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의 정치사회적 존재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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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직 입직 직후부터 전교조에 가입했으니 전교조에 대한 애착이 강한 편이다. 18년차 전교조 조합원으로서 전교조가 여느 교원단체를 대표하면서 우리나라 교육계에서 비중 있는 목소리를 내기를 바라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전교조 활동가’처럼 살기 시작한 것이 몇 년 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나는 전교조의 활동 방향이나 기조에 대해 못마땅한 구석이 많다. 예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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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원노조인 전교조는 여러 ‘반쪽짜리’ 관련 법령들의 금지 조항 때문에 노동조합이면서도 <헌법>이 보장해 놓은 단체행동권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다. 그런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전교조는 교사의 주요 권리 중 하나인 연가를 ‘집단 투쟁’ 수단의 하나로 삼아 자주 ‘투쟁’을 일삼는다.
이로 인한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집단 연가 상경 투쟁’이 있을 때마다 불법성 시비가 격렬하게 일어난다. 이 때문에 전교조는, 조직 전체를 떼를 쓰는 불법단체 이미지로 고착화시키려는 보수 언론의 ‘밥’이 되는 의도치 않은 결과에 맞닥뜨린다. 정당한 휴가권 행사니, 수업을 대체하고 실시하므로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가 없다느니 하는 항변은 별로 부각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연가 방식 자체에 대한 논란이 필요와 정도 이상으로 크게 부풀려져 애초 집단 연가를 통해 전하려던 사회적 메시지가 희석되어 버린다.
지회나 지부 회의에서 연가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고개를 젓곤 했다. 형편없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온갖 지탄과 비난을 무릅쓴 채 무리하게 진행하는 방식의 효과성 문제, 주로 ‘단골’ 참여자들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활동가 중심의 연가 투쟁에 대한 무력감이나 피로감 들이 의문으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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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연가에서 빠진 적은 별로 없었다. 전교조가 ‘투쟁’이라고 부르며 쓸 만한 전술은 그 정도가 다였으며, 그것도 1년에 한 번이나 두 번 정도 하는 식이어서 일부러 빠질 만한 내 나름의 명분을 찾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실제 집단으로 연가를 내는 방식(전교조 전체를 기준으로 보기 때문에 ‘집단’일 뿐이다. 연가 투쟁 참가자들은 개별 학교 차원에서 개별적으로 연가를 낸다.)을 제외하고 특별히 ‘투쟁 전술’이라고 부를 만한 게 없었다. 연가 투쟁은 노동조합의 핵심 ‘무기’인 단체행동권이 봉쇄된 전교조가 거의 유일하게 광장에서 사회를 향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대안적 수단이다.
전교조가 투쟁 수단으로 삼을 수 있는 게 몇 가지 더 있기는 하다. 교육 현안에 대한 성명서 발표나 기자회견, 1인 시위 등이 주를 이루고, 그나마 강도가 조금 높은 게 집회 정도다. 말이 투쟁이지 모두 ‘합법’의 테두리 안에 있는 ‘평화로운’ 방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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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가 ‘투쟁’ 일변도라는 전교조 비판론자들의 일부 지적에 공감한다. 분명 새겨들을 지점이 없지 않다. 전교조의 바람과 달리 교육의 ‘특수성’ 담론이 과잉 상태인 우리나라에서 교사의 정치사회적 활동이 금기시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스승 문화’, 교사를 노동자로 보는 것에 대한 강한 심리적 거부감 들도 무시할 수 없다. 이들은 현실에서 전교조의 ‘투쟁’을 사갈시하게 만드는 데 주요 요소로 작용한다.
그런데 현실적인 조건이 그렇다고 해서 계속 그 상태를 유지해야 할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좀 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그럴 수 없다!
전교조를 포함한 모든 교원단체는 고유의 정치사회적 위상을 가지며, 그 위상과 관련된 정치사회적 범주 안에 존재한다. 가령, 특정 이념 ‘편향적’이고 ‘정치적’이라는 전교조와 마찬가지로 국대 최대 교원단체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역시 (교장이나 교감 등 관리자) ‘편향적’이고 (일반적으로 보수 세력과 동궤에 놓이는) ‘정치적’ 단체일 수밖에 없다.
정치적 진공의 상태에 존재하거나 그런 조건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과 단체는 없다. 그런데 전교조는, 정부로부터 그 어떤 정치적 의사 표명이나 활동을 해서는 안 되는 조직이라며 극심한 표적 탄압을 받았다. ‘표적’이라고 표현한 점에 주목하면서 전교조가 정권의 특별한 ‘탄압’ 대상이 되었던 지난 몇 년 간의 역사를 살펴보기 바란다. 박정희와 노무현 정권 사이의 ‘무수한’ 사례는 포함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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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전교조는 이명박 정부의 주요 정책에 반대하는 시국선언을 진행하였다. 전임자 88명이 <국가공무원법>, <교원노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었다. 징계 사태가 이어져 17명이 해고, 45명이 정직, 5명이 감봉을 받았다. 전교조는 형사소송과 행정소송으로 맞섰다. 100만 원 이하의 벌금형 및 선고유예, 파면과 해임 무효 판결 등을 받았다.
2010~2011년에는 민주노동당 후원금 및 당원 가입 혐의로 1613명이 기소되었다. 한시적인 특별법에 따라 합법적으로 후원한 교사들이 대다수였다. 단군 이래 최대 규모라는 이 송사를 위해 이명박 정부는 <국가공무원법>, <정당법>, <정치자금법>을 들이밀었다. 그 결과 해임 9명, 정직 40명, 감봉 9명, 견책 1명 등의 징계가 이어졌다. 소송전이 이어졌다. <정당법> 위반 혐의가 무죄로 나왔고, <국가공무원법>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 벌금형이 나왔다. 해임 교사 9명은 행정소송에서 모두 승소하여 복직하였다.
2014년에는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박근혜 퇴진 청와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 교사 선언과 <경향신문> 광고 게재 등에 242명이, 이어 평조합원 중심으로 교사 시국선언과 <경향신문> 광고 게재 투쟁에 1,2217명이 참가하였다. 정부는 이들 교사 중 일부를 전임자 중심으로 선별하여 고발하였는데, 형사소송 1심에서 해당 교사 33명에 대해 벌금 100~400만 원을 선고했다. 현재 이 사건은 고등법원에 계류 중이다.
세월호 1주기였던 2015년 전교조 교사 111명은 연명으로 청와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박근혜 퇴진 교사선언문을 올렸다. 이어 전교조 조합원을 주축으로 1,7104명의 교사들이 세월호 1주기 시국선언을, 2,1000명의 교사들이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시국선언을 했다. 이에 박근혜 정부는 전임자 및 자유게시판 교사 선언자를 형사 고발했다. 2016년에는 4.13 국회의원 총선거 기간 중 에스엔에스(SNS)상의 선거법 위반 혐의 교사 71명을 적발해 19명을 형사 기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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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외노조화 조치를 철회하고, 교사의 노동기본권과 정치기본권을 보장하는 법령 개정을 요구하는 전교조를 향해 과도한 ‘정치 투쟁’을 삼가라는 이들이 많다. 행정 절차와 법치주의를 무시하지 말라는 ‘아름다운’ 말도 덧붙인다. 그분들께 행정과 법치주의 외에 ‘정의’와 ‘국제기준’의 문제를 함께 고려해 보라고 간곡히 말씀드리고 싶다.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의 근거가 된 <교원노조법 시행령>상 조항은 군부독재정권 당시 <노동조합법>의 노조 해산 명령 조항을 부활시킨 것으로, 이는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기본권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업무일지’에 적힌 것처럼, 전교조 법외노조화는 ‘이명박근혜’ 정권의 공작정치 산물이었다. 그들은 전교조 문제를 사흘에 한 번꼴로 점검하면서 전교조를 법 밖으로 밀어내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전교조가 법외노조가 된 것은, 해직자를 조합원으로 인정하는 전교조 내부 규약이 관련 법령에 어긋난다는 이유에서였다. 앞 절에서 본 2009~2016년 사이의 전교조 해직교사들 면면을 보기 바란다. 순종과 침묵의 길을 따르지 않고 불의한 권력과 불합리한 정치사회 시스템에 맞선 사람들이었다. 민주주의공화국의 노조인 전교조가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를 온 몸으로 보여준 이들이었다. 그런 이들을 조합에서 내치는 노조를 노조라고 할 수 있을까.
아이엘오(ILO) 협약 제87호나 아이엘오 결사의자유위원회 등이 권고하고 제안하는 국제 사회 기준도 참고해 보았으면 한다. 이들 국제기구에 따르면 해고자를 조합원으로 인정하거나 조합원 자격 요건을 부여하는 것은 노동조합 스스로 결정할 문제여야 한다. 해고자에 대한 노조 가입 보장과 교원의 노동조합 인정(합법화)은 1996년 한국 정부가 오이시디(OECD)에 가입하면서 국제사회에 내건 ‘약속’이기도 하다.
오이시디 회원국 중 해직 교사의 교원노조 가입을 금지하는 국가는 한국뿐이다. 우리나라 국가인권위원회조차 전교조 법외노조화가 <헌법>상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하고, 단결권과 결사의 자유를 침해하며,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파기하는 행위라며 철회를 권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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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폭로>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이 2003년에 출간한 책이다. 그에 따르면 2000년대 초반 부시 행정부가 저소득층으로 하여금 정부와 정치에 대해 증오심을 품게 하기 위해 저소득층에 적대적인 정책을 펼쳤다고 한다. 크루그먼은 부시 행정부가 “국가와 정치가 국민들에게 좋은 일을 해서는 결코 안 된다”라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좋은 일을 할 경우 사람들은 정부가 나쁘다는 것을 인식하지 않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유창오 새시대전략연구소 소장은 <정치의 귀환>(2016, 폴리테이아)이라는 책의 ‘반정치주의 콤플렉스’ 장에서 이 사례를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말로는 늘 정치와 정치인을 부정적으로 말해서 정치에 대해 증오심을 유도하면서 실제로는 가장 정치적이고, 또 투표도 열심히 하며 정부 정책이나 예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상층계급들이다. 이처럼 ‘반정치주의’는 분명한 권력 효과를 갖는 이데올로기다. 반정치주의는 민주주의의 약화로 이득을 보는 권력자, 부자들의 이데올로기이며, 신자유주의와 보수주의의 무기다. - 유창오(2016), <정치의 귀환>, 118쪽.
나는 전교조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정치 (투쟁) 담론’ 역시 마찬가지라고 본다. 정치사회적으로 온전한 의미의 정치주의가 교육 시스템을 둘러싸고 견인하는 주요한 기제가 되어 작동할 때 교육민주주의, 학교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다. 전교조 문제를 해결하는 시작과 끝을 여기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 본문 중에 나오는 2009~2016년 사이의 전교조 관련 일지는 전교조 내부 자료를 참조하였음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