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교사들의 ‘노동자의식’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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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이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신문 <교육희망>에 실린, ‘섬진강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김용택 선생님의 칼럼 한 편(<한심한 당신들의 동지>, 2011년 5월 9일)이 ‘파장’을 불러온 적이 있었다. 전교조 출범 초창기부터 전교조 조합원으로 가입해 있었는데도, 전교조에게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한 서운함(?)을 격하게 토로한 글이었다. 전교조에 비판적인 이들에게 ‘쓴소리’를 듣겠다는 취지로 마련한 글이었던 것으로 안다.
그 자신 ‘노동조합’인 전교조의 ‘조합원’이면서 ‘조합비’를 ‘회비’라고 표현하였다. 문학 교과서에 시가 실릴 정도로 유명한 자신을 전교조가 적당히 챙겨주지 않는 것에 대한 서운함이 행간에 진하게 배어 있었다. 김 선생님에게 미안하지만 내가 보기에 글의 기조와 어조가 유치하였다. 전교조가 여는 이런저런 행사에 발길이나 손길은커녕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분이 전교조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이나 소회에 근거해 비아냥거리듯 말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전교조에 대한 마음길이 과연 있기는 한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칼럼을 읽는 내내 실소와 한숨이 번갈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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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는 노동조합이므로 그 구성원을 ‘조합원’이라고 불러야 한다. 전교조 조합원이 된 뒤 납부하는 돈은 ‘조합비’다. 전교조는 <일반노조법>의 일부 조항과, 일종의 특별법인 <교원노조법>에 따라 운용되는 ‘법정’ 노조다. 임의단체나 사적 동호회가 아니므로 ‘회비’나 ‘회원’을 써서는 안 된다. 그래서 임의교원단체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의 구성원은 ‘회원’이 되어 ‘회비’를 낸다.
김용택 선생님을 ‘디스’ 하자고 말하는 게 아니다. 나는 지금 일종의 ‘조합원 정체성’, 또는 ‘노동조합 정치’를 말하는 것이다. 근대 자본주의가 본격화한 이후 태동한 노동조합의 조합원은 ‘사회적 약자’로서의 정체성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 역사적 연원, 현실적인 구도 등을 두루 고려할 때 그렇다.
‘단결’, ‘연대’ 등으로 표현할 만한 협력과 주체성의 철학이 노동조합을 추동하고 견인하는 핵심 가치다. 조금 거창하게 해석하면, ‘회비’나 ‘회원’과 같은 표현은 그와 같은 역사적인 연원과 맥락, 조합원과 조합비가 함의하는 노동조합 정치의 상징성을 현실에서 약화시킨다. 노동조합을, 사람들이 서로 뜻이 맞아 적당히 어울려 지내는 연성 조직 정도로 받아들이게 한다.
나는 지금 우리나라 초중고등학교 안팎에 그 자신을 전교조 ‘회원’ 정도로 보고 다달이 일정액의 ‘회비’를 내는 것으로 전교조 구성원으로서의 구실을 다했다고 여기는 선생님들이 제법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것이 그 선생님들의 ‘선택’이나 ‘자유’라고 항변한다면 할 말이 없다. 다만 나는 연대하고 협력하지 않는 노동자, 각자 살아가고 일하는 부문에서만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속 좁은 노동자가 많아서는, 이 땅 대다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노동하는 삶’의 진보가 결코 이루어지지 않으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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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페이스북 친구인 #송원재 선생님이 6.30 사회적 총파업 즈음에 올린 글(“‘노동자의식’이 박약한 ‘젊은 교사들’을 위한 변명”)을 읽다 교육노동자인 교사들의 ‘노동자의식’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젊은 교사들’이 노동조합인 전교조에 가입한 이유가 무엇일까. 전교조에 가입해 있던 나이 젊은 전교조 교사가 일련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전교조를 탈퇴한 이유 속에 노동자의식의 다과(多寡)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답을 쉽게 찾기 힘든 질문들을 부여안고 한참 동안 헤맸다.
교사가 노동자인가. 우리 사회에는 ‘그렇다’는 대답에 격렬히 반발하는 이들이 꽤 많은 것 같다. 동서양 모두 교직을 ‘성직’처럼 여기는 오래된 관습적 사고법이나 이미지가 작용하고 있다. ‘교사(선생)=스승’과 같은 전통 교육학 버전의 사고 방식을 가진 이들도 ‘교사=노동자’ 도식에 거부감을 느낄 것이다.
나는 교사가 노동자라고 생각한다. 다만 법들이 규정하는 바 ‘전문직 노동자’라는 점에서 우리가 보통 떠올리는 일반적인(?) 노동자와 그 결이 조금 다를 뿐이다. 교육 관계 법규는 꽤 여러 곳에서 교사의 ‘전문성’에 대해 언급해 놓고 있다. 나 역시 여러 자리와 글에서 전문직으로서의 교사상을 강조하면서 그 위상에 합당한 교사가 되려고 노력한다.
교사를 노동자로 보는 것이 곧 교사의 ‘전문가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다른 여러 나라에서 발견되는 전문직 노조의 사례를 통해서 방증된다. 교수노조가 있고, 판사노조가 있다. 군인노조나 경찰노조가 있는 국가도 꽤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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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스럽게 추측해 보면, 나는 예의 ‘젊은 교사들’이 교사를 노동자로 보는 시각에 상당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니 그들 눈에 고담준론에나 등장할 것처럼 보이는 단어인 ‘노동자의식’을 그들 자신에게서 기대하는 것이 무망한 일이리라. 짐작건대 그들의 의식은 고도의 전문가주의로 무장해 있을 것이다. 그들의 말과 행동은 고고한 엘리트 의식의 지배를 받고 있을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정치사회적으로 필경 노동자 범주에 들어간다는 사실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약하거나, 또는 엘리트 의식 같은 엉뚱한 내용물이 뒤섞여 있는 노동자의식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다. 송 선생님 말씀처럼 “끊임없는 설득과 교양”이 필요한 지난한 일이다.
어찌 보면 아주 기본적인 이야기인 ‘조합비’와 ‘회비’ 이야기를 글머리에 풀어 놓은 까닭이다. 18년차 ‘선배’ 전교조 조합원 교사로서 안타깝다. 수많은 교원단체들의 정치사회적 구도에 관한 한 ‘전교조 빅텐트론’을 주창하는 입장을 갖고 있다. ‘노동자의식’이 약한 ‘후배’ 조합원 교사들이 전교조 가입을 꺼려 하거나, 가입한 뒤 탈퇴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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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는 희망이 있는가. 우리 학교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다. 권력의 자의적인 법 해석과 행정권 횡포로 촉발된 법외노조화 국면, 수년간 지루하게 이어진 성과급 균등분배 전선을 거쳐오면서 전교조를 건설적인 비판‧대안 세력으로 바라보는 선생님들이 많이 생겨났다. 그 결과 학교 내부의 이런저런 상황 변화와 구도 속에서 선생님 4명이 전교조에 가입하여 조합원이 전체 평교사의 절반에 이르게 되었다.
우리 학교 분회는 매 학기 1차고사와 2차고사 시기에 각각 즈음하여 총 4번의 정기 모임을 갖는다. 학교 안팎에서 일어나는 교육 현안과 관련하여 수시 모임을 갖는다. 조합원 간 친목 도모를 위한 ‘번개’와 여행, 책읽기와 토론 등을 꾸준히 실시한다. 전교조 일을 자신의 일처럼 앞장서서 챙기는 선생님들이 카톡방에서 생기발랄한 분위기를 주도하면서 모두 신나게 전교조 조합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새 얼굴 충원이나 교체가 더딘 사립학교 환경 특성상 우리 학교 선생님들의 평균 연령이 50살을 넘어선 지 오래다. 물리적으로 늙었으나 의식과 행동만은 여느 열정 넘치는 20대 청춘 못지 않게 뜨겁다. 나는 우리 학교 분회에서 전교조의 ‘희망’을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