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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Jul 19. 2017

학교생활기록부의 ‘인간학’

수상한 교육법 (5)

1    

 

학교와 교사의 ‘눈’을 생각한다. 그들은 학생들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평가한다. 언어, 동작, 몸짓, 표정, 행동, 학생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보이지 않는 분위기 등 모든 것이 관찰과 평가와 해석의 대상이 된다.

 

때로 그들은 그 모든 대상들의 이면과 배경과 근본을 따진다. 눈으로 볼 수 없는, 학생들 각자의 생각과 의식과 관념과 추상과 상상의 세계를 넘나든다. 그때 교사는 고도로 자율적인 심리학자나, 사람의 본질을 볼 줄 아는 깊이와 넓이를 갖춘 인간학자가 된다.


가끔 이런 의문을 갖는다. 교사가 학생들을 바라보고 평가하는 권리는 누가 왜 준 것일까. 교사가 학생 한 명 한 명에 대해 그를 ‘누구’라고 규정할 때, 교사는 무엇을 근거로 그 학생들 각각을 ‘누구’라고 결론을 내리는 것일까. 그 각각의 ‘누구’를 이루는 요소들에 무엇을 포함해야 하는지를 교사는 어떤 근거와 기준에 따라 결정할까.


나는, 나를 포함한 이 세상 모든 교사가 학생들에 관한 한 완벽한 심리학자나 인간학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교직 경력 1년인 교사와 30년인 교사의 경험이나 경륜 차이를 근거로 학생을 보는 눈의 ‘차이’를 이야기할 수 있겠다. 실제로 사람은 경험의 양적 다과에 따라 세상과 사람을 보는 눈이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우리는 이때에도 단서와 한계를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컨대 교직 경력이 30년이 넘는 교사가 어떤 부류의 학생을 바라보는 눈이 왜곡되어 있을 수 있다. 그의 눈이 특정한 틀에 얽매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 모두가 위험한 사태들이다. 학생은 교사나 부모, 또는 주변 사람들이 내보이는 시선의 자장권 아래서 다양한 조건의 변이에 따라 변할 가능성이 높은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이 점이 왜 중요할까. 본래 사람은 사악하다고 생각하는 문화가 있다고 하자. 사악하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무수히 만들어진다. 모든 사람을 믿지 못하거나 두려워하는 사람은, 자신이 믿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바로 그러한 태도와 방식에 따라 행동한다. 이는 일종의 자기 충족적인 현상이다. 요컨대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기대한다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한다.      


2     


현행 학생부 보유와 관리의 법적 근거는 <초‧중등교육법> 제25조의 ‘학교생활기록’이다. 이에 따르면 학생 지도와 상급학교 학생 선발 활용 등이 학교생활기록의 작성‧관리 목적이다. 법률이 지정한 학생부 작성과 관리의 최종 책임 주체는 학교장이다.


학교장이 학생의 학교생활기록을 위해 상위법인 <초‧중등교육법>과 하위법인 교육부령 <초‧중등교육법 시행규칙>이 정하는 기준에 따라 작성‧관리해야 하는 항목 수는 모두 7가지다. 인적사항, 학적사항, 출결상황, 자격증 및 인증 취득상황, 교과학습 발달상황,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 그 밖에 교육목적에 필요한 범위에서 교육부령으로 정하는 사항 들이다. 이들 자료는 전자적으로 처리되는 교육정보시스템을 통해 관리되어야 한다. 또한 학생이 다른 학교로 전출하면 전입 학교에 넘겨야 한다.


<초‧중등교육법> 제25조에 따라 <초‧중등교육법 시행규칙>(제21조)에서 정해 놓은 작성 기준상의 세부 정보 6가지를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인적사항: 학생의 성명·주민등록번호·주소와 부모의 성명·생년월일 및 가족의 변동사항 등.
2. 학적사항: 학생의 입학 전 학교의 이름 및 졸업 연월일, 재학 중 학적 변동이 있는 경우 그 날짜 및 내용 등. 이 경우 학적 변동이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제17조의 조치사항에 따른 것인 경우에는 그 내용을 기록하여야 한다.
3. 출결상황: 학생의 학년별 출결상황 등. 이 경우 출결상황이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제17조의 조치사항에 따른 것인 경우에는 그 내용을 기록하여야 한다.
4. 자격증 및 인증 취득상황: 학생이 취득한 자격증의 명칭, 번호, 취득 연월일 및 발급기관과 인증의 종류, 내용, 취득 연월일 및 인증기관 등.
5. 교과학습 발달상황: 학생의 재학 중 이수 교과 및 과목명, 평가 결과, 학습활동의 발전 여부 등.
6.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 학교교육 이수 중 학생의 행동특성과 학생의 학교교육 이수 상황을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의견 등     


1~6 각각은 교육당국이 학생지도와 상급학교 학생 선발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고 보아 학교장(교사)이 반드시 입력해야 한다고 강제하는 항목들이다. 1~6 외에 ‘7. 그 밖에 교육목적에 필요한 범위에서 교육부령으로 정하는 사항’이 하나 더 있다. ‘7’에서 교육부가 “교육목적에 필요한 범위”라고 판단해 “교육부령으로 정하는 사항”은 <초‧중등교육법 시행규칙> 제22조에 다음과 같이 나열되어 있다.    


가. 학교정보
나. 학생의 수상경력
다. 학생의 진로희망사항
라. 학생의 창의적 체험활동상황
마. 학생(중학생과 고등학생 또는 중학교나 고등학교에 준하는 교육과정 이수 중에 있는 학생만 해당한다)의 독서활동상황
바. 학생(중학생만 해당한다)의 자유학기 활동상황     


3     


모두 민감한 개인정보들이다. 학생부를 보유하고 관리하는 목적이 학생 지도와 상급학교 학생 선발 활용 등의 두 가지임을 보았다. 1~6과 가~바가 이와 같은 보유 목적에 맞고 필수불가결한 정보들일까. 국외 여러 나라에서 학생부를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우회적인 방식이긴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으리라 본다.


가까운 일본부터 보자. 일본에서는 학생부 관리 목적을 학생 지도 과정과 결과의 요약을 기록하여 학생 지도와 외부 증명서 원부로 활용하는 데 두고 있다. 기재 항목은 우리와 큰 차이가 없다. 다른 점은 독서활동 정보(현행 지침에 따르면 책명과 저자를 기록해야 함.)를 따로 기록하지 않는다는 것 정도다.


미국은 학생의 학습 정도를 파악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의사소통의 통로로 활용하며, 학습동기를 유발하기 위한 자료로 쓰기 위해 학생부를 관리한다. 미국 학생부의 기재사항은 인적사항, 출결사항, 교과학습 발달상황,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 등이다. 학적사항, 수상경력, 자격증 및 인증 취득 상황, 진로희망 사항, 창의적 체험활동 관련 정보들은 따로 보유하지 않는다.


독일에서는 학생부를 학생 지도에만 활용하고 상급 학교 진학에는 쓰지 않는다. 기재사항도 인적사항, 학적사항, 출결사항, 교과학습 발달상황 등의 4가지에 불과하다.


프랑스에서는 학부모와 교사에게 학생 발달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고, 학교와 교사와 학부모 간 소통과 연계를 위해 학생부를 관리한다. 기재사항 수는 독일보다 많지만 우리나라보다는 적다. 수상 경력, 창의적 체험활동, 독서 활동을 제외한 나머지 7가지 항목을 관리한다.


호주에서는 학생을 지도하고 학부모에게 학생학업성취도 및 비교과활동 특징을 공지하기 위해 학생부를 관리한다. 독일과 마찬가지로 인적사항, 학적사항, 출결사항, 교과학습 발달상황 등의 4가지가 기본적인 기재사항이다.


저 앞의 1~6과 가~바 중 상호 비교가 가능한 10개 항목(총 12개 항목 중 ‘학교정보’와 ‘자유학기 활동상황’ 항목 제외)을 견주어 우리나라와 국외 몇 개 나라의 기재사항 수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일본이 기재사항 수가 많아 우리와 비슷한 것처럼 보인다. 다른 점이 있다. 수상 경력, 자격증 취득 상황, 진로 희망을 종합적인 소견이나 학생 지도 시 참고할 만한 사항 중심으로 기재하는 방식을 원용한다.


우리는 개개 항목과 관련하여 구체적인 정보를 모두 기재하게 한다. 가령 수상경력을 입력할 때 우리는 교내상 명칭, 등급(등위), 수상연월일, 수여기관명, 참가대상(참가인원) 등을 모두 적게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우리나라가 학생부 기재사항이 가장 많고 복잡하다.     


4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에 숨어 있는 ‘인간관’을 헤아려 본다.


현행 학생부 작성과 관리의 법적 근거(<초‧중등교육법> 제25조의 ‘학교생활기록’)에 따르면 학교생활기록 보유 목적이 두 가지다. 학생 지도와 상급학교 학생 선발 활용 들이다. 학생부의 성격을 이렇게 해석하면 지나칠까. 학생의 변화와 성장에 대한 종합 보고서로서보다, ‘대상화’한 학생의 민감한 개인정보들을 담고 있는 ‘사찰자료’나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데 필요한 ‘입시자료’에 가깝다는 것.


나는 학생부에 함의된 인간상이 통제되고 관리되는 인간이라고 본다. 이러한 인간상을 만들기 위해 위계적인 학교 시스템이 동원되고, 관찰과 기록이 가능한 모든 개인정보를 수집해 보유한다.


현행 법규에서는 학생부 작성과 관리의 책임 주체를 학교장으로 하고 있다. 학생의 학업성취도와 인성 들을 종합적으로 관찰하고 평가한다는 명목으로 법규가 정해 놓은 갖가지 자료들을 작성하고 관리해야 한다. 국외 여러 나라들과의 비교에서 알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나라의 학생부 기재항목 수가 월등하게 많은 까닭이 여기에 있지 않을까.


이러한 특징에 터 잡아 ‘학생부 인간학’에 관한 해석을 확대해 보자. 학생을 그 자체로 ‘목적’인 존재로서가 아니라 국가가 완벽하게 통제하면서 언제든지 동원해 쓸 수 있는 ‘인적자원(human resources)’과 같은 ‘수단’으로 보는 시각이 학생부의 밑바탕에 깔려 있다고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이제 학생들은 그 자신과 동료들을 온전한 인격체로 여기지 않는다. 사람을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회문화적 분위기에 포박된 그들은 그 자신과 동료들을 기꺼이 수단화하는 자기 충족적인 현상에 휩쓸린다.


인류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데이비드 그레이버 런던정경대 교수는 <관료제 유토피아>에서 “주인이 자신의 노예를 채찍질 할 때, 그는 중요한 의사전달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즉 의문의 여지없는 절대적인 복종의 필요성을 전달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오늘날 우리나라 학교와 교실에서 일어나는 온갖 ‘비인간적인’ 행태 이면에 이와 같은 학생부 인간학의 부정적인 측면이 교묘하게 작동하고 있다고 본다. 지금 우리는 ‘주인’(학생부)의 ‘채찍질’에 무조건적인 복종의 길을 따르는 ‘노예’의 삶을 살고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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