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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May 20. 2017

‘문템’과 ‘우리 이니’의 정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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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템’은 ‘문재인 아이템’의 줄임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입었던 등산복과 양복, 끼고 신은 안경과 구두 들을 통칭한다. ‘이니’는 문 대통령의 애칭이다. 이름 마지막 글자 ‘인’에 조사 ‘-이’를 붙인 뒤 연음 표기했다. ‘#우리_이니_하고_싶은_거_다_해’라는 해시태그가 에스엔에스에 유행처럼 번졌다.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 문재인에 대한 기대감과 지지의 마음이 이 말들에 오롯이 담겨 있다. 이 말들이 마뜩찮다.  

   

2     


수많은 이들이 지난 해 늦가을부터 시작해 근 반 년간 촛불을 태웠다. 전국 방방곡곡의 광장에서 주권자 국민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넘쳐났다. 마침내 이전 네 정부를 ‘반면교사’로 삼겠다고 다짐하는, 단단히 준비된 새 대통령을 만들어 냈다. 사람들은 텔레비전과 스마트폰을 통해 대통령의 동선을 따라가며 연일 탄성을 지르고 있다. 진심 어린 말 한 마디와 공감하는 표정을 듣고 보면서 눈물을 흘린다.     


그럴 수 있다. 전무후무한 ‘적폐 대통령’ 박근혜를 내쫓았다. 100만 명 이상이 참여한 초대형 시위가 몇 번이나 이뤄졌으나 어떤 유혈 폭력 사태도 일어나지 않았다. 우정과 연대의 마음을 깊이 간직한 사람들은 광장으로 가는 ‘발걸음’과 ‘언어’만으로 각자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고 실천했다. 자부심과 벅찬 감동이 가슴에 넘쳐났다. 분명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에 환호하는 일이 우리의 ‘자유’이자 ‘권리’가 되어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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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다. 이제 우리는 가만히 지켜보면 되는가. ‘문템 득템’에 기뻐하고, ‘우리 이니’를 외치면서 그가 하는 일에 환호하며 절대적인 지지만 보내면 되는가. 나는 문 대통령을 지지했고, 그가 이끄는 이번 ‘제3기 민주정부’가 반드시 성공하기를 바란다. 기대하고 바라는 것이 정말 많다. 그러나 그 모든 기대와 바람이 충족되거나 실현되지 않는다고 해서 크게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41.1퍼센트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58퍼센트는 그를 찍지 않았다! 그는 국회 의석 300석 중 절반이 채 되지 않는 소수 여당 소속이다. 엽기적인 적폐의 몸통 박근혜가 구치소에 들어가 있으나, 그가 속했던 정당의 대통령 후보로 나온 홍준표 전 경남지사가 800만 표 가까운 표(785만 표, 24퍼센트)를 획득했다. 문재인 정부가 조심하고 두려워해야 ‘현실’이다.     


어느 것 하나 호락호락하지 않다. 보수 언론, 특히 적폐 언론의 대명사 종편들이 ‘문비어천가’를 불러댄다고 한다. 어느 외신은 이를, ‘허니문’ 기간이어서가 아니라 문재인 정부가 워낙 정치를 탁월하게 하고 있는 데서 찾고 있는 듯하다.      


그렇게 분석할 수 있겠다. 자문해 본다. 그들이 문재인 정부의 정치를 계속 우호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그들은 문 대통령이 임명한 ‘전사’들이 일을 본격화하는 순간 하이에나처럼 달려들 것이다. 조그만 실수를 꼬뚜리 삼아 적폐 청산과 혁신 작업에 흠집을 내고, 국민들의 시선을 엉뚱한 곳으로 돌리려 할 것이다.      


지지율 바닥을 찍고 있는 보수 야당들이 전열을 정비해 반격을 가해오는 것도 두렵다. 벌써 그런 조짐이 일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첫 협치 시험대로 평가받는 공공 부문 일자리 추경 요청에 대해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 등 주요 야당은 일저게 거부 의사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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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수영의 <만시지탄은 있지만>을 소개하고 싶다. 1960년 7월 3일 자로 쓰인 작품이다. 4.19 혁명의 뜨거운 기운이 시나브로 식어가고 있을 즈음이었다. 나는 이 작품이 ‘일상의 혁명론’을 통해 혁명 정신을 살려내 보고 싶어하는 김수영의 마음을 담고 있다고 해석하고 싶다.    

 

이 시 제1연 제1행에는 프랑스 철학자 장 자크 루소의 <민약론(民約論)>이 등장한다(“루소의 <민약론(民約論)>을 다 정독하여도”). 7월 4일 자 일기에는 예의 <민약론> 제3편 제4장 ‘민주정치’가 길게 인용되어 있다. 딱딱한 정치 논설이지만 이즈음 우리 자신을 찬찬히 돌아보게 하는, 새겨 볼 만한 화두거리가 적지 않다.

    

이러한 민주정치 혹은 인민정치의 정부만큼, 내란이나 국내의 선동에 움직여지기 쉬운 정부는 없다는 것도 함께 말해 두기로 한다. 왜냐하면 이 정체(政體)만큼, 정치의 변경에 대해서 강하고 또 부단히 응하기 쉬운 정체는 없으며 또한 이 정체만큼, 정체 유지에 열심과 용기가 필요한 정체도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런 정체 밑에서는 각 공민(公民)은 강한 실력과 확고한 정신으로 무장하고, 저 유덕(有德)한 파테에노 백작이 폴란드 의회에서 한 말, “우리들은 평온한 노예보다도 위험한 자유를 택한다.”를 매일, 그의 배 밑으로부터 외우지 않으면 아니 된다. 만약에 신(神)들의 국민이 있다면, 그것은 민주적으로 다스려질 것이다. 그다지 완전한 정부는 인간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것이다. - ≪김수영 전집 2(산문)≫(민음사) 496쪽에서 인용함.     


서로 다른 시공에서 살았던 파테에노 백작과 루소와 김수영이 하나로 이어지는 ‘엉뚱한’ 계보가 우리에게 공통적으로 말해주는 것이 무엇일까. ‘평온한 노예’가 아니라 ‘위험한 자유’다. 그러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매일같이 민주주의를 공부하고 실천해야 한다. 더 많은 것을 더 정확히 알고, 더 많은 일을 더 철저하게 해야 한다.    

 

김수영이 시의 제2연과 제3연 첫머리를 데카르트(1590~1650)의 <방법통설>과 베이컨(1561~1626)의 <신논리학>으로 시작한 까닭도 여기에 있었을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그 유명한 명제가 탄생한 책이 <방법통설>이었다.      


<신논리학>은, “아는 것이 힘”임을 강조한 베이컨이 종족(인간중심주의)과 동굴(우물 안 개구리 식의 태도)과 시장(말의 문제)과 극장(헛된 명예의 유혹)의 우상을 경계하면서 귀납 추리의 바탕이 되는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한 책이다. 이들 모두 진정한 앎을 향한 꾸준한 노력과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나는 불완전하고 허약한 민주 정부가, 그렇게 끊임없이 앎을 위해 공부하고 실천하면서 ‘실력’을 갖춰 나가는 공민들의 힘을 통해 점점 더 완전해진다고 믿고 싶다. ‘강한 실력과 확고한 정신으로 무장’한 공민들이 넘쳐날 때 민주 정부가 명백을 유지할 수 있다! 김수영이 시 <만시지탄은 있지만>과 루소의 <민약론> 들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이런 게 아니었을까.     


5     


홀로 씁쓸하게 읊조렸을 ‘만시지탄’이 김수영 혼자만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비단 4.19 혁명 이후 국민들의 과도한 기대와 바람이 풍선처럼 부풀어올랐을 게 분명한 폭발적인 분위기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고 싶지 않다.

     

그보다 당대의 수많은 ‘김수영들’이 ‘만시지탄’에 빠진 것은 다름 아닌 그 자신들, ‘위험한 자유’가 아니라 ‘평온한 노예’가 되기로 작정한 자신들의 어리석음과 불성실함에 기인한 것이 아니었을까.     


지난 며칠간 <한겨레>와 <오마이뉴스> 등 일부 진보 언론과, 열성적인 문재인 지지자 사이에서 벌어진 일련의 공방을 안타깝게 지켜보았다. ‘문템’과 ‘우리 이니’라는 말들을 통해 대통령을 인기 연예인이나 아이돌처럼 ‘소비’하게 만드는 듯한 작금의 과열된 분위기도 솔직히 조금 마뜩잖다.     


나는 문 대통령과 그가 이끄는 이 정부를 지키고 싶다. 그들은 그럴 만한 철학과 가치를 갖추었다. 그리고 단언컨대 그들은 진정 국민을 위해 앞으로 우리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일을 더 뛰어난 역량을 발휘해 강력하게 추진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앞길은 너무나 멀고 험난하다. 41.1퍼센트로 시작한 문재인 정부에게 그 41.1퍼센트를 훌쩍 뛰어넘는 든든한 뒷배가 필요한 이유다. 끝없이 공부하고 성찰하며 실천하는, ‘평온한 노예’가 아니라 ‘위험한 자유’를 갈구하는 모든 민주주의 시민들이 그 주인공이어야 한다.



* 제목 커버의 배경 사진은 지난 5월 18일 국립 5.18 민주 묘지에서 거행된 제37주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찍은 것이다. 티브이 생중계 장면을 캡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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