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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Jun 12. 2017

“서둘러 가르치지 말라”

너희가 10대를 아느냐 (57)

1     


우리 집 막내는 7살이다. 제 부모가 맞벌이하는 바람에 3살 때부터 어린이집에 다녔다. 아이 돌보는 일에 둔감한 아빠가 아주 이른 아침을 챙겨야 했다. 기구한 ‘아해’의 운명은 일찌감치 정해졌다. 모자라고 어설픈 아빠 덕분에 스스로 많은 일을 했다.      


제 아빠가 시켰고, 목 마른 사람이 우물 파는 격으로, 때로 아이가 알아서 했다. 운명이 가야 할 길을 가리키는 나침반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무언가를 할 때마다 평소 보이지 않던 감각을 내보였다. 실수를 거듭하면서도 새로운 일들을 해냈다. 가령 아이는 옷을 입을 때 목을 빼내는 곳의 앞과 뒤를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제대로 분간했다.     


2     


나는 10살 전후 무렵부터 지게질을 시작했다. 논두렁 길을 따라 꼴을 져 나르고, 뒷산 나무청에서 쪼갠 장작을 열댓 개씩 지게에 얹어 집 뒤란 나무청으로 날랐다.      


지게질은 힘을 분배하고 균형감을 유지하는 데 상당한 기술이 필요했다. 지게에 짐을 얹는 일부터 요령이 필요했다. 한쪽으로 쏠리지 않게 무게중심을 잘 가늠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지게 멜빵을 어깨에 걸고 일어나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 무거운 짐을 지고 일어설 때 손에서 지게작대기 끝으로 옮아가는 순간적인 힘과, 두 다리에 들이는 힘이 서로 정확히 균형이 맞아야 했다. 어느 한 쪽이 약하거나, 두 종류의 힘을 내는 시간이 일치하지 않으면 지겟짐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쓰러졌다.     


어처구니 없는 실수와 난감한 실패를 수십 번 거듭한 끝에 지게질이 온전해졌다. 그때까지 지게질 ‘멘토’인 아버지가 한 일은 단순했다. 쓰러진 지게를 묵묵히 일으켜 세워 주거나, 느슨하게 묶인 짐을 다시 단단히 매조지해 주셨다.     


3     


모내기와 콩 심기와 보리 베기와 벼 베기를 했다. 중학교 2학년 때 난생 처음으로 소가 끄는 쟁기를 손에 쥐었다. 그밖에 내가 직접 경험한 일 목록을 정리하면 꽤나 길 것이다.     


일을 잘해서 한 것이 아니었다. 집안에 일손이 늘 부족했다. 일의 경중과 난이를 따질 겨를이 없었다. 무엇이든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어린 나의 운명이었다.     


운명이 아니어도 좋다. 아이들이 무언가를 스스로 하도록 해 보자. 단추 하나 꿰기 힘들어하던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의젓하게 홀로 단추를 꿰어 옷을 챙겨 입는다. 고무줄 끈으로 머리를 묶고, 스스로 물건을 챙긴다.     


4     


덩치 큰 황소가 끄는 쟁기는 크고 무거웠다. 코뚜레에서 멍에로 이어지는 고삐를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면 불편함을 느낀 소가 날뛰었다. 땅바닥 상태를 봐가며 무거운 쟁기 손잡이를 꽉 잡은 채 힘을 분배해야 보습이 에 처박혀 옴짝달싹 못하는 일이 생기지 않았다.      


눈은 소가 걸어가는 전면과, 보습 위로 비스듬히 박힌 볏을 타고 올라온 흙덩이가 떨어지는 쟁기 하단면을 수시로 오가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쟁기질이 삐뚤빼뚤해지거나 굵은 흙덩이에 발이 걸려 넘어질 수 있었다.      


15살짜리 중학생에게 쟁기질은 힘의 미묘한 분배와 신체의 역동적이면서도 섬세한 움직임이 함께 요구되는 ‘종합 극한 노동’이었다. 아버지의 가슴 속에 그런 생각이 없었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쟁기를 끌어보겠다는 ‘최초의’ 내 말에 주저하지 않고 소 고삐줄을 넘겨주셨다. 그러고는 논두렁에 앉으신 채 ‘이리이리’, ‘저리저리’를 외치며 소의 방향을 잡는 일을 조금 도와주셨을 뿐이다.     


5

     

아이가 강하게 크는 길은 아이 스스로 무언가를 많이 해보는 것이다. 부모와 교사가 공포와 통제의 심리에서 벗어나야 가능하다. 헬리콥터가 되어 아이 주변을 날아다니고, 분주한 컬링 동작으로 아이 앞에 놓인 장애물을 제거해 주며, 끊임없는 지시와 간섭으로 아이들의 숨통을 죄는 일부터 버릴 일이다.     


마지막으로 루소가 <에밀>에서 한 말을 새겨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루소는 “서둘러 가르치지 말라”를 아이들을 교육하는 데 지켜야 할 준칙의 하나로 제시했다. 부모가 자신의 아이를 빨리 가르치고 싶다면 “느긋하게 대응하라”라는 원칙을 지키라고 조언했다. 공포와 통제의 심리에 사로잡힌 부모들이 조급함을 버려야 하는 이유다.


* 제목 커버의 배경 사진은 쟁기질 하는 풍경이다. 네이버 블로그(http://blog.naver.com/gumbyul/60106839615)에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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