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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Mar 25. 2017

“사람의 손으로 쓴 가장 훌륭한 교육론”

교육 소뎐 (10) 국가주의 교육철학의 시원 플라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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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법률>은 플라톤을 대표하는 저작들이다. 두 책 모두 거작(巨作)이다. 한국어로 번역되어 나온 책이 각각 2종이 있는데, 모두 600쪽, 700쪽이 훌쩍 넘는다. 평범한(?) 독자들을 질리게 하기에 충분한 분량이다. ‘고전’과 ‘철학’이라는, 일반 대중이 쉽게 친해지기 힘든 말들과 함께 알려져 있으니 거리감이 더 크게 느껴진다.


‘거작’ 개념을 다른 관점에서 다루어 볼 수 있다. 영국 철학자 화이트헤드는 서양 철학사가 플라톤 철학에 대한 ‘각주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말했다. 플라톤이 서양 철학사에 미친 커다란 영향력을 두고 한 말이지만, 그가 서구의 인문학 역사와 사상사에 남긴 강렬한 족적을 가리키는 말이라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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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그런 플라톤의 철학과 사상을 대표하는 책이다. 플라톤 사상의 정수가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 저작은 서구 역사에서 철학과 정치사상을 비롯해 교육과 문예 등 다방면에 광범위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루소는 <국가>를 가리켜 “사람의 손으로 쓴 가장 훌륭한 교육론’이라고 극찬했다. <서양교육사>로 유명한 윌리엄 보이드는 플라톤이 <국가>에서 개진한 교육론이 “교육이 개인이나 국가에 대하여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에 대한 참으로 대가다운 종합적 견해를 보여 주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국가>는 플라톤의 ‘이상국가론’이다. 30년 가까이 이어진 펠로폰네소스 전쟁과 30인 참주 체제의 잔혹상을 겪은 플라톤에게 ‘이상국가’는 당면한 지상과제였을지 모른다. 평범한 사람들의 운명이 당대 국가 체제의 자장과 부침에 따라 크게 요동쳤다. 그런 불안한 상황이 플라톤에게 여러 가지 정치사회적인 상념들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플라톤이 <국가>를 저술한 시기는 그가 아카데메이아를 세울 무렵인 40대 초반부터 중반 사이쯤으로 추정된다. 아카데메이아라는 학교와 <국가> 사이의 의미심장한 연관관계를 따져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전쟁으로 피폐해진 나라를 구하고 싶은 일념이 <국가>에서의 이상국가 기획과 아카데메이아 설립으로 이어진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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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이 <국가>에서 그려보인 ‘국가’는 이상적인 ‘본보기’로서의 유토피아(utopia)에 가깝다. 플라톤은 이 나라를 ‘아름다운 나라(kallipolis)’로 불렀다. 이들은 고대 그리스에서 실제로 나라 이름을 가리키는 고유명사로 쓰이기도 했다. 그런데 플라톤에게 ‘아름다운 나라’는 실재하지 않는 가상의 국가, 유토피아 같은 곳이다.   

 

그 국가는 아마 본보기로서 하늘에 비치되어 있을 것이네. 누구든지 원하면 그것을 보고, 본 것에 따라 자신 안에 국가를 건설할 수 있도록 말일세. 그 국가가 어디엔가 존재하느냐 또는 존재할 것이냐는 문제 되지 않네. - 플라톤 씀, 천병희 옮김(2013), <국가>, 숲, 537쪽.     


플라톤이 국가의 ‘본보기’로 그린 나라에서는 어떤 남자와 여자도 각자의 남편과 아내를 공유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동거하지 못하는 법을 갖추고 있다. 아이들도 공유하며, 어떤 부모도 자기 자시을 알게 되어 있지 않다. 빼어난 자들의 자식은 특정 지역에 거주하는 전문 양육자들에게 보내지만, 열등한 부모의 자식들이나 불구 상태로 태어난 자식들은 합법적인 영아 유기(apothesis)의 대상이 된다. 또한 나라를 다스리는 통치자들은 사유 재산을 가져서는 안 된다. 이 모두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방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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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를 통해 실재하지 않는 가상의 유토피아 국가를 기획한 플라톤은 <법률>에서 좀 더 현실적인 국가상을 제시한다. <법률>은 플라톤의 최후이자 가장 방대한 대화편이다. <국가> 저술 이후 철학자이자 정치이론가로서 발효시켜 온 국가상을 총 12권에 걸쳐 <법률>에서 상세하게 묘사하였다.


<법률>의 본문을 채워가는 플라톤의 시선과 손길은 국가 발전의 통시태(通時態)와 공시태(共時態), 거시구조와 미시구조를 두루 아우른다. 입법과 권력의 관계나 전제정과 민주정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와 더불어 새 국가 건설의 과정과 절차, 관리 임명, 교육제도, 산업구조, 형벌에 관한 법률, 종교, 재산법과 상거래법, 가족법 등 국가 조직과 운영에 관여하는 요소들을 총망라하여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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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이 <국가>에서 그린 ‘아름다운 나라’는 지혜로운 통치자와 용기 있는 수호자와 절제하는 노동자가 유기적인 위계 서열에 따라 살아가는 국가다. 그 나라는 철학자가 왕이 되거나 왕이 철학자가 됨으로써 이상국가가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군주 ‘개인’에 의존하는 국가다.


그러나 우리는 철학자인 왕이나 왕이 된 철학자를 현실에서 만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 <법률>에서 플라톤은 그와 같은 ‘제로 가능성’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최고 지성들이 모여 입법을 하고 국가를 다스리는 ‘집단’ 통치 체제를 구상하였다. ‘37인 위원회’로 명명되는 법률 수호자 집단이 그것이다. 선출 시 50세를 넘어야 하는 이 위원들은 최소 10년에서 최대 20년까지 관직에 있으면서 법률 수호와 시민들이 신고한 재산 문서 처리와 관리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플라톤이 <법률>에서 구상한 국가는 입법 과정이 집단지성에 따라 펼쳐지고(37인 위원회), 법률이 국가 통치의 최고 원리(법치주의)가 되는 나라였다. 그는 “법률이 치자들의 주인이고 치자들이 법률의 노예인 곳에서는 구원은 물론이고 신들이 국가들에 내려주는 온갖 축복이 보입니다”라고 말했다. 반면 법률이 통치자들에게 종속되는 국가는 무력하고 파멸이 임박해 있다고 보았다.


<법률>이 지향하는 국가는 평등사회다. 분배의 균형, 소유재산 상한과 관련된 법안이 있다. 국가가 해체 위기에 처하지 않도록 일부 시민이 극빈자가 되거나 큰 부자가 되게 가만히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 입법자는 가난이나 부의 한도를 공표해야 한다. 또한 토지의 지가(地價)를 가난의 하한선으로 정한 뒤, 한 사람이 그 지가의 최대 4배까지를 소유하는 것을 허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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