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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Mar 25. 2017

900년 간 이어진 학교, 플라톤의 아카데메이아

교육 소뎐 (9) 국가주의 교육철학의 시원 플라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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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기원전 428년~기원전 348년)은 그리스 아테네의 명문가 출신 귀족이었다. 아테네의 전설적인 왕 코드로스(Kodros)로 부계가 이어지고, 모계가 아테네 개혁 입법가의 대명사인 솔론(Solon)으로 이어졌다. 원래 이름이 아리스토클레스(Aristocles)였는데, 이마가 아주 넓어 ‘넓은 이마’라는 뜻의 ‘플라톤’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 뒤 플라톤은 별명이 본명처럼 불리게 되었다.


플라톤은 출생 후 20세 초반에 이르기까지 ‘고대의 세계 대전’으로 불리는 펠로폰네소스 전쟁(기원전 431년~기원전 404년)을 경험했다. 아테네가 이끄는 델로스 동맹과 스파르타가 이끄는 펠로폰네소스 동맹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었다. 27년간 이어진 싸움 끝에 스파르타가 승리했다. 아테네는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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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404년 무렵 그리스 아테네는 30인 참주정 체제 아래 있었다. 스파르타의 장군 리산드로스가 친스파르타 성향의 아테네 정치인 30인을 앞세운 일종의 ‘괴뢰 정권’이었다. 30인 참주 정권의 지도자는 크리티아스였다. 그는 소크라테스의 제자이자 플라톤의 외삼촌이었다.


30인 참주 치하의 아테네는 참혹했다. 불평분자들은 즉시 재산을 빼앗기고 추방당하거나 사형에 처해졌다. 당시 30인 참주정 아래서 처형당한 사람 수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마지막 10년 동안 죽은 아테네 인보다 많았다고 한다.


처음에 크리티아스는 조카인 플라톤에게 정치 참여를 권유했다. 정치적 야심이 없지 않았던 플라톤은 30인 참주 체제를 주시했다. 그러나 그들의 폭악한 공포 정치를 목격한 플라톤은 정치에 대한 환멸감을 느꼈다.


얼마 뒤(기원전 403년) 30인 참주정이 민주정을 요구하는 아테네 안팎의 연합군 공격에 무너졌다. 새로 들어선 민주제 정부는 합리적인 정치를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정치에 대한 플라톤의 의지도 조금씩 강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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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플라톤은 기원전 408년경(20살)에 소크라테스의 제자가 되었다. 그런데 민주정을 주도하는 몇몇 사람들이 소크라테스를 고발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소크라테스에게는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국가의 신들을 믿지 않는다는 죄목이 씌워졌다. 배심 재판에 회부된 소크라테스는 결국 독약을 마시고 죽는 형벌을 받았다. 소크라테스의 나이 70세 때였다.


28살의 순진한 정치 지망생이었던 플라톤에게 스승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커다란 충격이었다. 그는 이집트, 시칠리아로 여행을 떠났다. 시칠리아 시라쿠사에서는 그곳의 참주 디오니시우스 1세와 인연을 맺어 이상 국가 실현을 실천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상적인 통치자에 의한 이상 정치를 실행해 보려던 그의 뜻은 이루어지지 못한다. 훗날 시라쿠사의 새 참주가 된 디오니시우스 2세와 인연을 맺고 이상 국가를 세워보려 하지만 그것 역시 뜻대로 되지 않았다. 결국 플라톤은 아테네로 돌아가 철학에 매진하기로 했다. 기원전 387년, 그는 나이 40살에 고국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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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은 42살 되던 해인 기원전 385년경에 아테네 외곽에 아카데메이아(Academeia)라는 학교를 세웠다. 아카데메이아는 영웅 아카데모스(Academos)를 기리기 위해 조성된 원림(園林)의 이름을 딴 명칭이었는데, 김나시온(gymnasion) 같은 곳이었다. 김나시온은 원래 ‘(웃통을) 벗은 상태로(gymos)’ 신체 단련을 하는 곳을 뜻하는 말이었다. 주로 청소년들의 신체 단련을 위해 도성 외곽의 냇물이 흐르는 곳에 설치한 공공 장소를 가리켰다. 아카데메이아를 그 김나시온 한쪽 옆에 세운 학교로 보기도 한다.


아카데메이아는 비교적 완벽한 교육 체계와 교실을 갖추고 있었다고 한다. 기숙사와 기타 교육 시설을 완비해 후대 서양 고등교육기관의 초기 형태를 제공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플라톤 사후 529년에 로마가 이곳을 폐쇄할 때까지 900년 동안 유지되었다. 기원전 367년, 17살의 아리스토텔레스가 플라톤의 제자로 입문한 것도 이곳을 통해서였다.


* 제목 커버의 배경 사진은 플라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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