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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0년 전 그리스 시인 아르킬로코스가 “여우는 사소한 것을 많이 알지만 고슴도치는 중요한 것 한 가지를 안다”라고 말했다.
영국 철학자 이사야 벌린은 <고슴도치와 여우-톨스토이의 역사관에 대하여>라는 에세이에서 작가나 사상가를 ‘고슴도치’와 ‘여우’의 두 범주로 나누어 설명했다. 고슴도치는 거대 이론이나 관점 하나를 통해 세상을 본다. 여우는 정반대다. 선택과 결정을 하기 전에 다양하게 경험하는 것을 중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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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필립 테틀록 펜실베이니아대학 심리학과 교수가 <전문가의 정치적 판단>이라는 책을 내놓았다. 장기적으로 정확한 정치적 예측을 내놓는 것은 근사치로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입증한 이 책은 곧 사회과학 분야의 획기적인 결과물로 자리잡았다.
테틀록 교수가 30년간 의문을 품고 해결책을 찾기 위해 고심해 온 문제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공청회의 질적 수준이 무척 낮은 이유가 무엇이고, 이해관계가 첨예해질수록 질적 수준이 더 나빠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른바 정치 전문가들의 정치적 예측에 대한 탐구도 이 질문에 대한 탐색 과정에서 비롯되었다. 미소간 냉전이 한창이던 30년 전 미국 정치계에서는 소련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토론이 격렬했다고 한다. 진보와 보수 진영 각각이 나름의 판단 기준에 따라 예측을 내놓았다. 테틀록에 따르면 그들은 모두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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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틀록은 대규모 프로젝트를 통해 자신의 놀라운 발견을 더 입증하기로 했다. 수백 명의 정치 전문가(정치나 경제와 관련하여 조언이나 자문을 해 주고 경제적인 대가를 받는 사람)를 선별하여 미래 사건을 예측하게 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의 재선 성공 여부, 남아프리카공화국 인종차별의 정책의 평화적 종결 여부와 같은 질문들이었다.
전문가들이 1년 이후의 미래에 대한 예측에서 성공할 확률은 우연 수준보다 낮았다. 테틀록이 던진 질문 대다수는 가능한 시나리오가 세 가지가 있었다. 그런데 전문가들이 정답을 맞힐 확률은 33퍼센트보다 낮았다고 한다. 이는 다트를 던지는 침팬지가 학자들보다 예측력이 더 뛰어나다는 말과 같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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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틀록은 정치 전문가들의 사고법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보았다. 하향식 사고와 상향식 사고가 그것이다. 전자는 연역적 방법이다. 전제를 특수한 사례에 적용시키는 식이다. 후자는 귀납적 방법이다. 테틀록은 연역적 전문가를 ‘hedgehogs(고슴도치)’로, 귀납적 전문가를 ‘foxes(여우)’로 구별했다.
테틀록은 전문가들이 내놓는 예측의 정확도를 평가하기 위해 15년간 300여명의 전문가에게 약 30000개의 예측을 얻어내는 식의 대규모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때 그는 예측의 정확성이나 일관성과 상관 있어 보이는 다양한 요인을 검증했다고 한다. (전문가의) 이데올로기, 박사학위, 분류된 정보에 관해 과거에 알고 있는 지식 등등.
이들 요인 모두 예측의 정확성이나 일관성과 무관했다고 한다. 가장 중요한 요인은 놀랍게도 ‘사고방식’이었다. 하향식 사고를 하는 전문가들은 자신의 예측에 대해 지나친 자신감을 갖는 경향이 있었다고 한다. 테틀록은 그들이 80~90퍼센트 확신한다고 말하면, 기껏해야 60~70퍼센트 정도만 맞지 않았다고 말했다.
반면 귀납적 사고를 하는 전문가들은 자신의 예측(결론)에 대해 확신을 덜 하는 편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자기 비판적이고, 자신이 갖고 있는 지식의 한계를 인정했으며, 다른 사람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는 겸손한 자세와 사고방식을 갖는 경향이 있었다.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반영해 자신의 관점을 수정할 줄도 알았다. 그 결과 큰 전제는 없지만 세세한 것을 많이 알고 있는 여우형 전문가가 큰 이론을 가지고 있는 고슴도치형 전문가(hedgehogs)보다 정확하고 일관된 예측력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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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을 위한 토론회나 공청회가 여기저기서 열리고 있다. ‘나’를 전문가로 여기는 수많은 이들이 자신만의 전략과 전술에 따른 문제 해결 방향이나 해법을 내놓고 있다. 그들은 일도양단하듯 현실을 재단한다. 문제를 분석하는 태도에 자신감이 넘쳐난다.
그들의 말이 현실에서 얼마나 실현될까. 그들이 자신 있게 내놓는 미래 예측은 어떤 전제나 근거들의 뒷받침을 받고 있을까. 종종 정치사회적 상황을 분석하거나, 독심술을 쓰듯 다른 사람의 의식과 태도를 추론한다. 그때 나는 고슴도치일까 여우일까.
테틀록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블링크(blink)’, 즉 순간적 판단과 직감의 힘을 강조하는 이론이 있는 반면, 느리게 생각하며 자기비판적인 인지 기능을 지닌 시스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론도 있습니다. 블링크는 첫 2초를 강조하지만, 시스템은 모든 것에 2초 이상 여유를 둡니다. 어떤 조건에서 어떤 유형의 사고법이 더 나은가 하는 문제는, 내 생각에 전적으로 경험적인 문제입니다. - 대니얼 카너먼(2015), <생각의 해부>, 와이즈베리, 193~194쪽.
* 제목 커버의 배경 사진은 무료 이미지 저장소 'pixabay.com'에서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