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화 중심의 세계교육개혁운동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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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교육개혁운동(Global Education Reform Movement)’은 핀란드 교육학자 파시 살베리가 처음 사용하면서 대중화한 용어라고 한다. 국제적으로 교육 부문에서 시장 기반 정책에 따른 일련의 교육 개혁 조치나 실행을 가리키는 말이다.
살베리에 따르면 세계교육개혁운동의 발상은 교육정책의 국제적 교류와 변화, 교육체제들 사이의 “최상의 방법”에서 진화했다. 달리 말하면 특정 시기에 급조된 비주류적 흐름이라거나 임시방편적이고 조잡한 아이디어에서 파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상 세계교육개혁운동은 역사적으로 밀턴 프리드먼 시카고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의 이론에 터 잡고 있다. 프리드먼은 1970~1980년대 내내 교육의 국가 ‘독점’에 대한 시장 기반 해법으로 민영화를 옹호한 사람이었다. 그는 정부 통제권이 별로 없는 자유시장이 경쟁을 촉진하고 효율성을 증진하며 질 높은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 들을 이론화했다. 프리드먼의 이론은 훗날 ‘신자유주의(neoliberalism)’로 명명되었다.
프리드먼 유의 개혁론자들은 공교육의 장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시장이라고 전제한다. 2015년 세계은행 대표는 공적 기금을 사적 이윤으로 연결시키는 전략으로 사적이고 이윤을 중심으로 하는 회사가 공교육을 제공해야 한다는 사실을 옹호하였다. 가령 벤처 투자자인 롭 허터는 교육을 4.65조 달러 규모의 시장으로 보고 공교육에 대한 전 세계적 비용을 미개발된 수익의 보고로 파악했다고 한다.
세계교육개혁운동의 머리글자가 ‘세균’을 의미하는 ‘GERM’이라는 점은 매우 시사적이다. 어떤 나라는 ‘개혁’과 ‘운동’이라는 미명 아래 교육 시스템이 ‘세균’에 ‘감염’될 수 있다. 다른 어떤 나라는 ‘세균’에 대한 ‘면역력’을 강화하는 식으로 다른 나라들과 구별되는 특유의 발전을 성취할 수 있다. 전자와 후자의 대표 국가로 각각 미국, 스웨덴과 핀란드, 쿠바를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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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개혁’이라는 ‘세균’에 ‘감염’되었을 때에는 어떤 증상이 나타날까. 파시 살베리를 원용하면 대략 다섯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세균은 학교 간 입학에서 경쟁률을 높이는 데 커다른 관심을 갖는다. 1990년대 스웨덴의 프리 스쿨, 2000년대 미국의 차터 스쿨 들은 학생들의 학교교육과 관련하여 학부모들에게 더 많은 선택을 제공하기 위해 도입된 ‘대안학교’ 형식의 학교들이며, 세균은 이들 학교들 간의 경쟁을 촉진시키는 데 주력한다.
둘째, 세균은 교육의 표준화를 지향한다. 이는 학교와 교사와 학생을 위해 분명하고 수준 높은 수행 표준을 설정하는 것이 교육의 질 향상과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한다. (외부) 표준화 시험이나 학교 평가 시스템이 터 잡고 있는 전제도 이것이다. 국가수준교육과정(1990년대 영국, 2010년대 독일, 한국)이나 국가수준 핵심성취기준 역시 이와 관련된다.
셋째, 세균은 교육과정에서 문해력과 수리력 같은 핵심 과목에 초점을 맞춘다. 세균 옹호론자들은 교육성과의 주요 지표로 활용되는 국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피사(PISA)나 국제교육성취평가협회(IEA)의 팀스(TIMSS)와 펄스(PIRLS) 같은 국제 평가를 중시하는데, 이들 평가에서 다루는 핵심 과목이 독서, 작문, 수학, 자연과학 같이 문해력이나 수리력을 기반으로 하는 것들이다.
문제는 이 때문에 교육과정이 주요 핵심 과목에 편중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이다. 미국에서 <아동낙오방지법(No Child Left Behind)>(1965년 제정된 <초‧중등교육법>을 2002년 부시 행정부 때 개정하면서 만든 법안의 별칭이었음.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모든 학년에서 낙오하는 학생이 없도록 한다는 취지로 매년 학업성취도 평가 후 연간 적정한 향상도를 보이지 못하면 연방정부에서 학교 재정 지원을 삭감한다는 것이 골자임.)으로 인해 학생들의 문해력과 수학 성취도를 측정하는 국가표준화시험을 준비할 수 있도록 대부분 학군이 사회나 미술, 음악과 같은 과목 시간을 핵심 과목으로 대체한 점, 한국에서 상급학교 입시를 위해 국영수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것 들이 구체적인 사례들이다.
넷째, 세균은 시험을 기반으로 한 책무성을 강조한다. 교원평가, 성과급, 교사 휴게실의 (성적) 데이터 게시판, 언론의 학교 순위 매기기가 새로운 책무성 기제의 사례들이라고 볼 수 있다. 살베리는 학교 책무성이 저품질 저비용의 표준 시험에 의지할 때마다 책임이 거세된 책무성만 남겨진다고 꼬집었다.
다섯째, 세균은 학교 선택, 이른바 부모의 선택권(parental choice) 증가에 관심을 기울인다. 학교 간 건강한 경쟁이 학부모와 학생 다수의 교육적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점을 전제한다. 그러나 완전한 선택권은 실제로 존재하기 힘들다. 어떤 학부모들은 다른 학부모들에 비해 더 많고 넓은 선택권을 가질 수 있는 반면에 또 다른 어떤 학부모들은 선택권을 거의 행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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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마시라. ‘교육 개혁’이라는 ‘세균 감염’은 교육의 질 개선과 학업성취도 향상이라는 ‘아름다운’ 공통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출현하였다.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가 정초한 체계적인 이론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비록 비공식적이지만 전 세계 주요 국가들에서 국가적 의제처럼 대접을 받았다. 살베리는 ‘세균’이 수많은 국제개발기관과 컨설팅회사와 민간 자선가 사이에 “새로운 교육 통설”로 받아들여졌다고 촌평했다.
우리나라 역시 1995년에 수립된 ‘5.31 교육개혁안’이 세균의 근본 철학과 기조를 담고 있다. 현재의 교육 시스템의 골자에 세균 감염의 결과물들이 숨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감염에서 벗어나느냐 그대로 있느냐의 문제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 책임 있는 목소리를 낸 것을 본 적이 없다.
* 이 글에서 ‘세계교육개혁운동’에 관련된 정보들은 린다 달링-해먼드 외 엮음, 심성보 외 옮김(2017), <세계교육개혁-민영화 우선인가 공적 투자 강화인가?>, 살림터, 20~38쪽과 211~218쪽을 참고해 정리한 것이다.