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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May 27. 2017

‘503번’ 박근혜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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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서울에 간다. 해마다 이맘때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생일잔치’처럼 열리는 전국교사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정식 대회명이 ‘전교조 결성 28주년 기념 노동기본권-정치기본권 쟁취! 성과급 폐지! 7.27 전국교사결의대회’다.   

  

전교조 교사로 18년째 살아오고 있다. 우리는 늘 ‘결의’를 다질 것을 요구받는다. 솔직히 지겹지만 어쩔 수 없다. 전교조는 이명박근혜 정권 10년을 지나면서 고사작전의 최대 피해 대상이었다. 2000년대 중후반 대비 조합원 수가 30퍼센트나 떨어져나갔다.   

 

정권이 바뀌었다지만 새 돌파구를 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우리는 어떤 뜻을 정해 굳게 마음을 정해야 하나. 나는 전교조 본부와 도 지부에서 내려보낸 대회 홍보용 포스터를 보았다. 모두 6개의 결의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법외노조 철회’가 첫 자리에 있었다.    


2    


전교조는 1989년 5월 28일 출범했다. 28살 ‘청년’이다. 기운이 펄펄 날 법한데, 움직임이 시원찮다. 이명박 정권이 씨를 뿌리고(2010년 전교조 내부규약 시정 명령), 박근혜 정권에서 열매를 거둔(2013년 전교조 ‘법상 노조 아님’ 통보, 곧 전교조 법외노조화) 비열한 공작정치의 결과였다.

   

지금 전교조는 ‘법외노조’ 상태에 있다. 2013년 박근혜 정권의 고용노동부가 팩스로 ‘법상 노조 아님’ 통보를 했다. 해직교원의 조합원 자격을 인정한다는 전교조 내부규약의 조합원 자격 규정이 <교원노조법> 제2조에 어긋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후 전교조는 정부와 사법부를 상대로 뜨거운 공방을 벌였다. 지난 3년간 서울행정법원과 서울고등법원과 헌법재판소를 두루 거치면서 법내노조(4번)와 법외노조(3번) 사이를 널뛰듯 어지럽게 오갔다.     


전교조 법외노조 문제는 현재 대법원 계류 중이다. 대법원이 언제 최종 판결을 내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 아닌데도 2016년 1월 이후 지금까지 지지부진하게 끌어안고만 있다. 그 사이 전교조 전임자 34명이 해직되었다.     


3    


전교조와 진보교육감 사이를 이간질하고, 전교조 내부 구성원들 사이를 분열시키려고 했던 박근혜 정권의 치밀한 작업 결과였다. 전교조를 ‘종북세력’으로 규정한 박근혜 정권에게 전교조 법외노조화는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다.     


내가 보기에 서로 ‘2퍼센트’ 차이밖에 나 보이지 않는 전교조와 여러 진보 교육감들 사이가 서먹해졌다. 전교조 법외노조화를 초래한 책임을, 현 집행부를 포함한 전교조 주류에게 돌리면서 새 노조(서울교원노조)를 만든 조합원들이 일부 떨어져 나갔다.    


적어도 현 시점까지의 상황을 놓고 보면 구치소에 있으면서 올림머리를 한 채 재판을 받으러 다닌다는, 세계 역사상 전무후무한 통치자 ‘503번’의 승리처럼 보인다. 문제는 예의 503번이 적폐와 비정상의 원흉이라는 점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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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부터 정리하자. 목하 언론과 인터넷에서 ‘전교조 재합법화’라는 말을 쓴다.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산하 국민의나라위원회와 당 싱크탱크 민주연구원 공동 작성 문건인 ‘신정부의 국정 환경과 국정 운영 방향’의 ‘촛불 개혁 10대 과제’ 중 두 번째가 ‘교원노조 재합법화 선언’이다.   

 

눈치 빠른 <중앙일보>가 이 용어의 강력한 ‘휘발성’을 눈치챘다. ‘교원노조 재합법화’ 관련 기사를 재빠르게 내고 따로 ‘시민조사’를 벌였다. “전교조 합법화에 찬성하는가, 반대하는가.”    


<중앙일보>의 시민조사 인터넷 홈페이지에 가보았다. 전교조 ‘안티팬’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어 ‘재합법화’ 반대 버튼을 서슬퍼렇게 눌러대고 있었다. 한때 90퍼센트대까지 이른 찬성 의견이 지난 며칠 사이 반대 의견에 추월당해 47퍼센트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합법화’는 현재의 ‘불법’ 상태를 전제로 한다. 전교조는 ‘불법노조’가 아니다. ‘법외노조’다. 사용자 측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몇몇 지원과 혜택(?)이 취소된 것일 뿐이다. 법외노조이지만 법률상으로 노조 실체를 엄연히 인정받고 있다. 언필칭 ‘헌법노조’다. 그러므로 ‘전교조 재합법회’가 아니라 ‘전교조 법외노조 철회’나 ‘전교조 법내노조화’다.    


사태의 해결 방법을 고민해 보자. 결의대회 홍보 포스터에서 ‘법외노조 철회’라고 했다. 단순 명쾌하고 정확한 해법이다. 문재인 정부가 기존의 ‘법상 노조 아님’ 통보를 ‘철회’하면 된다. 정부 직권으로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정부의 직권취소 행위는 행정처분이다. 사법부 판단이나 국회 입법 결과물을 기다릴 법적 의무가 없다고 한다.    

2013년 통보 공문이 팩스로 전교조 사무실에 도착했다는 것에 주목하자. 지금 당장이나 내일 아무 때 “전교조 ‘법상 노조 아님’ 통보를 직권으로 취소합니다”라는 내용이 담긴 공문을 전교조 사무실에 전송하자. 세계 교육운동사에 길이 남을 이 더럽고 야비하며 지긋지긋한 법외노조 사태가 일단락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정권 눈치나 보는 비겁한 대법원 따위에 기대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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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교육부장관이 유력시되는 김상곤 전 경기교육감의 정치적 부담을 이해한다. 그러나 겁먹을 필요 없다. 정치권 눈치를 볼 필요는 더더욱 없다. 전교조 법외노조 철회의 근거는 국내외적으로 차고 넘친다.    

교원의 노동기본권 보장 논의는 1995년 이후 국제노동기구(ILO)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권고 이후 본격화했다. 교사와 공무원의 노동기본권 보장과 해고자의 노동조합 가입 허용은 1996년 우리나라가 오이시디에 가입하면서 국제사회에 내건 ‘약속’이었다.    


아이엘오는 교원노조의 단결권과 자주성을 침해하는 <교원노조법> 제2조(교원노조의 조합원 자격을 초‧중등학교의 재직 중 교원으로 제한한다는 내용임.)와 관련해 수차례 폐지 권고 의견을 냈다. 2002년 제327차 보고서를 통해 “조합원 자격요건의 결정은 노동조합이 그 재량에 따라 규약으로 정할 문제이고, 행정당국은 노동조합의 이러한 권리를 침해할 수 있는 그 어떠한 개입도 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1997년 제307차 보고서에서도 거의 비슷한 취지로 폐지 권고 의견을 냈다.    


오이시디 회원국 중 해직교원의 교원노조 가입을 금지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미국에서는 교원노조의 조합원 자격을 제한하지 않는다. 영국에서는 교원이 일반노동자와 동일한 법적 규율을 받는다. 노동조합 결성과 관련하여 교원을 대상으로 한 특별한 제한이 없으며, 학생이나 퇴직자 등이 조합에 가입하는 것을 허용한다.  

  

프랑스에서는 실업자의 조합원 자격과 관련하여 직업 수행의 ‘현재성’ 원칙이 적용된다고 한다. 하지만 일단 한 번 직업을 수행한 적이 있는 자는 이후 그 직업 활동을 그만두더라도 노동조합에 가입하거나 계속해서 노동조합의 조합원 자격을 유지할 수 있다.     


독일의 교원노조 조합원은 초‧중등학교에 재직 중인 교사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런데 유아교사, 교육학적 문제를 연구하는 사회교육자, 어학교육기관이나 연구소나 대학 등 교육과 관련한 기관에서 일하는 자로서 교육관계단체에 소속되어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 모두 교원노조 조합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고 한다. 파트타임 노무 관계에 있거나 이미 교직을 은퇴한 자, 실업 중이거나 아직 대학생인 경우도 조합원이 될 수 있다.    

    

2015년 5월 헌법재판소(헌재)는 “교원이 아닌 사람이 교원노조에 일부 포함돼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이유로 법외노조로 할 것인지 여부는 행정당국의 재량적 판단에 달려 있다”라고 밝혔다. 당시 김이수 헌재 재판관은 <교원노조법> 제2조의 입법목적이 교원노조의 자주성과 주체성을 확보하는 데 있음에도 오히려 이 조항이 다른 행정적 수단과 결합해 교원노조의 자주성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김 재판관은 세계적으로 공인되고 존중되는 아이엘오 제87호(1948년, 147개국 비준)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 협약’을 주장의 근거로 내세우기도 했다.    


“노동자단체 및 사용자단체는 그들의 규약과 규칙을 작성하고, 완전히 자유롭게 대표를 선출하며, 관리 및 활동을 조직하고, 계획을 수립할 권리를 가진다. 행정기관은 이 권리를 제한하거나 이 권리의 합법적인 행사를 방해하는 어떠한 간섭도 삼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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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행사가 교사결의대회가 아니라 말 그대로 ‘생일잔치’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전교조는 아직 동토에서 헤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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