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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Mar 12. 2017

공무원이라는 ‘특수신분’과 정치적 중립성

교사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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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에서 공무원인 ‘군인’의 정치적 중립성 규정은 ‘의무’ 조항이다. 국군의 정치적 중립성 규정을 명문화한 <헌법> 제5조 제2항을 보면 “국군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함을 사명으로 하며, 그 정치적 중립성은 준수된다”로 되어 있다. 반드시 지켜야 하는[준수(遵守)] 의무다.     


반면 동일한 공무원 신분인 ‘교사’의 정치적 중립성 규정은 ‘권리’ 조항이다. <헌법> 제7조 제2항의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라는 규정, <헌법> 제31조 제4항의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라는 규정 등이 그것이다. 외압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권리의 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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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은 헌법을 침해한 반헌법적 역사의 주인공들이었다.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를 떠올려 보자. 군인의 정치적 중립성 규정이 변함 없이 의무 조항으로 운용되고 있는 역사적인 연유다.     


교사가 헌법의 정당성을 훼손하고 부정한 사례는 찾을 수 없다. 그들은 오히려 부당한 정치 권력의 외압와 명령에 따라야 했던 ‘피해자’들이었다.      


이승만은 교사와 학생들을 정치 유세에 동원했다. 전두환과 노태우 등 1980년대 신군부는 교사들을 정권의 하수인처럼 부려먹었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헌법적 권리로 제도적으로 보장하게 된 역사적인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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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혁명으로 탄생한 1960년 헌법은, 헌법상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과 관련하여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과 신분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규정하였다. 이승만 자유당 정부가 공무원을 동원해 자행한 관권선거와 부정선거 등의 조직적인 선거부정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5.16 쿠데타로 권력을 탈취한 박정희가 1963년 헌법을 통해 교사 공무원의 정치적 기본권을 제한하는 일련의 법적 조치들을 치밀하게 준비하여 내놓았다. 1963년 <헌법>에서 제31조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규정이 추가되었다.      


반면 하위법률들에서는 이 규정 조항의 취지와 반대되는 내용의 조항들이 만들어졌다. 1963년부터 <국가공무원법>과 <지방공무원법>에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규정 위반을 처벌하는 조항이 신설되었다. 공무원과 교원이 정당가입금지 대상자로 지정되면서 정치행위에 대한 전면적 제약이 이루어졌다. 정치적 중립 보장 조항을 만들어 넣은 도입 취지나 배경과 달리 구체적인 운용은 정치활동을 전면 금지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1963년 이전에는 헌법상 정치적 중립 규정이 공무원을 외압으로부터 보호하는 보호막으로서 이해된 반면, 1963년 헌법부터는 정치적 중립 규정이 그 하위법들을 통해서 공무원과 교사의 정치적 기본권을 박탈하는 방식으로 변형되어 운용되었다. 이러한 운용을 통해 국가는 공무원과 교사를 탈정치화하고 상부의 지시에 철저히 복종을 요하는 자세를 확립시켰다. 공무원과 교사에 대한 전면적인 참정권 제한의 특징은 공무원의 직무상 행위와 직무 외의 행위, 즉 시민으로서의 일상적 행위를 구별하지 않고 있다는 점과, 공무원과 교사는 정당가입과 정당후원 등 민주국가에서 국민으로서 지켜야 할 필수적인 정치적 기본권조차 박탈하고 있다는 점이다.” - 신옥주(2017), <한국에서의 교사의 정치적 기본권의 현황과 문제점>, 국회교육희망포럼국제토론회(2017년 2월 14일) 자료집(교사의 정치적 기본권 보장과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독일과 한국), 국회교육희망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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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은 왜 ‘기만’이고 ‘허구’인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의 의미, 교육 자체의 정치성과 교사 공무원에 대한 정치적 기본권 제한의 위헌성 문제 등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먼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의 의미 문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은 당해 <헌법> 조문인 제31조 제4항에서 ‘자주성’, ‘전문성’과 함께 등장한다. 정치적 중립성을 자주성, 전문성과 병치시킨 이유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정치 권력을 포함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으로부터 교육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지키기 위한 조치로 이해하는 것이 온당하다.     


헌법재판소(헌재) 역시 교육의 정치적 독립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다만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구석이 많다. 헌재는 교육방법과 교육내용의 불편부당성을 강조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헌재가 내세우는 방식이 교원에 대한 일체의 정치 행위 금지다.     


따져 보자. 헌재가 말하는 불편부당한 교육이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교육이라고 볼 수 있을까. 오히려 불편부당한 교육의 참된 의미는 편파적인 교육의 금지, 가령 교사들이 헌법상의 민주적인 기본 질서를 부인하는 특정한 이데올로기나 가치관을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교육을 금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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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교육 자체의 정치성 문제. 우리나라 교육의 ‘기본’을 규정하고 있는 <교육기본법> 제2조는 우리나라 공교육의 기본 이념을 ‘홍익인간’으로 천명해 놓았다. 이를 위해 인격을 도야하는 교육, 자주적 생활능력을 기르는 교육, 민주시민으로서의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하는 교육을 강조하였다.     

 

‘홍익인간’이라는 교육이념의 비정치성을 논증할 수 있는가. 인격 도야 교육이나 자주적 생활능력 배양 교육은 정치성과 무관한가. ‘민주’와 ‘시민’은 그 자체로 정치적인 개념이 아닌가. 이들 교육을 담당하는 교사가 100퍼센트 비정치적인 상태에서 교육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교육기본법>이 규정하는 교육은 온전히 ‘정치적인’ 교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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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교사 공무원에 대한 정치적 기본권 제한의 위헌성 문제. 당연히, 공무원인 교사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다. 직업공무원제도의 기능에 수반하는 중립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다만 필요한 범위에서 명확성을 바탕으로 한 최소한도의 제한이어야 한다.     


공무원은 국민 전체의 봉사자인 동시에 기본권의 주체라는 이중적 지위를 갖는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국민 전체의 봉사자라는 개념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공무원으로 하여금 직무 범위 내외를 불문하고 일체의 정치 활동을 금지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일종의 ‘특수 신분’처럼 간주된다.     


이는 공무원이라는 직업 ‘신분’ 때문에 그 기본권을 포괄적으로 제한당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헌법> 제11조 제1항(“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에서 금지하는 사회적 신분에 따른 차별의 하나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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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공무원에 대한 정치적 중립성 강제는 기만이다. <국가공무원법>, <지방공무원법>, <교육공무원법>, <국가공무원복무규정>, <지방공무원복무규정>, <정당법>, <정치자금법>, <교육기본법>, <교원의노동조합설립및운영에관한법률>, <공무원의노동조합설립및운영에관한법률> 등에서 교사 공무원에 대해 일체의 정치활동과 단체활동을 금지시킴으로써 정치적 중립성을 달성한다는 명목으로 교사 공무원의 정치적 기본권을 전면 금지하는 현재의 반헌법적 상태를 올바르게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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