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10대를 아느냐 (56)
1
퇴근 길이었다. 멀리서 ‘은균 샘’ 하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영석(가명)이었다. 녀석이 크게 손짓을 하며 고개를 넙죽 숙였다. 환하게 웃는 표정 뒤로 인사할 때 드러나는 특유의 새하얀 이가 반짝 빛나는 것 같았다.
그즈음 우리 학교에서 내게 가장 밝은 표정과 목소리로 인사하는 학생이 영석이었다. 중학교 3학년 남학생이었다. 2학년 때 만나 졸업할 때까지 함께 두 해를 지냈다. 그 사이 영석이 우리 반이었던 적은 없었다. 그런데 나는 스스로 영석이와 맺은 인연이 각별하다고 여기고 있다.
2
우리 사이에 무슨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내가 보기에 영석은 2년에 걸쳐 아주 조금씩 변해왔다. 그것 하나만으로 영석은 내게 특별한 가르침을 안겨 주었다. 학생들을 바라보는 내 시선의 느슨한 지점을 돌아보게 해 주었다.
생각과 태도가 목석처럼 굳어버린 듯해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이들에게서 변화의 가능성을 읽어내기란 쉽지 않다. 영석이가 그랬다. ‘대체 이런 아이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다른 세상에 나가 제대로 살 수 있을까.’ 처음 일 년 내내 영석이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그때 영석이가 수업 시간에 보인 모습은 두 가지 정도였다. 엎드려 자거나 친구와 장난치기. 수업 시작 전에 교과서를 챙겨놓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교과서 좀 볼까’ 하고 말하면 들은 체 만 체했다. 단호히 눈길을 던지면 그때서야 엉거주춤 일어나 뒤쪽 보관함으로 향했다. 그나마 교과서는 그곳에 있지도 않았다.
가끔 영석이 때문에 깜짝 놀랐다. 친구와 장난을 치다가 갑자기 소리를 꽥 지르곤 했기 때문이다. 욕설이 튀어나오거나 듣기 거북한 거친 표현이 많았다. 자연스레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런 일이 있으면 수업 후에 영석이를 교무실로 불렀다. 소파에 앉힌 뒤 조용히 대화를 나누거나 밖으로 나가 두런두런 서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래 봐야 거의 일방적으로 내가 ‘훈계조’의 말을 내놓는 식이었지만 말이다.
3
영석은 나의 ‘각개격파’로도 쉽게 바뀌지 않았다. 교무실에서 간곡하고 진심 어린 말로 어르고 달래 보내도 다음 날 수업 시간이 되면 그 전과 똑같은 모습을 보였다.
언젠가부터 영석이 바뀌었다. 그 전에도 인사는 잘하는 편이었다. 그냥 지나치면 내가 먼저 인사를 했다. 그러다 어느 시점부터 영석이가 먼저 내 이름을 부르며 큰소리로 인사를 했다.
엎드려 자거나, 교과서를 챙겨 놓지 않는 버릇(?)이 여전했으나 횟수가 줄어들었다. 가끔 교과서를 미리 챙겨놓기도 했다. 교실에 있는 우리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던 거친 언어들 역시 영석에게서 서서히 사라져갔다.
영석에게 일어난 ‘변화’의 배경과 경로를 샅샅이 분석하기는 힘들다. 힘주어 말하고 싶은 것은 시간이다. 나는 영석이 3학년이 된 해의 3월 초부터 변화를 보기 시작한 것 같다. 조짐은 그 이전부터 있었을 것이다. 대략 계산해 보건대 2학년 겨울방학에서 3학년 초에 이르는 석 달이 영석에게 변화의 시간이지 않았을까.
아이들의 변화는 점진적이어서 그 흐름을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교사와 부모는 대체로 조급함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아주 조금씩 바뀌어가는 아이들의 변화를 보려 하지 않는다.
이제 어른들의 믿음을 얻지 못했다고 여긴 아이들은 엉뚱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존재를 증명해 보이려 한다. 이른바 문제적 행동과 태도가 이런 구조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까.
아이들은 변한다. 학교라는 시공간을 매개로 또 다른 수많은 시공간을 경험하면서 의식하거나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바뀌어 간다. 누군가는 짧은 시간 안에 확 바뀌지만, 다른 누군가는 주변 사람들이 보며 기다리기 힘들 정도로 아주 긴 시간 동안 조금씩 변한다.
교사와 부모가 할 일은 그 변화의 방향과 흐름을 주시하면서 유연하고 느긋하게 기다려주는 것이다. 영석이 내게 안겨 준 소중한 깨달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