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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Aug 26. 2017

누가 전교조의 주인인가

전교조 정파와 정파주의에 대하여

1


흔히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양대 정파는 참교육실천연대(참실련)와 교육의전망을찾는사람들(교찾사)로 분류된다.(비판자들에게 무슨 비밀결사조직처럼 운위되는 전교조 내 양대 정파는 이미 두루 공개되어 있다. 명멸하는 군소 정파의 사정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한때 이들 양대 정파 중 하나인 참실련의 구성원이었고, 전교조 본부에서 전임자 활동을 한 것으로 보이는 권재원 선생님은 <학교라는 괴물>이라는 책의 ‘전교조 20년의 과’ 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전교조는 내부적으로는 너무 정치적이었고 대외적으로는 너무 비정치적이었다. 밖으로 알려지지 않은 전교조 내부의 의사결정 과정은 정파들 간의 이전투구와 권모술수로 점철되어 정치판 부럽지 않을 정도였다. 지금 철저히 비밀 조직으로 운영되는 전교조의 양대 정파들 때문에 전교조 내부의 의사결정은 무슨 음모가들의 술수처럼 되어 버렸다. 그러나 정부와 대항하거나 자신의 뜻을 관철하고자 할 때 전교조는 그 권모술수가 다 어디로 갔는지 정면돌파와 떼쓰기로 일관했다. 여론에서 유리한 지형을 차지하고, 지지자들을 늘리기 위해 자신의 주장을 조정하거나 장식하는 등의 노력은 일절 하지 않았다.” - 권재원(2014), <학교라는 괴물>, 북멘토, 285~286쪽.


권 선생님은 ‘전교조 20년의 과’ 11가지 중 첫 번째 자리에 이 문제를 놓으면서 ‘전교조는 지나치게 정치적이었다’라는 제목을 붙여 놓았다. 정치적인 정파주의를 전교조 내부의 심대한 문제로 보고 있는 것처럼 읽힌다.


전교조 문제의 핵심에 ‘정파’가 있는 것처럼 보는 이러한 태도를 정파 환원주의라고 하자. 정파 환원론자들의 분석 기저에 깔린 전제를 자유롭게 유추해 본다. 전교조 내부에서 의사결정이 특정 정파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의사결정 과정에 비밀주의가 판을 치면서 권모술수와 음모가 끊이지 않는다.


2


작년 한 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군산중등지회장으로 보냈다. 그 전까지 수년간 전교조 조합원이 20명 안팎 되는 학교 분회의 분회장을 했다. 분회장을 할 때 내게는 전교조 ‘활동가’라는 딱지가 붙지 않았다. ‘지회장’이 되자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주변에서 나를 활동가처럼 보았고, 나 스스로 나를 활동가라고 생각했다.


지회장은 지회 집행부를 이끄는 일과 더불어 상급 단위인 지부 회의에 공식적으로 참가하는 게 중요한 임무다. 지부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열리는 지부집행위원회(지부집행위)가 특히 그랬다. 지부집행위는 전북 지역 17개 지회를 대표하는 지회장들로 이루어지는 회의체다. 전교조 전북지부장이 의장이 되어, 매달 복수의 안건들에 대한 발제와 토론, 의결 과정을 되풀이하는 식으로 회의를 진행하였다.


보통 4시간 넘는 시간이 소요되었다. 안건마다 쟁점을 놓고 토론할 때가 잦았다. 전교조 내외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이슈가 있을 때는 서로 지지고 볶는 대화가 끝없이 이어졌다. 지부집행위에 참석하여 회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 쓰러지듯 잠자리에 들었다.


3


나는 지회장 선거에 단독 후보로 나갔다. 지회장이 되자고 마음을 먹고 나자 묘한 긴장이 일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뛰어드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름 비장한 결심을 한 것 같기도 하다. 고작(?) 지회장 선거에 나서면서 말이다.


무슨 고귀한 헌신성이나 사명감 때문이 아니었다. 전교조 기층 조직인 분회 활성화를 위해 이런저런 노력을 기울였지만 잘 되지 않았다. 지부나 본부가 엉뚱한 데 힘을 쏟을 뿐 분회나 학교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거나 지원을 해 주지 않는 데 그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지부 활동가들이 모인 온라인 공간에서 몇 번 비판의 목소리를 냈으나 별다른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한 달 조합비 내는 일로 조합원 역할을 할 수 있다 여긴다. 약간의 열정과 의지를 더해 분회장 일을 맡아서 하면 고마운 일이다. 분회장용(?) 열정과 의지에 시간 투자를 좀 더 해서 지회장이니 지부 상근자니 하는 이름으로 동참한다면 조합 전체에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런저런 고민을 하다 보니 직접 무언가를 도모해 보면 어떻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몇몇 선배의 권유와 조언에 힘입어 지회장 선거에 나서기로 했다.


4


지회장이 되기 전까지 지부는 내게 무척 ‘어려운’ 곳이었다. 분회 모임 때 지부장이나 지부 전임자를 자리에 초대할 때가 많았다. 현장 조합원 선생님들을 대신해 앞장서서 싸워주는 분들이라고 생각해서였는지 말 한 마디 편히 건네기가 쉽지 않았다. 


지회장이 되어 지부집행위에 참석하면서 시선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지부장이나 지부 상근자들이 일하는 모습을 직접 지켜보는 일이 많아질수록 지회장으로서 더 분발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은 예상과 상상 이상으로 힘들게 일했다. 현장 요구와 사회의 흐름을 함께 놓지 않으면서 일하기에 그들은 수가 너무 적었고, 일상적으로 처리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인간적인 연민이나 공감일까.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한 배를 탄 노동조합원으로서 느끼는 연대감과는 차원이 전혀 다른 감정이 생겼다.


5


전교조의 정파 문제를 거론하는 이들이 많다. 일부 정파주의자들이 조합원의 의사를 무시한 채 정파 이익을 위한 과도한 내부 정치를 펼치면서 전교조를 망치고 있다고 말한다. 이들 정파 환원론자들은 정파의 무책임함을 강하게 지적하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동의하면서 이렇게 되묻고 싶다. 정파의 이해관계나 이익이 있다고 하자. 특정 정파에 들어 있는 특정 개인들에게 사사로이 적용되는 것인가. 사회적 명성이나 명예와 같은 것처럼 말이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정파가 얻는 이익이 있다면 그것은 전교조 전체의 어떤 지향과 목표를 풍성하게 하는 데 쓰인다고 보는 것은 어떨까.


정파가 전교조의 권력인가. 정파 활동이 전교조 내 권력을 틀어쥐기 위한 권력 활동인가. 정파주의자들이 본부나 지부에 자파를 앉히고, 더 많은 전국대의원을 만들기 위해 펼치는 이른바 ‘내부 정치’가 그 자리에서 얻을 수 있는 파이나 고물을 위해 하는 사사로운 행동인가. 해직과 징계를 당하거나, 경찰과 검찰 조사의 제일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높은 그런 자리들-지부나 본부의 상근자, 전임자나 지회장, 전교조 위원장-을 권력 작용의 관점에서 상상하기는 힘들 것 같다.


이른바 정파주의자들은 대체로 신념이 강하다. 열정과 의지가 강하고 실천력이 좋다. 무정파주의자(?)인 나는 간혹 그런 정파주의자가 되고 싶기도 하다. 하나의 정파에 속해 특정한 목적을 관철하는 데 뜨거운 열정을 쏟으며 살고 싶다. 그러다 이내 고개를 젖는다. 신념과 의지에 따르는 그들의 삶을 도무지 살 자신이 없다. 토론과 회의를 줄기차게 하고, 그 안에서 치열하게 싸움을 벌이는 생활을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다.


6


정파는 달리 의견그룹이다. 전교조는 조합원이 6만여 명이나 되는 대중조직이다. 의견그룹이 다양하게 존재하면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것은 오히려 권장할 일이지 해악을 끼친다고 절대악처럼 폄하할 일이 아니다.


전교조 내 정파주의를 비판하고 걱정하는 분들의 생각을 잘 안다. 정파가 의사결정 과정을 왜곡한다거나, 조합 전체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들이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식의 문제제기에 대해 충분히 공감한다. 비밀주의에 따라 작동한다는 그들 내부의 문화를 나로서는 선뜻 이해하기 힘들다.


다만 나는 정파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정파와 정파주의가 과도한 힘과 영향력을 발휘하는 이유를 함께 생각해보자고 말하고 싶다. 조합원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가 하의상달 식으로 퍼지는 시스템에서 정파 활동이 지나치게 이루어지기는 힘들지 않을까. 조합원들이 특정 정파에게 문제제기를 쉽게 할 수 있는 내부 언론 문화가 만들어져 있다면 편향적인 정파주의가 활개를 치기 어렵지 않을까. 더 많은 조합원이 무언가를 실천하고 발언하는데 정파주의가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7


전교조는 누구의 것인가. 문제 많다는 정파인가, 학교와 교실에서 각자만의 참교육 활동을 펼치는 현장 조합원인가. 답답한 가슴을 안고 이 글을 썼다. 결론은 내가 이전에도 여러 차례 내놓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귀결된다. 전교조는 참나무나 돌멩이가 아니다. 전교조는 조합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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