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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Mar 04. 2017

고릴라와 보노보의 ‘역습’

동물의 언어 습득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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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1970년대의 ‘말하는 원숭이(?)’는 고릴라 ‘코코(Koko)’와 보노보 ‘칸지(Kanzi)’로 대표된다. 코코는 동물학자 프랜신 패터슨(Francine Patterson)이 1972년 7월부터 수화를 가르친 암컷 고릴라였다. 6개월 만에 ‘수화로 능숙하게 대화하는 최초의 고릴라’라는 찬사를 받은 코코는 현재까지 1000개 이상의 수화 단어를 표현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이 정도 수준의 어휘력은 사람의 유아기 수준에 해당한다.


코코의 지능지수는 검사 결과 85~95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연구자들은 검사지가 ‘인간이 만든’ 것이라는 점, ‘고릴라’인 코코가 검사지를 푸는 과정에서 실수를 저질렀을 가능성 등을 고려할 때 코코의 아이큐가 이보다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한다. 다음 사례를 보자.


어느 날 코코는 입에 재갈이 물린 말을 보고 ‘말 슬프다’는 감정을 표현했다고 한다. 패터슨이 이유를 묻자 코코는 ‘이빨’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언젠가 코코는 사람 음성을 흉내 낸 ‘죽어가는 말소리’로 전화 교환원에게 전화를 걸기도 했다. 겁을 먹은 전화 교환원은 부랴부랴 전화번호를 추적하는 소동을 벌였다. 1976년부터는 같은 종 수컷인 ‘마이클’과 함께 훈련을 받기 시작했다. 그들은 2년 만에 미국 수화로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이때 코코는 마이클에게 수화를 가르치는 선생 노릇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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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흥미로운 사례가 있다. 어느 날 패터슨이 코코가 빨간 크레용을 씹은 것을 보았다. 그는 코코에게 “설마 이 크레용을 먹으려고 한 건 아니지?” 하고 물었다. 코코는 수화로 “입술.”이라고 대답하면서 립스틱을 바르듯이 입술을 빨간 크레용으로 칠했다. 장난으로 크레용을 씹은 것을 감추기 위해 립스틱을 바르던 중이었다고 ‘거짓말’을 한 것이다.


패터슨은 이 사례가 ‘전위성(轉位性, displacement)’이라는 인간 언어의 중요한 자질과 관련된다고 보았다. 전위성은 인간의 언어가 ‘현재’의 ‘이곳’에서 일어난 일 외에 ‘과거’와 ‘미래’, 또는 ‘저곳’과 ‘그곳’, ‘가까운 곳’과 ‘먼 곳’의 일을 전달할 수 있음을 가리킨다. 거짓말이 이 전위성과 관련된다. ‘거짓말’을 하는 고릴라 코코는 각자 나름대로의 능력을 보여주면서 인기를 끈, 와쇼나 사라와 같은 말하는 선배 침팬지들에게 ‘역습’과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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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의 뒤를 이어 ‘언어 영웅’의 왕좌를 차지한 동물은 보노보 칸지였다. 사람은 침팬지와 유전자 구성이 98퍼센트 넘게 일치하는데 보노보와는 비슷한 특성을 더 많이 공유한다. 그래서 보노보는 인류의 사촌쯤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보노보는 ‘난쟁이 침팬지’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덩치가 작다. 체중이 30킬로그램 정도에 불과하다. 덩치 큰 고릴라에 비해 외양도 귀엽다.


칸지와 함께 운명적인 삶을 꾸려 간 주인공은 앞에서 잠깐 소개한 수 새비지 럼버였다. 그녀가 처음 언어를 가르치려고 시도한 주인공은 칸지의 양엄마 ‘마타타(Matata)’였다. 그 사이 칸지는 럼버와 마타타의 어깨 너머로 눈앞에 펼쳐지는 상황을 지켜보기만 했다고 한다. 


어느 날 칸지는 ‘렉시그램(lexigram)’으로 불리는 그림 키보드를 조합해 자신이 무언가를 원한다는 메시지를 표현했다. 아이들이 부모나 형제들의 말소리를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말을 익히는 방식과 매우 흡사했다.


럼버는 이때부터 칸지에게 풍부한 언어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이를 통해 칸지 스스로 상징 기호를 사용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함께 놀아주거나 털을 손질해 주면서 규칙적으로 말을 걸거나, 렉시그램을 가리키면서 단어를 말해 주었다. 이전의 다른 유인원들은 인위적이고 조작적인 훈련을 받아야 했다. 이를 통해 주어진 상황에서 특정한 대답을 하도록 길들여져야 했다. 칸지는 이와 다른 방식으로 말을 배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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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의 와쇼만 하더라도 실험자의 말을 들으면서 적극적으로 의사소통을 하지는 못했다. 와쇼는 하나의 기호를 배우기 위해 수만 번 반복 훈련을 했다. 와쇼는 교실에 앉아서 교사의 지시와 가르침에 따라 주어진 단어를 배우는 수동적인 학생에 불과했다. 럼버는 와쇼의 언어 능력이 진정한 것이 아니라고 비판했다.


몇 년 동안 칸지는 먹이를 자유롭게 먹으면서 키보드 조작법을 배웠다. 그 결과 영어 음성으로 된 명령과 질문, 문장을 이해하고 렉시그램으로 대답할 수 있게 되었다. 사물을 포함하여 자신의 의도나 행위, 상대편의 마음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공을 보여 줘.”, “그 뱀 그림을 내게 가져와.”, “네 엉덩이를 간질여도 돼?”와 같이 전에 들어보지 못한 수백 개의 문장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는 보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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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언어진화학회 학술 발표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당시 조지아주립대학 언어연구센터에서 일하던 하이디 린(Heidi Lyn)이 칸지에 관한 인상적인 관찰 경험 하나를 소개했다. 


어느 날 럼버가 칸지에게 당근에 물을 부으라고 말했다. 그러자 칸지는 당근을 바깥으로 던져 버렸다. 럼버는 칸지가 자신의 말을 잘 못 알아들었다고 여겨 다시 요청했다고 한다. 칸지는 손가락으로 창밖을 가리켰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보노보는 언어를 구사하는 방식이 창의적이다. 예컨대 칸지는 오리를 나타내기 위해 ‘물’과 ‘새’를 연결한다. 마취된 유인원이 들것에 실려 나가는 모습을 보고 “무서워, 밖에.”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미 아는 단어를 활용해 새 단어를 만들거나, 새로운 상황에 직면했을 때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문장을 만들어낸 것이다. 연구자들은 칸지 사례를 통해 보노보가 3세에서 5세 아이 수준의 이해력을 발달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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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지는 ‘타물리(Tamuli)’라는 이름의 어린 보노보와 함께 지낸 적이 있었다. 타물리는 처음에 어미의 보살핌을 받으며 따로 자랐다. 그러다 세 살 반 무렵부터 칸지와 함께 지내게 되었다. 생후 몇 주째부터 인간의 언어에 노출된 칸지보다 훨씬 늦게 언어를 접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타물리는 칸지가 보여준 언어 기술을 제대로 기르지 못했다. 고립된 환경에서 지내다가 언어 습득의 결정적인 시기를 놓쳐버리고 열네 살이 되어서야 발견된 지니와 여러모로 비슷해 보인다. 고립아였던 지니 또한 언어 습득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현재 칸지는 256가지의 렉시그램을 사용해 인간과 의사소통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의 한 실험에서는 어린이들과 함께 “모자에 사과를 넣으시오.”와 같은 식의 660여 가지 과제를 수행하기도 했다고 한다. 칸지가 사용하는 렉시그램은 현재 학습 장애를 가진 아이들에게 언어를 가르치는 데 응용되고 있다.     


7

     

언어적 사고가 인간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은 이제 구시대의 유물이 된 듯하다. 언어가 인간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이 옳다면 칸지나 코코와 같은 유인원들이 사람 말을 알아듣거나 문장을 만들어내는 일이 힘들 것이다.

물론 일부에서는 동물 언어를 연구하는 사람들이나 그들이 내놓은 연구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사자가 말을 할 수 있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라고 비꼬았다.


그런데 유인원은 유전적으로 사람과 아주 가깝다. 이런 사실이 단지 우연한 진화의 결과만은 아닌 듯하다. 이들 유인원을 대상으로 한 언어 실험이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유인원과 인간에게는 분명 서로 통하는 구석이 있는 것 같다. 이런 연구들에 힘입어 언젠가 언어의 기원이나 진화 과정을 밝히는 데 획기적인 실마리를 얻게 될지 모른다. 그렇게 되면 ‘천재 철학자’라는 평가를 받는 비트겐슈타인의 오만한 콧대도 조금 납작해지지 않을까.


우리가 사는 지구에는 유인원 외에도 수많은 동물이 있다. 그들 모두 나름의 고유하고 독특한 의사소통 체계를 가지고 있다. 이를 활용해 사람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서로 활발하게 ‘대화’를 하면서 살아간다. 그들의 발성 기관은 사람과 다르다. 그들은 자음과 모음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런데 사람 이상으로 자신들만의 복잡한 네트워크를 형성해 살아간다. 그들에게 어떤 능력이 있는 걸까. 다음 장에서 이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 제목 커버의 배경 사진은 보노보 원숭이다. 인터넷 <위키백과>(https://ko.wikipedia.org/wiki/%EB%B3%B4%EB%85%B8%EB%B3%B4)에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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