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어먹을’ 학교생활기록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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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는 민감한 개인정보의 저수조다. 그것의 ‘가격’이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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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시장에서 유통되는 개인정보는 ‘거래가격’이 있다. 이름이나 휴대폰 번호 등은 10원~20원 정도로 미미하다. 여기에 주민등록번호나 집 주소 정보가 들어가면 20원~60원대로 뛴다.
암시장 거래가이므로 정상거래가보다 낮을 것이다. 학생부에 담긴 개인정보들은 모두가 민감도가 높은 것들이다. 따라서 모든 항목에 대해 임의로 100원이라는 높은 가격을 매겨 보자. 우리나라 전체 학생 수는 620만 명(초등학생 270만 명, 중학생 180만 명, 고등학생 170만 명)으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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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등교육법>과 <초‧중등교육법 시행규칙>에 따라 기재해야 하는 항목 수는 열 가지다. 인적사항, 학적사항, 출결상황, 자격증 및 인증 취득상황, 교과학습 발달상황,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 학교정보, 학생의 수상경력, 학생의 진로희망사항, 학생의 창의적 체험활동상황, 학생의 독서활동상황, 학생의 자유학기 활동상황 들이다.
각 항목별로 법정 ‘작성기준’에 따른 세부 항목이 있는 것들이 있다. 이를 고려하여 대항목별로 하나하나 가격을 매겨 보자.
먼저 학생부의 ‘인적사항’ 작성기준에 따르면 학생의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부모의 성명, 생년월일, 가족변동사항 들이다. 이런 계산식이 나온다.
(가) 620만 명×6건(‘부모의 성명’은 2건으로 계산, ‘가족변동사항’은 제외)×100원=37.2억 원
‘학적사항’에는 학생의 입학 전 학교의 이름, 졸업 연월일, 재학 중 학적 변동 시 날짜 및 내용, 학교폭력(학폭) 관련 정보 들이 있다. 학적 변동이나 학폭 관련 정보는 일부 학생에게만 적용되므로 처음 2건만 놓고 계산하자.
(나) 620만 명×2건×100원=12.4억 원
‘출결상황’ 정보는 학생의 학년별 출결상황을 기록해야 한다. 6년제인 초등생은 6건, 3년제인 중고교생은 3건으로 나누어 계산하자.
(다) (270만 명×6건×100원)+(350만 명×3건×100원)=16.2억 원+10.5억 원=26.7억 원
‘자격증 및 인증 취득상황’은 학생 개인마다 다르므로 빼 준다!
‘교과학습 발달상황’. 학생의 재학 중 이수 교과 및 과목명, 평가 결과가 들어간다. 학교급, 학년급별로 교과 수나 과목 수가 다르다. 통으로 묶되 초등학교 6개 학년과 중고교 3개 학년을 구별하고, 교과 및 과목명과 평가 결과 2건으로 정리하자. 그리고 고민감도 개인정보이므로 가격을 정상가의 2배(200원)로 책정하자.
(라) (270만 명×6개 학년×2건×200원)+(350만 명×3개 학년×2건×200원)=64.8억 원+42억 원=106.8억 원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은 단일항목으로 처리한다. 역시 고민감성 개인정보이므로 200원으로 계산한다.
(마) 620만 명×200원=12.4억 원
‘학교정보’부터 ‘학생의 자유학기 활동상황’까지는 “교육 목적에 필요한 범위에서 교육부령으로 정하는 사항”에 해당한다. 이 중 ‘학교정보’, ‘진로희망사항’, ‘학생의 독서활동상황’은 모든 학생에게 해당하고, 단일 항목이다.
(바) (620만 명×100원)×3=18.6억 원
‘수상경력’은 일부 학생에게 해당하므로 제외한다.
‘학생의 창의적 체험활동상황’은 ‘자율활동, 진로활동, 봉사활동, 동아리활동’ 등의 세부 4항목으로 구성된다. 4건으로 하자.
(사) 620만 명×4건×100원=24.8억 원
‘학생의 자유학기 활동상황’은 중학교 1학년이나 2학년 중 한 개 학년 학생에게만 적용된다. 이 역시 무시하자.
기본 계산이 끝났다. (가)~(사)를 모두 합한 금액은 아래 (아)와 같다.
(아) 189억 3천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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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적은 것 같다!
우리의 학생부가, (가)~(아) 항목들의 계산 금액 아래에 숨어 있거나 빠진 또 다른 보이지 않는 개인정보들까지를 종합하고 분석하여 620만 명 학생들의 ‘정체성’이라는 최민감성 개인정보를 담고 있다고 가정하고, 이에 바탕을 둔 금액을 덧붙여 주자. (아)를 3배쯤 뻥튀기 해 (자)처럼 해 주면 될까.
(자) 189.3억 원×3=567억 9천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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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액이 조금 높아졌다. 부질없고, 부질없는 짓이다!
나는 저 ‘빌어먹을’ 학생부에서 도무지 ‘사람’을 찾아볼 수 없다. 학생부에 있는 것은 고작 567억 9천만 원어치에 해당하는, 그러나 학생이라는 이유로 국가와 학교에 일방적으로 바칠 수밖에 없었던 민감한 개인정보들만 담겨 있을 뿐이다.
학생부가 ‘사람’인 학생을 담을 필요가 없고, 이유도 없다. 그래도 학생부를 없애지 못하겠다면 학생부에 ‘사람’이 담기게 하라.
우리나라 법령은 학생부를 ‘학생 지도’와 ‘상급학교 학생 선발’을 위한 자료로 활용하게 해 놓았다. 이 <초‧중등교육법> 제25조의 전문을 바꾸자. 지금 이렇게 되어 있다.
“학교의 장은 학생의 학업성취도와 인성(人性) 등을 종합적으로 관찰‧평가하여 학생 지도 및 상급학교(<고등등교육법> 제2조 각 호에 따른 학교를 포함한다. 이하 같다.)의 학생 선발에 활용할 수 있는 다음 각 호의 자료를 교육부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따라 작성‧관리하여야 한다.”
‘학생 지도’ 자료 활용 목적을 다른 것으로 바꾸자. ‘상급학교 학생 선발’ 자료 활용 목적은 과감하게 빼 버리자. 상급학교(대학교다!)가 학생부 없이, 또는 학생부를 최소한도로 참고하여 신입생을 선발할 수 있는 전형 실력을 키우게 채근하자. 그들이 ‘선발’(입시)이 아니라 ‘교육’에 힘쓰게 하자. 그동안 대학들은 땅 짚고 헤엄치는 장사를 해왔다.
‘학업성취도’니 ‘인성’이니 하는 말도 삭제하자. 초중등학교는 ‘나’와 ‘우리’, ‘개인’과 ‘공동체’를 배우는 시기다. 학생들이, <초‧중등학교 교육과정>의 ‘추구하는 인간상’이 규정하는 자주적이고, 창의적이고, 교양이 있으며, 민주 시민으로서 더불어 사는 사람이 되게 하는 데 주력하자. 루소의 말을 빌려 개인이면서 시민인 사람, 시민이면서 개인인 사람으로 기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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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초‧중등교육법> 제25조 ‘학교생활기록’에 다음과 같은 문장을 집어넣고 싶다.
“학교의 장은 학생의 자아정체성 탐색과 민주 시민성 함양과 관련된 학교생활을 종합적으로 관찰‧평가하여 학생의 변화와 성장을 도모하고 지원할 수 있는 다음 각 호의 자료를 작성‧관리하여야 한다.”
* 제목 커버의 배경 사진은 <경향신문>(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8022147005&code=940401)에서 가져왔다. 주요국 학생부 비교 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