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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은 <국가>와 <법률>에서 민주주의를 그다지 호의적으로 묘사하지 않았다. <국가>에서 민주제는, 가장 가혹하고 가장 야만적인 예속의 가능성을 안고 있는 참주제를 불러오는 정체로 규정되었다. 민주제의 지나친 자유가 참주제 특유의 예속의 필요성을 가져온다는 이유에서였다.
<법률>에서 민주제는 세 번째로 좋은 정체로 규정된다. 최선의 정체는 참주제, 차선의 정체는 입헌군주제다. 통치자들의 수가 가장 많은 과두제가 최선의 국가가 자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가장 어려운 통치 체제로 정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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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은 <국가> 제8권에서 과두제에서 민주제가 나오는 과정을 설명하고, 민주제의 특징을 상술하였다. 민주제 국가는, 부자가 되는 일이 지상 목표인 과두제에 대한 가난한 자들의 반발에서 생겨난다.
민주제를 묘사하는 플라톤의 어조는 시종 냉소적이다. 예를 들어 민주제 특유의 ‘관용’과 관련하여, 플라톤은 시민들이 “누가 국정을 맡으려고 해도 그의 과거 경력에는 아무 관심이 없으며, 대중에게 호감을 느낀다고 말하기만 하면 그 사람을 존중”하는 태도를 꼬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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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은 민주제 국가를 이루는 인간상을 세 유형으로 나누어 설명했다.
첫 번째가 ‘수벌’ 족속이다. “쾌락과 욕구로 가득 차 불필요한 욕구의 지배를 받는 자”들이다. 그들은 과두제 국가에서는 존경을 받거나 관직을 가질 수 없어 강성하지 못하다. 반면 민주제 국가에서는 소수를 제외하고 주로 이들 족속이 지도층을 형성해 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두 번째는 수벌의 ‘밥’이 되는 ‘부자’ 족속이다. 본성상 가장 절제 있는 사람들로서, 그러한 절제의 힘으로 부자가 된 사람들이다. 수벌은 이들 부자가 갖고 있는 꿀(재산)이 가장 많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빼앗는다.
마지막 족속은 민중(demos)이다. 이들은 제 손으로 벌어먹으며 하루하루 살아간다. 국정에 관여하지 않고, 소유하고 있는 재산도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러나 민주제 국가에서 인구의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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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제는, “자유에 대한 만족할 줄 모르는 욕구와 다른 일에 대한 무관심” 때문에 참주제로 이행한다. 플라톤은 과도한 자유 상태를 과장적으로 묘사한다. 피통치자처럼 처신하는 통치자나 통치자처럼 처신하는 피통치자, 자유가 사삿집과 가축들에게까지 스며들면서 생긴 무정부 상태가 그려진다.
아버지는 자식을 닮아 아들들을 무서워하는 데 익숙해지고, 아들은 아버지를 닮아 부모를 어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는 데 익숙해질 것이네. (중략) 교사가 학생들이 무서워 비위를 맞추고, 학생들은 교사들과 가정교사들을 무시할 것이네. 젊은이들은 전반적으로 연장자들을 흉내 내며 말과 행동에서 연장자들과 경쟁할 것이며, 노인들은 성미가 까다롭다든가 독재적이라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고 젊은이들과 동석해서 젊은이들을 흉내 내어 익살을 부리며 재담을 늘어놓을 것이네. (중략) 가축들도 여기서는 다른 곳에서보다 얼마나 더 자유로운지, 실제로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네. 실제로 개들은 속담에도 그런 말이 있듯이 안주인과 같으며, 말과 당나귀들은 아주 자유롭고 당당하게 길을 걷는 버릇이 있어서 길을 비켜주지 않는 사람은 누구든지 들이받는다네. - 플라톤 씀, 천병희 역(2013), <국가>, 숲, 476~4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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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주가 민중들을 배신한 사태에서 민중이 내보이는 심리를 묘사한 대목이 인상적이다. 이론적으로 참주는 민중의 지지와 옹호의 힘으로 집권한다. 그러므로 민중이 ‘아버지’라면 참주는 ‘아들’이다. 조건이 있다. 민중이 과두제 아래서 실권을 잡고 있는 부자들과 귀족들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그러나 많은 참주가 전혀 다른 길을 걷는다. 민주제 인간에게 참주의 배신은 패륜과 다를 바 없다. 민중이 배신자 참주에 직면하여 “자기들이 어떤 괴물을 낳아주고 귀여워해주고 키워주었는지” 한탄할 때는 이미 때가 늦다. 배신한 참주는 ‘친부 살해자’이자 ‘잔혹한 노인 부양자’가 된다.
민주제의 민중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플라톤은 지혜(이성)와 절제의 뒷받침을 받지 않는 형식적 민주성만을 가진 민중들의 폐해를 정확히 지적하였다. 이들 민중이 한곳에 모이기만 하면 막강한 세력을 형성하지만 꿀을 한몫 챙기지 못하면 한곳에 모이려 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각자의 이해관계만을 따라 이합집산하는 민중을 날카롭게 쏘아보는 플라톤의 근엄한 표정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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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공화국을 살아가는 우리 앞에 때 이른 정치의 계절이 펼쳐졌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난데없이 “꿀을 한몫 챙”길 수 있는 뜨거운 시간으로 다가왔을 수 있겠다.
한쪽에서는 ‘장미대선’이니 ‘촛불대선’이니 하는 말들이 요란하다. 거대한 촛불의 힘으로 대통령 탄핵과 구속이라는 전무후무한 정치적 격변의 흐름을 만들어냈으니 ‘명예시민혁명’이라는 표현도 근거 없는 허황된 수사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플라톤이 근엄한 표정으로 훈계한, 고대 그리스 민주제의 민중들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장은주 영산대학교 철학과 교수는 최근작 <시민교육이 희망이다>(2017, 피어나)에서 우리나라가 ‘87년 체제’를 통해 권위주의나 파시즘 체제를 어느 정도 극복했으나 ‘제대로 된 민주주의’라고 할 수 없는 정치적 지배체제를 유지해왔다고 주장했다. 선거를 통한 평화적 정권교체 말고는 시민들의 기본권 보장이나 사회에 대한 민주적 통제 등의 다른 차원에서는 많은 결함을 지닌 지배체제라는 점에서다.
그는 이런 민주주의를 독일 비교정치학자 볼프강 메르켈의 ‘결손 민주주의(defect democracy)’ 개념을 빌려와 설명했다.
이 결손 민주주의의 한 유형은 정부가 의회를 우회할 수 있고 사법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임 민주주의(delegative democracy)’인데, 크로아쌍(A. Croissant)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이 유형의 하나로 본다. 나는 이에 더해 한국의 결손 민주주의가 이명박 정부를 거치며서 정부에 의해 시민의 여러 기본권이 제약되는, 그래서 터키나 러시아처럼 민주주의의 경계를 아예 넘어 더는 민주주의라 부르기 힘들 지경에 가까이 온, “비자유 민주주의(illiberal democracy)”의 특징까지 지니게 되었다고 여기는 편이다. - 장은주(2017), <시민교육이 희망이다>, 피어나, 27~28쪽.
‘박근혜-최순실 합작정부’의 ‘국정농단’이 작금에 드러나고 있는 적폐와 거악의 유일하면서 가장 중대한 뿌리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그렇지 않다.
나는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이루어진 통합진보당(통진당) 해산 사태와 전교조 법외노조화, 국정 교과서 사태 등 일련의 ‘사건’들이 한국식 결손 민주주의가 낳은 비정상적이고 비자유적인 민주주의의 극명한 사례라고 본다.
박근혜를 탄핵한 헌법재판소의 주역 대다수가 합법정당이었던 통진당을 ‘이념 시비’로 몰아붙여 해산시켰다. 1999년 합법화 이후 15년간 ‘법내노조’ 위상을 유지해왔던 전교조를, 이 나라 사법부는 행정부의 집요한 ‘공작’에 따라 ‘법외노조’로 만들었다.
급기야 국정농단의 중요한 ‘배후지원세력’인 집권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된 홍준표 전 경남지사는 “민주노총과 전교조를 반드시 응징하겠다”라며 칼을 벼르고 있다. 우리 사회 적폐와 거악의 뿌리는 여전히 천지사방 깊은 곳에 어지럽게 뻗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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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은 민중의 ‘아들’인 참주가 독재적인 통치를 펼치면서 그 ‘아버지’인 민중을 핍박하는 상황을 두고 “자유민들에 대한 예속이라는 연기를 피하려다가 노예들에 의한 전제(專制)라는 불구덩이에 빠진 꼴이 되었네그려. 저 지나치고 때 이른 자유라는 옷 대신 가장 가혹하고 가장 쓰라린, 노예들에 의한 예속이라는 옷으로 갈아입고서 말일세”라고 말했다.
우리가 뽑는 대통령이 어떤 통치자가 되느냐는 우리가 뽑는 대통령이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 달려 있다. 지혜와 절제의 힘을 믿고, 한국식 결손 민주주의의 수렁을 잘 알고 있는 이를 선택하면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로 향할 수 있다. 스스로 ‘선구자’나 ‘메시아’를 자처하며, 대중을 현혹하는 화려한 언변을 자랑하는 이를 고르면 우리가 한 달 후 만날 대통령은 ‘친부 살해자’나 ‘잔혹한 노인 부양자’의 길을 걸을 것이다.
선택의 시간이 한 달 남았다.
* 제목 커버의 배경 사진은 무료 이미지 제공 사이트 pixabay.com에서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