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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May 19. 2017

초등 교직사회의 ‘배구 신드롬’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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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교직사회에는 ‘배구 문화’가 있다. 중립적으로 보면 그들 특유의 사회 문화적 ‘현상’이라 할 만하다. 긍정적인 시선과 비판적인 시선이 공존한다. 한쪽에서는 배구라는 운동 경기를 매개로 교사들 간 친목을 도모하고 공동체 정신을 함양할 수 있다고 말한다. 다른 쪽에서는 배구 실력(?)에 따라 교사들을 줄 세우고, 교사 각자의 교육력을 재단하는 비교육적인 처사가 횡행한다고 말한다. 

    

나는 초등 교직사회의 독특한 배구 문화가 특정 교원단체가 주관하는 배구 대회를 배경으로 태동한 것으로 알고 있다. 여러 잡음 속에서도 나름의 ‘역사적’ 맥락을 배경으로 관행적 습속처럼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까닭이다.     


이 단체는 5월 스승의 날에 즈음하여 관내 초등학교 배구팀의 신청을 받아 경기를 진행한다. 들리는 바에 따르면 경기 결과에 따라 특정 학교장의 리더십이나 특정 학교 교사진의 우수성 들이 비교‧판별되고 있는 듯하다. 교사 각자의 교육력이 본연의 교육 활동을 통해 평가 받아야 한다는 ‘상식’을 고려할 때 납득하기 힘든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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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페이스북에서 초등 교직사회 내 배구 문화의 비(반?)교육적인 측면을 공론화한 경북 구미 도량초등학교 이성우 선생님은 한 글에서 ‘배구 신드롬’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남교사가 배구를 못하면 존재감이 망가지는 게 대한민국 초등 교직사회의 현주소”라고 일갈했다. 사안의 심각성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배구 신드롬’이 전국적으로 일률적인 모습을 띠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이 선생님 학교가 있는 경북 지역에서는 배구 대회 행사가 여전히 ‘성대하게’ 치러지고 있는 모양이다. 얼마 전 출장 자리에서 초등 교사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전북 지역의 ‘배구 신드롬’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물었다. 그는 별로 심각하지 않다고 대답했다. 

    

‘심각’ 수준이 아니니 안심해도 될까. 성대한 규모까지는 아니어도 비교육적인 배구 문화가 전북 지역에 여전히 잔존해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 지난 주였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군산초‧중등지회와 군산교육지원청 간 정책협의회가 있었다. 초등지회에서 배구 대회와 관련된 문제제기를 했다. 근무시간 중 출장 처리를 한 뒤 예의 배구 대회에 참석하는 사례가 있으니 관리 감독을 더 엄격히 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초등학교 교사들은 지역 소재 교육대학 선후배로 묶여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일반적으로 초등학교장은 중등학교장에 비해 학교 내 위상이나 권한이 훨씬 크고 강력하다. 배구팀 편성이나 운용(연습, 경기 참가 등)이 ‘자율적으로’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평교사(특히 남교사)들이 이를 모른 체하기 쉽지 않은 구조 속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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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예의 정책협의회에서 초등 배구 문화의 비교육적인 측면을 강조했다. 참석자들 모두 사안의 심각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지원청에서는 현장 실태 조사와 협조 공문 등의 수단을 동원해 관리 감독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오늘 공문처리 시스템에서 그 ‘결과’를 확인했다. 지원청의 ‘의지가 느껴졌다.     


초등 교직사회의 ‘배구 신드롬’은 일종의 ‘문화’라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데 관련 당사자들의 교육자적인 양식이나 지성, 자율적 판단 등에만 맡겨놓고 말기에는 한계가 있다. 시스템 차원에서 문제를 지적하고 견제하는 조치가 뒤따라야 하는 이유다. 그것이 전체적으로 보아 현 시점에서 ‘적폐’의 냄새가 짙은 ‘배구 신드롬’을 일소할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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