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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Mar 13. 2017

‘고릴라 사피엔스’와 말 없이 말하는 동물들

동물의 의사소통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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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사피엔스’가 있다면 ‘고릴라 사피엔스’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고릴라나 침팬지와 같은 유인원류를 대상으로 한 언어 습득 실험이 그 가능성을 보여 준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적어도 현재까지 고릴라나 침팬지가 언어를 가질 확률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스코틀랜드 세인트 앤드류 대학교에 있는 영장류 전문가 클라우스 주베르뷜러(Klaus Zuberbühler) 박사는 이를 진화 과정의 차이로 설명한다. 


사람은 어느 특정한 진화의 시기에 각자 가진 정보를 서로 나누려는 욕구가 발달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느 시기에 미지의 조상 인류들이 의사소통의 필요성을 강하게 가졌다고 보는 것이다. 주베르뷜러 박사는 그러한 욕구가 점점 발달하면서 진화 과정에서 압력처럼 작용하여 말문이 트였다고 주장한다. 


반면 침팬지와 유인원에게는 그와 같은 진화 과정의 압박이 없었다. 사람처럼 언어를 만들어 서로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주베르뷜러 박사의 주장은 조금 허술해 보이는 순환 논법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런 식이다.


“침팬지는 인간과 달리 정보를 전달하려는 욕구가 없다. 그러므로 침팬지에게는 언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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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까. 침팬지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일에 특별한 흥미를 갖고 있는지 없는지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마크 하우저(Mark Hauser) 박사는 하버드 대학에서 동물의 의사소통을 연구하는 학자이다. 그는 인간과 유인원의 신경계가 갖는 상호 작용의 차이를 통해 언어 문제를 설명한다. 


인간 두뇌의 신경계는 그물처럼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으면서 활발하게 상호 작용을 한다. 하우저 박사는 인간이 언어 구사와 같은 고도로 복잡하고 추상적인 능력을 갖게 된 것이 이런 점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유인원은 다르다. 하우저 박사는 이들의 두뇌 신경계가 서로 자유롭게 작용하지 못한 채 각각의 영역에 갇혀 있는 점에 주목한다. 침팬지는 무리 안에서 상대방의 의도를 간파하거나, 나름의 ‘정치적인 전략’까지 구사할 줄 아는 유인원이다. 다만 침팬지는 인간과 달리 언어를 갖지 못했다. 하우저 박사는 그 이유를 두뇌 신경계의 제한적이고 폐쇄적인 작용 때문이라고 본 것이다.


그런데 동물들에게 사람들이 쓰는 말이 없다는 사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사람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한다. 발음 기관의 문제 역시 그들이 자신들 고유의 ‘말’을 구사하는 데 영향을 주지 못한다. 그들은 기나긴 진화 과정 속에서 자기들 나름의 ‘언어 사용법’을 훌륭하게 터득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언어 세계’로 들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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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는 지구에서 가장 큰 덩치를 자랑하는 동물의 하나이다. 그 큰 덩치 때문에 가끔 둔해 보이기도 하지만 코끼리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영리하고 섬세하다. 코끼리 무리는 잘 짜인 씨족 사회처럼 서로간의 끈끈한 유대감을 바탕으로 살아 간다. 


여기에는 아주 다채로운 소리가 동원되는 그들만의 의사소통 체계가 자리 잡고 있다. 코끼리들이 다양한 의사소통 상황에서 활용하는 소리 유형은 낮은 울림소리나 굉음, 으르렁거리는 소리와 킁킁거리는 소리, 또는 나팔 소리와 울부짖는 소리 등이라고 한다.


특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는 소리가 있다. 주파수가 14헤르츠에서 35헤르츠 사이에 있는 낮은 울림소리이다. 30헤르츠 이상의 소리는 오르간 베이스의 깊은 울림처럼 사람에게도 들린다. 


반면 코끼리들이 내는 낮은 울림소리는 주파수 대역이 사람 귀로 듣기 어렵다고 한다. 코끼리들은 이런 소리를 이용하여 초원이나 숲에서 서로 자연스럽게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과학자들은 암수 코끼리가 주고받는 ‘구애 노래’가 이 초저주파로 작곡된 것임을 밝혀 냈다. 첨단 원격 소리 측정기와 타이머 등으로 확인한 결과, 코끼리들은 최대 4킬로미터의 거리를 사이에 두고 3분 동안 계속 서로 사랑의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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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가 주고받는 이 불가청음(不可聽音, 귀로 들을 수 없는 소리)의 정체를 무엇으로 보아야 할까. 발정기에 내는 것이니 본능적인 외침처럼 보인다. 그들만의 일정한 신호 체계가 반영되어 있으므로 확장된 의미의 ‘언어’로 보이기도 한다. 


코끼리들은 아프리카의 초원이나 숲에서 서로 수킬로미터가 떨어져 있어도 계속 거의 같은 속도로 방향을 조정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능력은 본능에서 비롯됐을까 아니면 초저주파 소리라는 그들만의 ‘언어’ 덕분일까. 


그 정체가 무엇이든 그들의 소리 체계를 완벽하게 밝혀낼 수 있다면 우리는 ‘닥터 두리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잠깐 언어의 개념을 살펴보자. 사전에서는 언어를 ‘음성이나 문자를 수단으로 하여 사람의 사상이나 감정을 표현하고 의사를 전달하는 수단과 체계’로 풀이한다. 문제는 이 사전을 쓴 주인공이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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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이나 개미 제국에 사전이 있고, 거기에 역시 ‘언어’라는 표제어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꿀벌어와 개미어의 사전 편찬자들도 ‘음성’이나 ‘문자’라는 단어를 쓸까. 아마 그들은 ‘8자 날개 춤’이나 ‘페로몬(pheromone)’을 넣어 언어를 정의할 것이다.


‘음성’이니 ‘8자 춤’이니 ‘페로몬’이니 하는 것들은 본질적인 정체가 서로 많이 다르다. 하지만 이들은 궁극적으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의 의미를 갖는다는 점에서 비슷한 성격을 갖는다. 이를 바탕으로 한다면 우리는 언어를 ‘지구상의 생물 종이 서로 정보를 주고받기 위해 활용하는 모든 수단이나 매개체’로 폭넓게 정의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정의를 따를 때, 우리가 이미 쓰고 있는 다양한 ‘언어’ 유형들, 가령 표정 언어나 몸짓 언어, 수화 언어, 수학 언어, 컴퓨터 언어 등도 온전히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게 된다. 사람이 쓰는 언어만을 ‘진짜 언어’로 고집하지 않는 한, 우리는 얼마든지 ‘꿀벌의 언어’나 ‘개미의 언어’, 심지어는 ‘개구리의 언어’도 말할 수 있다.


* 제목 커버의 배경 사진인 코끼리 이미지는 이미지 무료 제공 사이트 '픽사베이(Pixabay)(https://pixabay.com/ko/photos/?image_type=&cat=&min_width=&min_height=&q=%EC%BD%94%EB%81%BC%EB%A6%AC&order=popular)에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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