금지에 대한 보완 시스템으로 벌점제도가 학교에 도입되었다. 학교에서는 교사들에게 벌점제를 적극 활용하라고 권장했다. 학생 지도의 어려움을 호소하던 김 선생님은 이른바 문제 학생들에게 벌점을 주기 시작했다.


그 해 가을 교원평가(교평) 시즌이었다. 평소 김 선생님에게 단골로 벌점을 받은 학생들이 김 선생님에게 ‘보복’ 작전을 펼쳤다. 교평 결과 김 선생님의 점수가 ‘보통’ 수준 이하 구간에 있는 것으로 나와 강제 연수 대상자로 지정되었다. 


평소 김 선생님은 ‘섬’처럼 지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같은 교원노동조합에 가입해 있지 않았고, 학년 담임 교사 모임에도 그다지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김 선생님의 강제 연수 지정에 대해 함께 문제를 제기하고 대책을 마련해 보려는 분위기를 전혀 찾을 수 없었다.


교사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학교 문화 자체가 매우 건조했다. 학교에 소속된 교사들 전체가 원자화‧개별화해 있었다. 전체 30명의 교사들 중에 전교조에 가입해 있는 교사가 단 3명뿐이었다. 부서 모임이나 학년 담임 교사 모임도 학교 행정 업무와 관련된 안건이 있을 때 형식적으로 이루어졌다.


김 선생님은 그 모든 상황을 홀로 감내한 뒤 그다음 학기에 휴직서를 냈다. 그 후 복직해 ‘왕따’처럼 3년을 보냈다. 학교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병조퇴를 하거나 이런저런 학교 일을 하지 않았다. 동료 교사들이 ‘저 사람 이상하게 변해 버렸어’ 하고 수군거렸다.


학교에서는 김 선생님을 문제 교사처럼 낙인을 찍었다. 교장은 김 선생님에게 담임을 맡기지 않았다. 교평에서 ‘낙제자’ 낙인을 한 번 받게 되자 교사들은 김 선생님이 성과급에서 높은 등급을 받는 것을 용인하려고 하지 않았다. ‘섬’처럼 지내던 김 선생님은 지금 그 섬의 그림자처럼 조용히 살고 있다. 하지만 원래 김 선생님은 열정적이고 쾌활하던 교사였다.     


2     


고등학교 교사인 이 선생님은 성과급에서 단골로 최고 에스(S) 등급을 받는 분이시다. 보직교사(부장직)를 수 년째 맡고 있고, 교과 특성상 수업 시수가 20시간 이상인 해가 많다. 그 중 몇 시간이 대개 자율학습으로 유지되기는 하지만 말이다.


대외활동이 활발하다. 해마다 이런저런 경시대회에 학생들을 데리고 나가 수상 실적을 낸다. 수업 ‘혁신’에 별다른 관심이 있어서 수업컨설팅 활동에 해마다 적극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교실 수업은 별다른 변화가 없어 보인다.


이 선생님의 연수 열정은 남다르다. 원격연수, 집합연수, 직무연수 등등 다양한 형태의 연수를 해마다 100시간을 훌쩍 넘겨 이수한다. 수업 사이사이에 연수를 하는 게 아니라 연수 중간중간에 수업을 하는 것 같을 정도다. 교장은 때때로 전체 교무회의 시간에 그런 이 선생님이 ‘연수 모범 교사’라며 적극 본받을 것을 교사들에게 권한다.


이 선생님 자신이 그런 ‘오글거리는’ 상황을 그다지 싫어하는 것 같지 않다. 오히려 즐기는 듯하다. 그 스스로 연수 최다 시간을 차지한 것에 대해 공개적으로 말하곤 한다. 


살려고 일하는 게 아니라 일하려고 사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이 선생님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그는 대개 정시에 출근하는 편이지만 퇴근 시간은 늘 20~30분 늦춰진다. 교무실 책상에 어지럽게 널려 있는 서류들과 각종 메모지들, 대형 컴퓨터 모니터가 이 선생님의 업무 열정을 잘 보여 준다. 


이 선생님은 다른 어떤 담임 교사보다 학급과 관련된 각종 조사서나 신청서를 일찍 제출한다. 기본과 질서와 원칙과 규칙을 남다르게 강조하는 교장과 비슷하게 학급 관리를 ‘칼같이’ 한다. 날카로운 눈매와 논리정연한 말 그물이 강력한 수단이다. 교묘하게 이루어지는 체벌, 심각한 인격 모독은 아니지만 학생의 내면 깊숙이 흔적을 남기는 인신 공격성 꾸지람이 최대 무기다. 이 선생님과 함께하는 학생들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모두가 차분하고 심각한 ‘모범생’이 된다.     


나는 김 선생님과 이 선생님의 이야기를 허구적으로 재구성하면서 전국 2만여 곳의 유‧초‧중‧고교에 있는 수많은 ‘김 선생님, 이 선생님’들을 떠올렸다. 그들은 김 선생님과 이 선생님 사이 어디쯤 있을 것이다. 나는 김 선생님과 이 선생님 중 어느 쪽에 가까울까. 그 어느 곳에 있든 교사들이 교평과 성과급의 그물 아래 있는 한 그들 모두 ‘행복감’을 느끼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확신한다.


3


교사들이 아프다. 지난해 12월 전교조 참교육연구소와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과에서 공동 연구한 <교사 직무스트레스 및 건강실태 조사>(연구책임자 김형렬) 결과 보고서를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상황이 심각해 보였다.


우울에 관한 설문 결과 전체 교사의 28퍼센트가 유력우울증에, 11.9퍼센트가 확실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1971년 미국정신보건연구원에서 개발한 CES-D 모델을 바탕으로 1993년에 한국어 버전으로 만든 설문지 조사 결과였다. 총 60점 만점 중 유력우울증은 16점 이상, 확실우울증은 25점 이상인 경우에 해당한다. 전체적으로 기간제 교사, 특성화고 교사, 농촌 일반고 교사 집단에서 높은 수치가 나왔다.


감정노동 실태 또한 심각한 수준이었다. 고객을 직접 응대하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친절함을 드러내야 하는 것으로 전제되는 서비스직 종사자들의 일반적인 감정노동과 달리 교육노동은 교수-학습관계를 기반으로 상호존중과 협력의 인격적 관계에 기초한 활동이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교육정책과 이데올로기에 따라 광범위하게 유포된 교육 공급자-수요자 논리와 교평과 성과급 등 각종 평가 기제 담론의 영향 때문에 학교와 교실이 어느새 여느 서비스직종 일터와 같은 감정노동의 공간으로 변해 버렸다.  


무엇보다 조직의 지지 및 보호체계가 매우 미약했다. 감정조절의 요구 및 규제, 감정부조화와 손상, 고객응대의 과부하와 갈등 등의 영역에서 감정노동 수준이 매우 높았다. 학교-교사 유형별로 일반고와 특성화고 여성 담임 교사의 감정노동 수준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저런 시스템과 제도와 습속을 이유로 많은 교사가 섬처럼 지내고 있다. 그들이 각자의 시간과 공간과 세계에 뿔뿔이 흩어져 살아가(야 하)는 한 우울증과 감정노동의 여파는 더 세게 교사들의 목을 죌 것이다.     


4     


교사들이 힘들다. 형식주의와 위선의 시절을 지나고 있다. 불요불급한 업무가 끝없이 밀려든다. 교원업무간소화를 외친 지 십수 년이 지나고 있으나 체감도가 낮다. 공문을 줄이라는 내용의 공문이 시시로 내려와 교사들을 조롱한다.


각종 서류와 보고서 작성, 학생부 정리 등의 업무에서 교사들은 ‘거짓말’ 잔치를 벌인다. 소박한 진실과 사려 깊은 통찰이 지배해야 할 교무실과 교실이 과장과 포장과 치장의 공간이 되어 있다. 끊임없는 수업 ‘개선’ 압박과 ‘혁신’에 대한 부담감이 수업을 한바탕 잘 치러내야 하는 ‘이벤트’처럼 만들어 버렸다.


교사들은 역할 과부하 증세에 시달린다. ‘슈퍼교사 신드롬’으로 부를 만한 이 증세에 시달리는 교사들은 부모, 어른, 멘토, 상담사, 후원자, 사법관(경찰), 법률가(검사와 판사), 행정가의 ‘달인’이 되기를 종용받는다. 끊임없는 연수와 자기 연찬으로 그 모든 역할을 충실하고 성실하게 수행할 것을 요구받는다.


내가 보기에는 총체적인 난국이다. 무엇보다 정부가 강조하는 정책과 제도의 지향점과 목표가 상호 모순적이다. 우리나라 교육당국이 내세우는 성과급제의 목표를 아는가. 교원들 간 협력과 경쟁을 유도하여 사기를 진작하는 것이다. 양립하기 힘든 ‘협력’과 ‘경쟁’을 동시에 요구하는 전형적인 이중구속(double-binding) 정책이다. 비단 성과급제뿐일까.


* 본문의 김 선생님과 이 선생님 사례는 <교사 직무스트레스 및 건강실태 조사>(연구책임자 김형렬) 결과 보고서에 담긴 내용과 필자의 간접 체험을 바탕으로 허구적으로 재구성된 것임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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