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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May 20. 2017

‘문빠’와 ‘한경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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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쯤이었을까. 인터넷을 둘러보다 ‘한경오’라는 말을 처음 접했다. 언론에 관한 글 속에 등장했는데, 무슨 말인지 감을 잡기 힘들었다. 검색해 보았다. <한겨레>와 <경향신문>과 <오마이뉴스>를 합쳐 부르는 말이라는 걸 알았다.     


조금 놀랐다. 보수적인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를 합쳐 줄인 말 ‘조중동’에 대응하는 진보판 버전인가. ‘시민’의 이름으로 태어나고 유지되고 있는 <한겨레>나 <오마이뉴스>가 어찌하여 부정적인 ‘낙인’과 ‘프레임’의 대상이 되어버렸나. 그리고 요즈음 그들을 그렇게 부른다는 이른바 ‘문빠’들은 어떤 존재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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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반 ‘준노사모’처럼 지냈다. 2002년 제16대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에게 표를 주었다. 노무현 후보를 믿지 못하던 완고한 아버지를 끝까지 설득해 표를 찍게 했다. 노 대통령이 당선되던 날 잠을 이루지 못했다.    

 

참여정부 출범 후 그들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네이스 사태, 정부의 이라크 파병, 한나라당과의 대연정 제안 등 무리한 일들이 단속적으로 일어났다. 화가 많이 났지만, 한편으로 안타까움이 더 컸다.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가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임기 말 최악의 지지율을 찍으며 봉하 마을로 내려갔다. 그 쓸쓸한 뒷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나는 앞날이 두려웠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던 2008년, 난데없이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고전과 인문학과 일반 교양 책을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다.      


좌절과 절망의 시기를 넘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었다. 그러나 힘든 나날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 학교 전교조 분회에서 조합원 선생님들이 뭉텅뭉텅 빠져나갔다. 참여정부 시기 대비 조합원 수가 거의 반 토막이 되기까지 5년도 채 걸리지 않았던 듯하다. 2009 봄엔가는 하루에 조합원 선생님 두 분이 탈퇴한 적도 있었다.     

 

나는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속으로 ‘이게 마지막이야. 진짜 바닥이야’를 외치곤 했다. 2012년 12월 19일, ‘독재자의 딸’ 박근혜 후보가 제18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날 나는 ‘최악’에 대한 상상을 접었다.      


이명박과 박근혜를 연이어 만나는 일은 고통 자체였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왜 이렇게 되었을까. 나는 그 일련의 ‘사태’의 출발점에 ‘노무현’이라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명박근혜를 당선시킨 일등공신이 참여정부의 실기와 실책 때문이라고 보았다. 한때 ‘준노사모’였던 내 머릿속에서 노 대통령은 시나브로 사라져갔다.   

  

3     


재작년 6월 초였다. 이른바 ‘B급 좌파’로 불리는 대표적인 ‘진보 논객’ 김규항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아래 호칭 생략) 이 <경향신문>의 ‘혁명은 안단체로’라는 기명칼럼 꼭지에 ‘사랑의 결핍’이라는 제목의 글을 실은 것을 보았다. 아주 독특한 글이었다.     


김규항은 ‘빠’를 열렬한 지지자와 구별되는, 사랑이 결핍되어 치료가 필요한 환자로 정의했다. ‘노빠’는 “인간 노무현과 대통령 노무현을 나누어 보길 거부하는, 대통령 노무현의 공과에 대한 어떤 비판과 토론도 거부한 채 무작정 ‘노짱’을 추앙하고 ‘그런 대통령 또 없다’ 말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는 ‘노빠’가 ‘박빠’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기까지 했다. 납득하기 어려웠다. 화도 났다. 노 대통령은 이미 내 머리에서 사라지고 희미하게 흔적만 남아 있었다. 그런데도 ‘노빠’를 멋대로 전제하고, 그들을 ‘박빠’에까지 빗대고 있는 김규항의 논리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문득, 노 대통령이 가슴속 한켠에 여전히 꿈틀거리며 살아 있음을 느꼈다.      


나는 숨을 헐떡거리며 긴 글을 썼다. 이 말을 꼭 하고 싶었다.

    

“노빠라는 말이 생기기 전에는 노빠가 없었다. 노무현 지지자만 있었다. 노 전 대통령에 적대적이거나 비판적인 이들이 나타났다. 노빠의 소유주다. 그들이 노빠라고 말하자 노빠가 생겨났다.”

    

언어는 존재의 창조자다. 태초에 신이 세상을 만들고자 했을 때 그에게 필요했던 것은 언어뿐이었다. “빛이 있으라”라고 ‘말’을 하자 빛이 만들어졌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라고 말했다. 언어는 존재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유지시키는 근거가 된다.     


유명한 ‘프레임(frame)론’을 주창한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이 언어를 만들고, 언어는 우리가 사고하는 방식을 형성한다고 말했다. 사고가 언어를 만들어내고, 언어가 사고를 형성한다. 말이 없으면 사고가 없고, 사고가 없으면 언어가 없다.     


4     


‘문빠’라는 말을 쓰자 ‘문빠’가 생겨났다. 문재인 대통령을 기준으로 누군가들이 ‘문빠’라는 말을 쓰자 그 반대편에 ‘반문빠’로 불리는 거대한 진영이 만들어졌다. 얄궂게도 ‘문빠’들과 2퍼센트 차이밖에 없는 것으로 보이는 ‘한경오’들이 그 반대 진영의 대오에 끼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요며칠간 ‘한경오’와 ‘문빠’의 다툼이 점입가경이었다. 일련의 추이를 지켜보는 심정이 씁쓸했다. 노 대통령을 열렬히 지지했다. 문 대통령이 이끄는 ‘제3기 민주정부’가 반드시 성공하기를 바란다. 동시에 <한겨레>와 <경향신문>과 <오마이뉴스>가 나름의 위상과 기조를 잃지 않았으면 한다. 그들이 대표적인 ‘기울어진 운동장’ 분야인 언론에서 더 큰 비중을 차지했으면 좋겠다.

     

‘노빠’가 그런 것처럼 ‘한경오’와 ‘문빠’ 역시 낙인의 언어다. 부정의 프레임을 덧씌워 그들 각자를 왜곡된 언어적 이미지의 피해자로 만든다. 양식과 지성을 가진 이들이라면 쓰지 말아야 할 언어들이다.  

   

박근혜를 싫어할뿐더러 혐오하지만 ‘닭근혜’니 뭐니 하면서 조롱하고 싶지 않다. 그런 냉소적인 풍자의 대상이 되기에 그는 정녕 너무나도 형편없다. 그렇게 부르는 내 입이 ‘저렴’해지는 것이 두렵다. ‘한경오’와 ‘문빠’를 쓰는 것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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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2주차에 들어선 문 대통령이 ‘성공’하기를 바란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오늘 청와대 오찬 후 페이스북에 올린 한 글에서 “저는 앞선 두 정부만이 아니라 그 앞의 두 정부까지도 반면교사로 삼을 것입니다”라는 문 대통령의 말을 인용했다. 성공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는 든든한 말로 들렸다.    

 

‘한경오’니 ‘문빠’니 하면서 저주와 증오의 말들을 주고받는 이들이 있다. 그 열정과 열기의 방향을 일상과 일터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데 힘을 쓰는 쪽으로 돌리면 어떨까. 대통령과 정부만 바라보며 일희일비하기에는 숨어 있는 적폐 세력과 그 잔존의 문화들이 너무나도 많다. 대통령과 정부의 힘만으로 그들을 대적하기는 힘들다.    
 

문 대통령과, 그가 임명하는 인사들을 ‘영웅’처럼 말하는 이들이 있다. 그래서는 안 된다고 본다. 브레히트는 영웅이 필요한 나라가 불행하다고 했다. 민주주의는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평범한 시민들이 이끌어간다. 작년 ‘한경오’와 ‘문빠’가 함께 들었던 촛불이 그 극명한 증거 아닌가.     


* 제목 커버의 배경 사진은 'News1'(http://v.media.daum.net/v/20170508212802566)에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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