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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May 25. 2017

아픈 기쁨

적바림 (13) 고 노무현 전 대통령 8주기를 지나며

1

    

어제(5월 24일)는 둘째 생일이었다. 2009년에 태어났다.     


자식 태어난 해와 달과 날이 어느 부모에게 특별하지 않으랴. 둘째의 생일은 내게 그런 특별함에 또 다른 아픈 기억이 더해져 유다른 날이 되었다.    


2    


장모님께서 아내에게 산기가 보인다는 연락을 해오셨다. 아내는 친정집이 있는 광주로 먼저 가 있었다. 출산 예정일로부터 10여일을 지나고 있는 시점이었다. 금요일(22일)에 학교에 연가 신청을 하고 부랴부랴 광주로 갔다.    


토요일 아침 아내를 태우고 병원으로 향했다. 아내는 새벽녘부터 산통을 조금씩 느끼고 있었다. 혹시 몰라 병원 담당 의사에게 검사를 받아보기로 했다.     


차 안에서 갑자기 노무현 대통령에 관한 뉴스가 들려왔다. 자살, 추락사, 김해 봉하마을, 부엉이 바위 등의 말들이 귓전을 어지럽게 때렸다. 아내와 병원에 도착해 진료 순서를 기다리면서도 내 신경은 아내나 둘째아이가 아니라 온통 노 대통령에게 향해 있었다. 나는 대기실 벽에 걸린 대형 티브이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3    


노 대통령은 결국 떠나갔다. 검찰과 언론과 정부 여당의 삼각편대가 만들어낸 비열한 여론 조작과 왜곡, 공작적인 이미지 정치의 음모에 걸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었다. 노 대통령이 떠나가면서 내 가슴에 생긴 커다란 구멍을 채운 존재가 둘째였다. 24일 오후 세 시 무렵이었다.         


며칠 뒤 아내를 병원에 두고 홀로 광주 금남로로 향했다. 옛 전남도청 광장에 자리잡은 분향소를 찾았다. 나는 멀찌감치 차를 세우고, 분향소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오월 하순이었으나 내리쬐는 햇줄기가 여름햇살처럼 따가웠다. 사람들이 물밀 듯 광장 분향소로 모여들고 있었다.    


그 후텁지근하고 어지러운 풍경 사이로, 1980년 5월 하순의 한복판 풍경이 내게 달려드는 것 같았다. 민주주의를 외치는 무고한 시민들을 향해 조준 사격을 하고, 잔인하게 진압 작전을 펼친 그날의 공수부대 계엄군들이 마치 바로 곁에서 총부리를 겨누는 것마냥 분향소로 향하는 나와 광주시민들을 향해 진격해 오는 듯한 환각에 사로잡혔다.     


그 해 노 대통령의 죽음도 그렇게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그의 죽음은 자살인 동시에 명백한 타살이었다. 그가 펼친 정책과 정치와 통치 방식이 못마땅하고 안타까울 때가 많았다. 그는 비판과 비난을 두루 받았으며, 그 원인과 배경의 근본 바탕에 그 자신이 자리잡고 있을 때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그렇게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4    


아픔과 기쁨이 쓸쓸하게 교차했던, 2009년 5월 24일이었다.


* 제목 커버의 배경 사진은 무료 이미지 제공 사이트 pixabay.com에서 가져왔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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