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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Apr 08. 2017

‘기초학력 미달’이 교육적 ‘병증’ 상태인가

너희가 10대를 아느냐 (52)

1     


2011년 학교성과급 제도를 시작할 때 교육부가 내세운 평가 지표 중 하나로 ‘일제고사 향상도’가 있었다. 공식적인 표현이 ‘기초학력 미달자 비율’이었을 것이라고 기억한다.


학교와 교사마다 난리가 났다. ‘돈’이 아니더라도 학교별 순위나 평가를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곳이 학교다. 초등학생들을 방과후에 교실에 남게 한 뒤 문제 풀이 수업을 시키고, 야자를 강행하는 곳이 생겨났다.     


2     


‘기본’이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조직이나 공동체 유지를 위한 논리의 하나로 두루 통용되는 말처럼 보여서다.


정의 주체와 개념 문제가 있다. 기본의 화용론은 대체로 지배하는 권력자와 지배받는 피권력자가 발화자와 수화자의 관계를 형성하는 구도 속에서 형성된다. 그 개념 역시 권력자의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정의된다. 피권력자는 일방적으로 대상화한다.


기본이라는 말만큼이나 떨떠름하게 다가오는 게 ‘기초’다. 이유가 비슷하다. 기초학력은 누가 정의하는가. 기초학력을 구성하는 구체적인 지식과 정보는 누구의 시선에 따라 규정되는가. 서근원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제시하는 지식의 절대성을 믿고, 그 지식에 의존하여 타자들보다 우위에 서려고 하게 된다. 그로 인해서 학생들은 학교의 학습을 통해서 주변의 타자들과 더욱 유리되고 고립되어 간다. 즉 학생들은 학교에서 학습하면 할수록 주변의 타자들로부터 소외되는 것이다. - 서근원(2012), <학교 혁신의 패러독스: 교민(敎民)에서 회인(誨人)으로>, 강현출판사, 35쪽.   

  

3     


학생들은 누군가 규정해 놓은 지식을 무의미하게 배운다. 학생들 스스로를 소외시키는 학습이, 학교 성과 평가 기제와 맞물리면서 거부하기 힘든 필수 과업이 된다. 기초학력 미달 학생은 마치 ‘공공의 적’, 또는 기초학력 미달이라는 ‘병증’에서 벗어날 수 있게 ‘치료’(기초학력 보충 수업)를 받아야 하는 ‘환자’ 같은 취급을 받는다.


기초학력은 중요하다. 문제는 일정한 조건(정해진 한도 연간, 도달해야 하는 목표 수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어떤 시선으로 볼 것인가, 그들이 기초학력 미달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려면 어떤 방식을 써야 할 것인가다.


4


학교와 교사는 학생의 기초학력 미달 원인을 학생 자신에게서 찾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학생이 기초학력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그가 기초학력을 가르치는 교과과정을 충실하게 이수하지 못했거나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는 학교와 교사의 가르침에 제대로 따르지 않았다.


이때 학생은 게으르고 불성실한 ‘문제아’ 같은 취급을 받는다. 학교와 교사의 권위에 저항하는, 잠재적인 불순분자나 ‘꼴통’ 학생처럼 간주된다.


학생은 그런 학교와 교사의 시선에 저항한다. 기초학력 미달 사태를 벗어나기 위한 기계적인 ‘훈련’처럼 둔갑해 버린 학습을 거부한다. 학교와 교사는 권위가 동반하는 강압과 회유와 설득으로 학생을 통제하려 한다. 학생은 더 크게 튀어오른다. 악순환이다.     


5  


학교는 필연적으로 학생들을 ‘구별’한다. 기초학력 개념은 구별을 위한 최초의 중대한 장치 기능을 한다.


가령 한글을 완벽하게 깨우치지 못한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을 기초학력 미달자로 규정할 수 있는 권리는 누가 누구에게 주는가. ‘말하는 이(화자)’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중학교 2학년 학생이 기초학력 미달자인 이유를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는 국어 교사는 몇이나 까.


그러나 학교와 교사는 이들 질문에 대한 답을 별로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교육과정이 정해 놓은 일정한 기준선에 따라 학생들을 구별하는 일에서 그들의 주요 임무를 찾는다.


학교에서 기초학력 미달 학생을 ‘선별’하여 교육하는 과정을 보면 씁쓸함을 금할 수 없다. 최근 여러 학교에서 ‘학습더딤아’라는 이름으로 집중적인 관리 대상이 되고 있는 기초학력 미달 학생들은 ‘일제고사’ 형태로 치러진 ‘학력진단평가’ 결과 일정 점수 이하 구간에 있는 학생들일 뿐이다.

왜 그 점수여야 하는지, 기준 점수 아래 구간 학생들이 무엇에 비추어 ‘학습이 더딘’ 상태인지 누구도 명쾌하게 설명하지 않는다/못한다. 학교와 교사는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6   


기초학력 관련 프로그램에는 상당한 예산이 들어간다. 별도의 인력과 시간과 공간을 필요로 할 때가 많다. 학교나 교사 입장에서 볼 때, ‘우리는 한 명의 학생도 포기하지 않는다’며 생색을 내기에도 좋다. 많은 학교에서 ‘우등생’ 중심의 ‘특별심화교육’과 함께 기초학력 교육프로그램을 중점 사업으로 지정해 학교 홍보에 즐겨 활용하는 이유일 것이다.


나는 기초학력 미달 학생들의 ‘미달’ 상태가 일반 수업 시간을 통해 해소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사의 상대적으로 집중적인 지도와, 동료 학우와 어우러진 협력적인 수업 들이 구체적인 방식이 될 수 있다. 학급 규모의 적정화, 교과내용의 조정, 교육과정의 유연화 같은 거시적인 시스템의 개선이 함께해야 함은 물론이다.


* 제목 커버의 배경 사진은 무료 이미지 제공 사이트 pixabay.com에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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