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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Mar 24. 2017

무게 1밀리그램, 점 뇌의 위력

동물의 의사소통 (2)

1


동물의 언어를 찾아가는 여행을 본격적으로 떠나 보자. 첫 번째 경유지는 꿀벌 왕국이다. 뇌 무게 1밀리그램에 어른 엄지 손톱만한 크기의 꿀벌은 여왕벌, 일벌, 수벌 등의 3계급 체제로 구성되는 대제국에서 살아간다. 이 제국은 매우 치밀하고 체계적인 조직으로 유명하다. 그들이 자기들 나름의 독특한 언어인 8자 날개 춤을 통해 생존을 도모해나가는 사실은 특히 널리 알려져 있다. 8자 춤은 어떤 춤일까.


2


8자 춤의 비밀을 밝힌 이는 1973년에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동물비교행동학자 카를 폰 프리슈(Karl von Frisch, 1886~1982)였다. 그가 연구한 대상은 유럽 꿀벌(European honeybee)이었다.  프리슈 박사가 연구한 꿀벌 언어 시스템은 다음 순서에 따라 작동한다.


㉠ 탐색벌(선발대로 나가 꿀을 찾는 구실을 하는 일벌)이 선발대로 나가 꿀을 찾는다.

㉡ 꿀을 찾은 탐색벌이 돌아와 벌집의 벽쪽을 향한 후 다음 정보를 담은 8자 춤을 춘다.

  - 밀원(蜜源, 꿀이 있는 장소)을 춤의 궤적으로 표현한다.

  - 밀원까지의 거리를 춤의 횟수(속도)로 표현한다.

  - 꿀의 질을 춤의 활기찬 정도로 표현한다.

㉢ 일벌들이 탐색벌이 춘 8자 춤의 정보를 해석한 뒤 밀원으로 날아가 꿀을 딴다.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탐색벌은 꿀이 있는 곳이 태양 방향과 같은 곳이면 8자를 옆으로 눕혔을 때의 가운데 수직선을 기준으로 위를 향하는 궤적을 따라 춤을 춘다. 꿀이 있는 곳의 방향이 태양과 반대쪽이면 옆으로 누운 8자의 수직선 방향이 아래로 향하도록 춤을 춘다.


8자 춤의 횟수와 활기찬 정도는 밀원까지의 거리나 꿀의 질을 알려 준다. 조사 결과 탐색벌이 15초 안에 8자 춤을 열 번 돌면 100미터, 여섯 번을 돌면 500미터, 네 번을 돌면 1500미터 가량 떨어진 곳에 꿀이 있었다고 한다. 춤을 추는 속도와 밀원까지의 거리가 반비례 관계에 있는 것이다. 유럽 꿀벌은 최대 11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밀원의 거리를 정확하게 알려 준다고 한다. 춤의 활기찬 정도는 꿀의 질과 관련되는 단서였다. 프리슈 박사에 따르면 날갯짓이 힘찰수록 꿀의 질이 더 좋았다고 한다.


4


꿀벌이 모든 상황에서 완벽하게 자신들의 ‘언어’를 구사한 것은 아니었다. 이 사실은 날아다니는 꿀벌들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한 실험을 통해 밝혀졌다. 프리슈 박사는 꿀벌들을 강제로 걷게 해서 밀원까지 가게 했다. 그러자 꿀벌들은 벌집과 밀원까지의 거리를 최대 25배까지 잘못 계산했다고 한다. 프리슈 박사는 벌집 위치에서 ‘수직으로’ 50미터 정도 되는 나뭇대를 세우고 그 위에 꿀을 얹어 놓은 후 벌에게 그것을 맛보게 하는 실험도 했다. 이때에도 꿀벌들은 밀원의 위치를 정확하게 가르쳐 주지 못했다고 한다.


이런 연구 결과는 꿀벌의 ‘언어’에 상당한 한계가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꿀벌은 새로운 조건(날아가는 대신 걸어가기)이나 환경(수평이 아닌 수직의 밀원 위치)에 맞게 창의적인 신호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꿀벌들이 고유한 신호(춤)로 교신한다는 사실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프리슈 박사의 연구 결과는 동물들의 다양한 신호나 통신 방법, 나아가 의사소통의 수단이나 매개체로서의 동물 언어에 대한 연구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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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언어 여행의 다음 방문지는 개미굴이다. 지구에는 1만2000종~1만4000종 정도로 추산되는 다양한 개미 종이 살아가고 있다. 꿀벌과 마찬가지로 이들 개미 종은 거대한 집단 형태로 조직적인 사회 생활을 해 나간다. 보통 개미 한 무리의 기본 개체수는 100만 마리를 뛰어넘는다고 한다. ‘개미 제국’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은 규모다.


이 거대한 제국의 공용어에 활용되는 요소는 개미들의 가냘픈 몸짓과 분비 물질인 페로몬이다. 개미들은 이들 요소를 통해 50여 가지가 넘는 신호를 전달할 수 있다고 한다. 개미의 신호 체계가 흔히 ‘페로몬 언어’에 빗대어지는 까닭이다.


개미의 페로몬 언어를 완벽하게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개미의 페로몬 언어 역시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 그들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고도로 조직적인 신호 체계를 사용하면서 살아갈지 모른다. 먹이를 구해 오거나 다른 집단과 전쟁(?)을 치르기 위해 일렬로 행진을 하는 개미떼를 생각 없는 ‘오합지졸’로 보기 어렵다. 그런 개미의 두뇌 크기는 문장 끝에 찍는 마침표(‘.’)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 제목 커버의 배경 사진은 무료 이미지 제공 사이트 'pixabay.com'에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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