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바림 (14)
1
만귀잠잠하다. 이른 저녁부터 울기 시작한 소쩍새만 여지껏 짝을 부르고 있다. 아이들은 일찌감치 잠들었다. 녀석들에게는 힘든 하루였을 것이다.
오후 한 나절 도시 외곽에 자리잡은 산자락을 걸었다. 야트막한 산이지만 꽤 넓은 호수를 가운데 끼고 있어 둘레길이 10여 킬로미터를 훌쩍 넘는다. 초등 6학년생 큰딸이 온갖 짜증을 냈다. 7살 막둥이가 업어달라는 말을 한 마디도 꺼내지 않은 게 놀랍고 대견했다.
2
일요일인데도 산길이 비교적 호젓했다. 사람 줄어든 자리에 봄바람과 햇살이 수런거렸다. 오솔길 바닥마다 우수수 떨어진 아카시아 꽃잎이 하얀 눈처럼 쌓여 있었다. 그곳에서 고개를 들어 올려다 보면 더 많은 아카시아 꽃들이 눈부시게 하늘거렸다.
누렇게 변해가는 아카시아 꽃은 마른 개비릿내가 더 강하게 났다. 이제 향긋하게 코를 하비는 것은 때죽나무의 하얀 꽃잎이었다. 얇다란 가지에 조롱조롱 매달린 모양이 영락없는 은방울 형상이었다.
3
산이 좋다. 숲길 걷는 것을 좋아한다. 산길을 타고 시나브로 걷다 보면 바람 소리와 나무 향기와 꽃 내음새가 모든 것을 잊게 한다. 문득 겸허의 시간이 찾아와 바드럽게 살아가는 나를 내려놓게 만든다.
사지곡직부터 가리는 성격이다. 달리 표현하면 ‘이념형’이다. 행동보다 생각과 말이 앞선다. 효율성이니 경제주의니 하는 말을 병적으로 싫어한다. 게으르고, 제멋대로이며, 남이 아니라 나부터 생각하는 괴팍한 성정을 가리기 위한 얄팍한 술수다.
산행은 그런 나를 돌아보게 한다.
4
지난 겨울 산 뒤 조금 읽다가 한동안 밀쳐두었던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꺼냈다. ‘솔론전’을 펼쳤다.
솔론(기원전 640년경~기원전 560년경)은 민주주의와,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서양 철학의 시원격에 해당하는 그리스 원형을 만든 주역 중 하나다. 역사는 그를 고대 그리스의 일곱 현인 중 한 명으로 서술한다.
솔론은 시를 써서 자신의 정책을 알리곤 했다고 한다. 현재까지 270행 정도가 남아 있다. ‘솔론전’ 들머리에 실린 머리말 같은 글에 그 시행 중 하나가 인용되어 있다. 산행 중 못 다 돌아본 나를 경계하는 한 마디로 이곳에 새겨둔다.
“나는 늙어가면서도 언제나 많은 것을 배운다.”
5
행동과 실천이 중요하다. 그런데 모든 행함은 올바른 앎 위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고백하건대 나는 내가 학교 안팎에서 펼치는 조그마한 행동과 실천들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확신하지 못한다. 어찌 보면 행하기는 쉬우나 제대로 아는 것은 어렵다. 이른바 ‘행이지난(行易知難)’이다.
제대로 배우지 못하면 올바른 행동이 나오지 못한다. 올바른 배움이 중요하다. 그렇게 올바르게 배우며 늙어가는 삶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